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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적폐님 전상서 | 교육을 넘보는 어제의 촛불

명색이 "민주화'에 기여한 입장에서 대놓고 돈과 자리를 요구하기는 어려우니 뭔가 복잡하고 관념적인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지만, 결국 돈과 자리, 아니 돈 되는 자리를 달라는 뜻이다. 지난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거기서 누가 더 주역이고 덜 주역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최순실과 박근혜가 구치소에 들어가 재판을 받고,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완료되었다고 봐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그동안 나의 노고를 알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적폐다.

ⓒ뉴스1

글 | 권재원 (성원중 교사/ 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1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준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광주 장면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민주화의 1등 유공자라고도 할 수 있는 김사복씨가 자신을 애타게 찾는 힌츠페터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감추고 살다가, 급히 탄 승객을 모시고 "네, 광화문까지 모시겠습니다." 라고 하며 택시를 몰고 가는 장면이다. 힌츠페터에게 "내가 자네한테 고맙지" 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는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자신이 민주화의 주역이라며 나서는 것을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미 광주에서 수 많은 학생, 노동자, 택시기사, 기자, 의료진 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목숨까지 잃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는 한두 사람의 영웅적 활약이 아니라 모두가 나름의 자리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루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와 달리 현실 세계에서는 김사복보다는 꼴불견 군상들이 더 많다. 그건 바로 모두가 함께 이룬 민주화의 과실을 탐하는 사람들인데, 그 과실은 결국 돈과 자리다. 그런 자들을 비유하자면 "내가 김사복의 택시 타이어 끼워 준 사람이오", "내가 김사복의 택시 와이퍼 갈아준 사람이오" "나는 김사복에게 밥 한 끼 사준 사람이오" 하면서 나서고서는, 그 한 자락의 기여를 빌미로 뭔가 한 자리 나올 것을 기대하는 자들이다. 그래도 명색이 '민주화'에 기여한 입장에서 대놓고 돈과 자리를 요구하기는 어려우니 뭔가 복잡하고 관념적인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지만, 결국 돈과 자리, 아니 돈 되는 자리를 달라는 뜻이다.

그래서 김사복이 아름답다. 그는 민주화가 된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고, '광주사태'의 원흉 전두환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선 것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느꼈으리라. 바로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새겨두어야 할 미덕이다. 운동의 보상은 그 목표의 달성을 통해 세상이 더 좋아진 것을 보는 것이지, 운동가 개인의 입신양명이 아니다. 가령 적폐 청산을 외친 운동가의 보상은 적폐가 청산되는 것이라야지, 적폐세력이 누리던 부와 명예를 자신이 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민주화 운동가의 보상은 민주화된 조국의 모습이라야지, 과거 군부독재 세력이 차지하고 있던 권력의 자리에 자신들이 들어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순간부터는 그들 자신이 적폐로 전락한다.

지난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거기서 누가 더 주역이고 덜 주역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그리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최순실과 박근혜가 구치소에 들어가 재판을 받고,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완료되었다고 봐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그동안 나의 노고를 알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적폐다.

교육계도 마찬가지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뜻을 바르게 품고 올바른 교육을 하고자 했던 교사들은 무수히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아무런 금전과 인사상의 혜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 하겠다고 수많은 교사들이 조중동의 폭언, 극우단체들의 패악질을 견뎌가며 그 길을 갔다. 수구우익 편향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국정교과서를 막아내기 위해 교장과 교장편이 된 학부모들에 맞서다가 온갖 압박과 수모를 겪어야 했던 교사들도 있었다. 민주주의를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좌편향 교사로 몰리고, 민원에 시달려야 했던 교사도 있었다. 또 교사들 중 상당수가 촛불을 들고 나서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위해 자신이 촛불을 들고 나설 뿐, 학생들에게 촛불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분별이 다 되었으면 행동할 수 있게 가르쳤을 뿐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교사들이 이 어두운 시절에 자신의 몫을 다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촛불이 이들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없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가장 큰 보상은 바로 정권의 교체이며, 그리고 부당한 권력의 압력, 박해, 훼방 없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들 중에 자신이 촛불 혁명에 기여했으니 자리를 달라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은 다만 교육을 제대로 할 기회를 원할 뿐이다. 만약 이들 중에 자신이 뭔가 기여를 했으니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은연중에 그런 뜻을 비추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촛불을 더럽히는 것이며, 적폐세력으로 스스로를 타락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 일선에 있어 본 적이 없거나, 떠난지 매우 오래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알량한 이념적 지향성을 내세우며 '진보'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교사들에게 강요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학교를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는 거의 최순실 좌파 버전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박근혜 정권의 수많은 폐단이 생긴 원인은 이념이 오른쪽이라서가 아니다. 오른쪽 역시 왼쪽만큼 존중받아야 할 다양한 관점의 하나일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 핵심은 바로 전문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일부 세력이 전문성이 발휘되어야 할 부분까지 마음대로 농단했다는 것이다. 가령 검찰에서는 수사 전문가가 박해받으면서 정권에 아부하는 능력이 발달한 정치검찰이 판을 쳤고, 진짜 미디어 전문가들이 묵살당하면서 차은택 패거리들이 수준 이하의 영상물을 만들었고, 진짜 스포츠 전문가들이 무시당하며 정유라에게 줄을 잘 댄 패거리들이 승승장구하고, 역사 교사들이 무시당하면서 어디서 되먹지 못한 뉴라이트 비전문가들이 교수랍시고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서 국정으로 강요하려 하였다. 바로 이게 적폐의 핵심이다. 그 방향이 라이트인지 레프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적폐 청산은 그동안 무시당하고 억압받았던 검증받은 전문가,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판을 열어주는 것이다. 도리어 거기에 달려들어서 검증되지 않은 자신들의 견해를 가지고 흔들어대며, 자리를 요구한다면 "나라를 위해"라는 나름의 이념을 내걸고,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까지 자기 편협한 뜻을 관철시키려 했던 최순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촛불은 그 뜻을 이루었다. 각자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서로서로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그렇지 않고, 그럴싸한 한 자리 마련하려고 억지로 비비적거리며 민주를 논하고 진보를 논한다면 그 촛불은 최순실보다 더 질 나쁜 적폐로 전락할 것이다. 특히 파이가 크고, 전문가들의 조직력과 발언권이 약한 교육계에 그런 무리들이 많이 꼬이는 것 같아 던지는 말이다. 교육이 백년의 대계라는 말이 다만 수사법으로 보이는가? 공연히 나라의 백년을 망치지 말고,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기 바라고, 교사들이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전문성과 양심이라는 심판관에만 복종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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