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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는 영원히 베이비

'베이비 드라이버'는 결코 자동차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십 수년은 회자될 만한 오프닝 자동차 도주 시퀀스의 자동차는 흔하디 흔한 스바루다. 수억 원짜리 슈파카를 장난감 자동차마냥 찌그러트려 버리는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다르다. 그런 영화들에서는 자동차 그 자체가 주인공이고 속도 그 자체가 주제이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엄마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드라이빙은 다른 어떤 영화들에 못지 않는 볼거리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는 와이퍼 소리로, 경적 소리로, 급회전하는 타이어 소리로, 차체를 두들기는 소리로, 오로지 음악의 부분들로 작용할 뿐이다.

ⓒ소니픽처스코리아

* 이 글에는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름을 찾아준 남자

"B A B Y Baby"라는 노래를 부르며 눈 앞에 나타난 여자. 노래를 잘한다. 가수였던 엄마가 일했던 익숙한 레스토랑에 처음 보는 여자가 나타나 노래로 베이비를 부른다. 베이비의 이름을 묻기 전부터.

데보라는 베이비를 만나기 전까지 다른 이의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베이비를 만나기 전엔 다른 사람의 명찰을 달고 있었고,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노래는 하나뿐인데 실제로는 자기 이름과는 다른 데브라라는 노래이며, 그 노래는 심지어 데브라가 아닌 제인에 대한 노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베이비가 알려준다. 너의 노래가 있다고. 너는 조나단도 아니고 데브라도 아니고 데보라라고. 언니 메리처럼 수많은 노래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노래 속에서는 주인공이라고.

데보라는 자기의 이름을 처음으로 찾아준, 자기의 노래를 찾아준, 그리고 이제 미련 없는 이 동네를 떠나게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말수가 적은 리무진 기사 베이비에게 한 순간 사랑에 빠진다. 함께 음악을 들으며 비싼 차를 타고 끝없이 달려갈 상상을 하면서.

그렇다면 베이비는 왜 데보라와 사랑에 빠졌을까. 이성애자 남자가 아름다운 데보라를 만나 아무 이유 없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베이비가 데보라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엄마처럼 금발이고, 엄마처럼 노래를 잘하고, 엄마가 일했던 그 식당에서 똑같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엄마처럼 자기를 베이비라고 불렀다. 베이비는 데보라를 보고 엄마를 떠올린 것이다.

음악은 엄마

엄마는 베이비가 아직 너무 어린 시절 죽었다. 그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엄마는 금발의 아름다운 가수이면서 동시에 동네 작은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였고, 베이비에게 아이팟을 선물했었고, 항상 자신을 베이비라고 불렀고, 아빠와는 항상 싸우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베이비는 엄마 없이 살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베이비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며 절대적인 선이다. 베이비는 그런 엄마 없이는 살 수 없기에, 그 절대성을 음악에 온전히 투영해 그 힘으로 살아간다. 교통사고로 이명이 생겨 항상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명 때문이 아니라 엄마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베이비에게는 음악이 곧 엄마다.

베이비가 자신을 마일스라고 하지 않고 베이비라고 말하는 것도 것도 결국 평생 엄마의 사랑과 미화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아기였던 그 시절을 고스란히 살아가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청각에 그토록 예민한 베이비가 유난히 선글라스에 집착하며 시각에 덜 발달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베이비가 얼마나 아기였던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를 보여주는 맥락으로 읽힌다.

영화의 후반부 버디가 죽기 전 베이비의 양 귀에 총성을 내며 베이비의 귀에는 큰 장애가 생길 뻔한다. "베이비 너 때문에 난 내가 사랑하던 여자가 죽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이제 너도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죽는 걸 지켜보아라."라고 말하던 버디에게서 데보라는 가까스로 살아난다. 하지만 베이비의 귀에 두 번의 총성이 울렸을 때 베이비가 사랑한 여자는 이미 살해당했다. 버디가 살해한 여자는 데보라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 죽었던 베이비의 엄마였다.

베이비의 청력이 살해됐다는 건 곧 베이비를 평생 품에 안고 살아왔던 음악-엄마가 살해된 것이다. 정신을 잃은 베이비가 깨어났을 때 청력에 이상이 생긴 상태였지만, 이내 곧 데보라가 튼 엄마의 노래를 손바닥으로 들으며 회복된다. 그 순간 베이비는 데보라라는 새로운 엄마를 얻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자동차 사고로 잃었지만, 베이비는 마지막 순간 자동차 열쇠를 빼앗아 강물로 던져버리며 두 번째 엄마-데보라를 지켜낸다.

결국 이 영화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영화이다. 아버지에게 빼앗긴 엄마를 다시 찾는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와 자동차

베이비의 적, 오이디푸스는 단순히 어린 시절 엄마와 항상 싸우다 결국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아버지만이 아니다. 음악과 데보라에게 위해를 가한 모든 존재가 베이비의 적-아버지이다. 베이비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일해왔지만 빚이 청산된 후에도 데보라를 가만 두지 않겠다며 위압하여 범죄에 동참하게 한 닥터, 데보라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강도 짓을 벌이려다 베이비에게 저지된 배츠, 그리고 처음에는 가장 친절하고 배려있게, 마치 아버지처럼 베이비를 챙겨주지만 최후에는 베이비의 청력을 살해하고 데보라까지 죽이려고 한 버디까지. 모두가 베이비의 아버지이다. 반면 베이비를 키운 양아버지는 오히려 베이비의 오이디푸스가 아니다. 청력이 없는 양아버지에게는 음악-엄마를 뺏길 위험이 없으니까.

'베이비 드라이버'는 결코 자동차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십 수년은 회자될 만한 오프닝 자동차 도주 시퀀스의 자동차는 흔하디 흔한 스바루다. 수억 원짜리 슈파카를 장난감 자동차마냥 찌그러트려 버리는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다르다. 그런 영화들에서는 자동차 그 자체가 주인공이고 속도 그 자체가 주제이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엄마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드라이빙은 다른 어떤 영화들에 못지 않는 볼거리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는 와이퍼 소리로, 경적 소리로, 급회전하는 타이어 소리로, 차체를 두들기는 소리로, 오로지 음악의 부분들로 작용할 뿐이다. 아우디를 훔칠 때 음악을 틀어 놓은 스마트폰만이라도 달라는 차 주인에게 안 된다고 대답한 이유는, 베이비는 음악으로서의 자동차를 훔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베이비는 그 둘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더 나아가 엄마를 자동차 사고로 잃고 베이비 자신의 청력도 그 사고로 다쳤으니 결국 자동차는 엄마와 자신의 청력을 빼앗아 간 아버지와 은유가 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베이비는 결코 자동차나 운전에 대한 애정이나 애착을 가지지 않는데, 베이비에게 자동차-아버지는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트라우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베이비

데보라는 마지막에 가서야 베이비의 실제 이름이 마일스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데보라는 베이비의 이름이 베이비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웃으며, 그를 계속해서 베이비라고 부른다. 베이비는 데보라의 진짜 이름을 찾아줬지만 베이비에게 진짜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이 베이비라는 사실만 중요할 뿐. 이제 베이비는 두 번째 엄마이자 음악이자 엄마 그 자체인 데보라의 베이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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