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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들의 스킨십 정치

키스를 한 의원들은 자신이 동성애자로 오해받을까 걱정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날의 키스가 인간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사랑이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지타산에 맞춘 스킨십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굳이 탓한다면 술자리 여흥일 뿐이다. 결국 사랑이 없는 키스는 자유롭게 허용된다. 오히려 사랑을 담은 키스는 불온해지고 금지된다. 이 모순을 한국 정치는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을까.

14년 전 일이다. 2003년 9월5일의 아침 뉴스는 한장의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전날 저녁, 당시 '검찰 인사권'을 두고 격돌하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함께 밥을 먹고 폭탄주도 마셨다. 기자들 앞에서 인증샷도 찍었는데 두 사람의 자세가 특별했다. 장관이 총장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며 웃었고 총장은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두가지 의문을 가졌다. 첫째는 수많은 음식점 중에서 왜 두 사람의 회동 장소가 '보신탕집'이었는가였다. 검찰 쪽이 제안한 장소라는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보신탕과 폭탄주라는 남성 연대의 상징을 통해 한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을 시험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강 장관으로서는 '여자라서 안 된다'를 불식하면서 동시에 '여자로서 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장관이 보신탕집 앞에서 먼저 팔짱을 끼자 검찰총장은 당황했고 언론은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호평했다. 이후 강금실 장관의 인기가 더욱 올랐다.

물론 팔짱을 끼는 것이 한 수 더 높은 정치적 계산이었는지, 여성적 이미지에 스스로 갇히는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에겐 좀더 근본적인 두번째 의문이 있었다. '검찰 개혁'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사이가 친밀해 보여야만 하는지였다. 같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스킨십도 나누는 좋은 사이라는 것이 왜 대국민적 메시지로 전달되어야 하는 것인가. 오래된 관행을 개혁할 때 갈등은 필연적이고, 갈등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 중요한 싸움거리일 터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싸워야 하는데 왜 공적인 갈등을 드러내는 대신 개인적 스킨십으로 적당히 봉합하는 것을 더 정치적인 성과인 양 평가하는 것일까?

14년 전의 의문이 새삼 떠오른 건 두 남자의 키스 때문이다. 얼마 전 바른정당의 두 실세인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입을 맞추는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당의 공식 행사를 마친 뒤 의원들끼리 술자리를 가졌고, 어김없이 폭탄주가 돌았다. 회의에서 대립각을 세운 두 사람은 분위기를 띄우려는 주변의 요청에 따라 마주보고 팔짱을 낀 채로 들이켜는 소위 '러브샷'을 나누었고, 이어 뽀뽀도 했다. 기자들이 없는 술자리였는데도 바른정당은 굳이 언론에 이 사진을 제공했다. 지도부가 공석이 된 바른정당의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두 사람의 속마음은 달라 보였다. 코가 부딪치지 않도록 고개를 살짝 비틀거나 입술을 내미는 배려도 없었고, 다른 의원이 두 사람의 등을 떠미는 형국인지라 입맞춤이 아니라 어찌 보면 안면 충돌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두 남자의 뽀뽀'를 두고 화합 도모라고 보도했다. 돌이켜보면, 2010년에 한나라당에서 대립각을 세우던 홍준표 의원과 안상수 의원도 술자리에서 폭탄주와 러브샷에 이어 볼키스를 한 적이 있다. 홍준표 의원이 안상수 의원의 볼에 입맞춤을 한 뒤 파안대소하는 장면은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뻐한 원희룡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웠을까? 더 강력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 독설을 퍼붓고 서로 싸우다가도 화통하게 술을 마시고 쿨하게 뽀뽀하면 국민들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봐줄 거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대체 그런 뻔뻔한 기대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정치판의 이런 행보는 여러 모순을 감추고 있다.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의 후보가 동성애자 인권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임명을 반대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동성 간 키스 장면은 즉각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는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점점 강력해지고 있지만 술자리에서 '뽀뽀해'를 연호하거나 키스를 한 의원들은 자신이 동성애자로 오해받을까 걱정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날의 키스가 인간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사랑이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지타산에 맞춘 스킨십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굳이 탓한다면 술자리 여흥일 뿐이다. 결국 사랑이 없는 키스는 자유롭게 허용된다. 오히려 사랑을 담은 키스는 불온해지고 금지된다. 이 모순을 한국 정치는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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