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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억의 45년 된 고물헬기'의 진실

'박근혜 정부에서 45년 된 미군의 중고 헬기를 구입하면서 1,500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뭔가 엄청난 방산비리가 나타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팩트체크를 해 보자. 일단 '45년 된 중고헬기'라는 표현 자체가 오류다. 주한미군이 넘겨준 기체들은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84~88년에 제작된 기체들이다. 우리 육군이 미국에서 직도입한 CH-47D들이 대부분 1988~1990년 사이에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기체들이다. 즉 구매할 당시는 둘째 치고 아직도 기령 30년이 안 된 기체들이다. 어디서 나왔을까? 45년이라는 숫자가.

  • 홍희범
  • 입력 2017.09.20 12:50
  • 수정 2017.09.20 12:58

'박근혜 정부에서 45년 된 미군의 중고 헬기를 구입하면서 1,500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뭔가 엄청난 방산비리가 나타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문제가 되는 '45년 된 중고 헬기'는 2014년 경 주한 미군이 쓰다가 우리 군에게 인도받은 CH-47D 시누크 헬기 14대로, 우리 군에서의 제식 명칭은 "CH-47NE"형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구매할 당시 생산된 지 45년된 상태'였고 '합동참모본부 회의에서는 성능개량을 해도 수명을 담보할 수 없다며 개량사업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고 '산지 3년 만에 노후화로 인해 성능개량을 할 경우 비용이 낭비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또 군의 자체 평가에서도 곳곳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는데, '미군이 GPS가 연동된 항법장치를 제거한 뒤 판매하면서 악천후 때와 해상임무에는 투입되지 못하며' '미군이 별도로 제공한다고 했지만 3년이나 지난 현재도 탑재가 안 됐고 올해 연말이나 가능할 전망'이라고 한다. 또 '생존장비인 미사일 경보체제도 없으'며 '바닥 방탄설치도 제대로 안돼' 있고 '제자리 비행시 자동기능이 없어 수동 조종을 해야 하고 계기판도 아날로그인 탓에 정보 확인이 쉽지 않다'고 한다. 더욱이 헬기 판매 1년여 만인 2015년 10월에 2018년 9월부터 부품 판매를 중단한다고 통보했다고까지 한다.

미군으로부터 도입된 중고 시누크. 우리 군에서는 현재 CH-47NE형이라는 이름으로 운용 중이다. 2015년 서울 에어쇼 회장에서 촬영: 월간 플래툰 제공

뉴스를 여기까지 읽어보면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방산비리가 벌어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팩트체크를 해 보자.

일단 '45년 된 중고헬기'라는 표현 자체가 오류다. 주한미군이 넘겨준 기체들은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84~88년에 제작된 기체들이다. 우리 육군이 미국에서 직도입한 CH-47D들이 대부분 1988~1990년 사이에 들어온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기체들이다. 즉 구매할 당시는 둘째 치고 아직도 기령 30년이 안 된 기체들이다. 어디서 나왔을까? 45년이라는 숫자가.

미군이 GPS가 연동된 항법장치를 제거한 뒤 판매했고 미사일 경보체제가 없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군용 GPS연동 항법장치와 미사일 경보체제는 별도 수출허가 없이는 판매가 안되므로 일단 제거했다가 나중에 제공하는 것이 정상이다. 미군이 다시 준다는 데 3년이 걸렸다면 아마도 이런 수출승인 등의 절차상 문제가 더 컸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군 보유 시누크 헬기에도 대부분 미사일 경보체제가 없다. 문제로 삼으려면 미군이 아니라 그 동안 헬기의 생존성 투자 전체에 게으르던 우리 군 자체의 태도가 압도적으로 문제다.

제자리 비행 시 자동기능이 없어 수동조종을 해야 한다는 점도, 계기판도 아날로그인 점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애당초 이것 역시 우리 군 보유 시누크들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어차피 구형 운용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고, 애당초 그런 기능들이 필요했으면 돈 더 주고 업그레이드를 했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CH-47F. 미군은 기존의 D형을 F형으로 교체하면서 안 쓰게 된 14대의 D형을 우리 군에게 넘겼다: 월간 플래툰 제공

국군의 중고 시누크, 즉 CH-47NE와 미군 CH-47F의 비교. 채프/플레어 사출기등 생존관련 설비가 중고 기체에는 없는 상태이다: 월간 플래툰 제공

악천후 때와 해상임무에 투입되지 못한다? 바닥 방탄설비가 없다? 대체로 사실이기는 한데, 애당초 그러려고 산 기체도 아니다. 우리 군이 미군에서 중고로 도입한 시누크 헬기들의 주 목적은 장거리 긴급 연료수송이다. 악천후 때 나갈 일도, 바다 멀리 나갈 일도 없고 바닥에 총 맞을 정도의 위험지역으로 갈 일도 매우 드물다. 미사일 경보장치도 있으면 좋지만 임무상 다급한 경우는 아니다.

