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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없어 더욱 슬픈, 엄마의 선택

나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들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서는 '학부모'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화면 속에서 '부'는 찾기 힘들었다. 낮에 열린 것도 아니고 저녁 7시30분부터 열렸는데 왜 아버지들은 없었을까? 어딘가에 있었는데 무릎을 안 꿇은 것일까? 개개인이나 장애인 어머니 조직의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장애 아이를 낳거나 아이가 장애를 가지는 순간 거의 100%의 양육 책임을 혼자 짊어지게 된다는 장애인 엄마들의 현실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페이스북 페이지

얼마 전 강서구 특수학교 관련 토론회의 '장애인 엄마들이 무릎 꿇었다'는 사진과 동영상의 장면들은 본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계속 생생하다. 일단 무릎 꿇음은 충격적이었다. 무릎 꿇음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혼날 때 외에 성인이 돼서 겪을 일은 거의 없다. 집단적인 무릎 꿇음은 더욱 낯선 광경이다. 당사자 중 한명인 김종옥씨는 이에 대해 "누구든 그렇게까지 비참해지지 말아야 한다. 무릎을 꿇는 이에게나 그것을 보는 이에게나 그것은 모두 수모와 모멸의 풍경이었다(〈한겨레〉 9월13일치)"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무릎 꿇음에 대한 공감이 되는 해석이다.

그러나 나는 그 비참한 무릎 꿇음을 장애인 엄마들이 주저 없이 선택했다는 것에 마음이 더 쓰였다. 무릎 꿇는 게 자극적이기에 특수학교 설립 반대자들은 '쇼'라고 외쳤지만, 그렇게 많은 반발과 즉흥적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준비된 쇼'를 차분하게 계획한 대로 해내기도 어렵다. 그런 선택을 하려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집단 안에 자리 잡은 공통된 경험과 절실한 공감대가 꼭 필요하다. 한 어머니가 장애인 학부모를 대표하여 발표를 하는 모습도 그랬다. 그 어머니는 집어치우라며 거칠게 반발하는 청중들과 중도 퇴장하는 국회의원 등을 보면서도 분노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너무도 침착하고 적절한 말투와 논조로, 누구의 기분도 거스르지 않으려 하며 발표를 하는 그 모습이 나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욕을 하시면 욕 듣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장애 아이들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네, 운다고 욕하셔도 무슨 짓을 한다고 연기한다고 욕하셔도 그 욕 다 받겠습니다."

이렇게 엄마들이 침착하고 최대한 자신들을 낮추는 성숙함을 가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동안 차별과 무시에 이골이 나서가 아닐까? 그래서 무릎 꿇는 것 정도는 정말 별게 아닌 삶을 살아온 탓이 아닐까? 이런 추측에 반대할 근거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들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보도에서는 '학부모'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화면 속에서 '부'는 찾기 힘들었다. 낮에 열린 것도 아니고 저녁 7시30분부터 열렸는데 왜 아버지들은 없었을까? 어딘가에 있었는데 무릎을 안 꿇은 것일까? 개개인이나 장애인 어머니 조직의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장애 아이를 낳거나 아이가 장애를 가지는 순간 거의 100%의 양육 책임을 혼자 짊어지게 된다는 장애인 엄마들의 현실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한 사회의 모순은 항상 소수자에게서 더욱 그악스럽고 잔혹한 형태로 드러난다. 여성 다수자가 저임금과 비정규직, '독박육아'로 경력단절에 시달리고, 아이를 가진 여성들은 '아이의 대입 성과'가 다 엄마 하기 나름이 돼 버려 옴짝달싹 못 하는 사회이다. 이주여성은 훨씬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고 그녀들의 아이는 학교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에 속하기 쉽다. 장애 여성은 폭력과 취업, 교육, 결혼 등에서 비장애인 여성의 어려움을 몇 배 정도의 강도로 경험하며 살아간다.

장애 아이를 가진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학력이나 직업적 커리어가 무엇이었든 아이가 장애인이면 철저히 '장애인 엄마'로만 살아야 한다. 독박육아는 너무 당연하고,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이 엄마 책임인 한국 사회에서 장애 아이를 낳았든 그 아이가 장애를 가지게 되었든 그것은 엄마의 책임이고 죄로서 규정된다. 장애인 엄마로만 살아야 하기에 비장애인 가정보다 전통적 성별 분업이 더 엄격하게 나타난다.

특수학교 하나 짓는데도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듯이 엄마들은 장애 아이들이 겪는 모든 사회적 문제도 직접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이런 상황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 전적으로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는 장애인 엄마가 있다면 그들이 받을 도덕적 지탄 혹은 자기 비난은 또 얼마나 심할까?

현 정부는 국가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학교 설립 하나에도 이렇게 처절해야 하는 엄마들이 있다는 것은 이 선언을 지키는 데 성 평등, 양육, 여성 노동, 장애인 교육 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총체적 차원의 대변혁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를 선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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