애당초 1,500억이라는 금액 때문에 엄청난 바가지를 쓴 것처럼 보이지만, 예비부속 등의 제반비용을 빼고 나면 순수한 기체 가격은 대략 58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원래 CH-47D형의 가격이 생산이 종료된 2002년 기준으로 대략 신품 120억원 정도였다. 이 정도면 상태 좋은 중고를 제법 좋은 조건에 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상당히 정비를 잘 해서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엔진은 우리 군이 보유한 시누크보다 더 신형이다. 기존 군 보유기체들은 T55-L-712, 일명 712형으로 알려진 엔진을 사용한다. 그런데 전 세계의 시누크 중 이 엔진을 쓰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미군이 넘겨준 중고 시누크들에는 더 신형인 T55-L-714 엔진, 일명 714형 엔진이 달려있다. 우리 군이 도입하느라 쓴 금액에는 이 엔진의 예비품 다섯 대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군이 보유중인 대부분의 시누크에 장착된 T55-L-712엔진. 제작사 사진

과연 못쓸 고물인가

심지어 일선의 정비사들이나 조종사들의 이 '미군 중고기체'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다. 국군 기존 보유기체들보다 못할 것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상태가 나은 면도 있어(우리 군에 인도되기 전에 상당한 수준의 수리작업이 진행됐다) 오히려 기존 기체들보다 가동률이 잘 나오는 경우마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기체들은 개량 대상에서 제외됐고 내년부터 부품 단종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일단 들리는 이야기로는 중고 기체들의 개량이 거부된 것은 맞지만 노후화가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기체 상태들이 나쁘지 않고, 특히 엔진이 국내 보유 시누크들 중 가장 신형이기 때문에 '개량 필요가 낮아'서 였다는 것이다.

사실 2018년에 보잉이 부품 공급을 중지한다는 것도 우리가 보유한 중고 기체들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애당초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군이 보유한 시누크나 넘겨받은 미군 중고 시누크나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물건들이며 같은 형식인 D형이다. 즉 제작사가 부품 공급을 중단한다고 하면 미군 중고 기체들만이 아니라 우리 보유 시누크 전체가 운용을 멈춰야 할 판이다. 그리고 당연히 보잉은 여전히 많은 나라들이 운용 중인 D형의 부품 공급 자체를 중단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 2018년에 중단된다는 건 무슨 이야기일까.

실은 바로 앞서 언급한 712형 엔진의 부품 이야기다. 즉 보잉이 공급을 중단한다는 건 미군 중고가 아니라 거꾸로 우리 군의 기존 기체들의 엔진이다. 이대로 가면 2018년 9월 이후에는 '노후화된' 미군 중고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군이 가지고 있던 기존 기체들이 먼저 주저앉을 판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처럼 중고가 더 오래 쓰게 생긴 상황은 결국 우리 군의 자업자득이다.

애당초 미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시누크 D형 운용국은 엔진을 더 좋은 714형으로 바꿨고, 1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엔진 개량 사업을 권고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이 권고를 어느 쪽 귀로 흘려들었는지 계속 무시했고, 그 결과 D형 운용국 중 712형 엔진 운용국이 우리만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상황에 빠졌다.

애당초 시누크 성능개량 사업이 시행되는 가장 큰 원인도 결국 712엔진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고, 미군 중고 기체들이 성능개량 대상에서 제외된 가장 큰 이유도 이것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이미 엔진이 개량된 상태이기 때문이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노후화로 인해 비용이 낭비된다는 결론'이 과연 사실일지의 검증이 필요하다.

즉 이번 중고 헬리콥터 사건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이야기인지, 어디서부터가 의도적인 왜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왜곡과 오류가 매우 심한 것이다.

미군에서 도입한 중고 기체가 45년 전 기체도 아니고, 사실상 국군 기존 기체 대부분과 비슷한 나이인 데다 엔진은 오히려 국군의 기존 기체들보다 낫다. 심지어 보잉의 엔진 부품 공급이 끊기면 그 피해는 기존 국군 기체들이 가장 먼저 받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오히려 엔진 부품 공급이 더 오래 갈 미군 중고기체들을 사 놓은 것이 외려 더 잘한 일이 된다. 심지어 사실이기는 한 항법장치나 미사일 경보장치 문제도 전후사정이나 우리 군의 운용 사정을 감안해서 문제인지 아닌지 따져야지, 막무가내로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만만찮은 왜곡이다.

방산비리 등의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좋다. 하지만 팩트만 걸고 넘어지자. 이번처럼 오류 가득한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흔히 말하는 '적폐세력'에게 좋은 일이다. 이런 식의 헛발질이 계속되면 결국 제대로 된 문제의 해결만 방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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