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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녀 가구는 죄가 없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 아이 낳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있다. 명절 때마다 듣는 '아이는 언제 낳느냐'는 질문은 이제 귀여운 수준이다. 점점 더 '아이 키우는 의무는 저버리고 공짜 연금만 타먹을 사람들, 국가경제를 좀먹는 무임승차자'라는 얘기가 진지해지고 강해진다. 흥미롭게도 무자녀 가구에 대한 차별과 비난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한겨레

미국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한국을 궁금해하는 그곳 연구원들에게 한국 경제에 대해 브리핑하고, 해결할 문제를 정리했다. 발표 뒤 딘 베이커 소장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국가가 말하는 저출산 문제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게 문제라고 했는데, 정말 문제인가요? 청년 일자리가 문제라고도 하고, 저임금 일자리의 임금이 오르지 않아 임금 불평등이 심각한데다 내수 부진으로도 이어진다고 했는데요.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그 뒤 문제들은 해결되는 것 아닌가요?"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노동 공급이 부족해지니 일자리 부족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고, 노동 공급이 수요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지면 협상력이 높아져 임금이 높아지지 않냐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그 계층의 소비가 늘어 내수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담겨 있었다.

그 짧은 대화는 내게 여러 생각을 남겼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와 언론에서 습관처럼 사용하는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고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는 단순한 논리 구조를 좀더 뜯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는 뉴스가 쏟아져나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생아 수는 40만6200명이었다. 1년 전보다 3만2200명이나 줄었다. 2005년의 사상 최저 기록은 간단히 깨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전년의 1.24명보다 줄었다. 올해 상반기 신생아 수는 18만8천 명이다. 상반기 합계출산율만 따지면 1.03명으로 다시 역대 최저치다.

저출산은 고령화를 낳는다.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처음 15살 미만 유소년인구를 추월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지난해 11월1일 현재 고령인구는 677만5천 명인데, 유소년인구는 676만8천 명이었다. 1년 전보다 고령인구는 3.1% 늘고, 유소년인구는 2.0% 줄어들었다. 역전은 통계청 예측보다 1년 앞당겨졌다.

그러다보니 생산가능인구인 15~64살 인구가 부양할 고령인구 비중이 빠르게 높아진다. 유소년 부양비는 2010년 22.2에서 지난해 18.6으로 낮아졌다. 노년 부양비는 15.1에서 18.7로 뛰었다. 이대로 몇 년 지나 지금의 유소년인구가 생산가능인구가 되고 생산가능인구가 고령인구가 되면, 노년 부양비는 극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생산가능인구 1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할 시기가 곧 온다.

저출산과 함께 살펴볼 현상은 무자녀 가구의 증가 추세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45년 미성년자 없는 가구는 1955만 가구가 된다. 2015년 1329만 가구에서 47%나 증가한 것이다. 전체 가구는 17% 늘어나는데, 무자녀 부부 가구와 1인 가구는 더 많이 증가하게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저출산이지만, 가구 하나하나를 따지면 무자녀 현상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무자녀 가구 문제는 한국만 겪는 게 아니다. 상당수의 유럽 국가들은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의 1946년생 여성은 9%만 자녀가 없었다. 그런데 같은 지역 1970년생 여성 가운데 아직 자녀가 없는 여성의 비중은 17%나 된다. 독일의 경우 40대 초반 여성 5명 가운데 1명이 자녀가 없다.

국가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한다. 유럽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다. 저출산이 문제인 것은 경제에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노인이 늘어나면, 가치를 생산하고 세금 낼 사람은 적어지는데 연금으로 부양할 사람은 늘어난다는 논리다. 게다가 저출산은 필연적으로 고령화를 부른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적은 세대가 노인이 되기 전까지, 젊은이는 적고 노인은 많은 역삼각형 인구구조가 된다. 적게 태어난 세대가 완전히 노인이 되고서야 인구 균형이 다시 맞춰진다. 수십 년 동안은 역삼각형 구조를 견뎌내야 한다. 그동안 사회의 역동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변화가 느려질 가능성이 높다. 노인 중심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국가가 이야기하는 저출산 문제다.

무자녀 가구는 죄가 없다

그래서 국가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것저것 혜택을 주려고 한다. 효과는 미지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출산 해결을 위해 10년간 100조원을 썼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출산 부모에게 이런저런 인센티브를 준다. 이들 정책의 성공 확률은 낮다.

이런 가운데, 무자녀 가구는 그들대로 불만이 커진다. 최근 거론되는 '노키즈존' 사태가 벌어지는 배경도 여기 있다. 자녀 없는 이들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가족 탓에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실제 세금이나 아파트 분양 등에서 손해를 본다고 여긴다.

저출산은 정말 문제일까? 그렇다면 무자녀 가구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일까? 꼭 그렇다고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생산가능인구라는 절대적 기준은 실질적으로 완화되고 있다. 고령자들이 점점 더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고령자도 '생산 가능'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가 실제 걱정한 것만큼 줄지 않을 수도 있다.

고령자를 활용할 기술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의 종류도 달라진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인간에게는 돌봄과 관리 노동을 남기고 나머지는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돌봄과 관리는 어쩌면 시니어들도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무자녀 비중이 높으면서 출산율이 높은 나라도 많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전체 출산율이 낮고 무자녀 비중도 높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선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은데 무자녀 비중도 높다. 두 자녀 이상 가구가 많기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들은 무자녀 비중은 낮지만 출산율도 낮다. 대부분 한 자녀를 갖기 때문이다. 즉, 자녀 없는 가구가 많아도 자녀 있는 가구가 아이를 많이 낳고 기르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된다.

이뿐 아니다. 아이 낳지 않은 가구가 더 많이 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도 나온다. 자선 재단도 많이 세운다. 더 다양하고 활발하게 소비생활도 한다. 이들의 소비가 문화예술과 콘텐츠 등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는 소비도 노동인 시대 아닌가.

결론은 이렇다. 자녀를 많이 낳고 기르는 가구는 고맙다. 무자녀 가구는 죄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갈등이 고조되고 쩔쩔매는 것일까. 왜 '노키즈존 사태'가 일어났을까.

다들 애써 외면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차별과 비용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 아이 낳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있다. 대부분 차별이 사라진 시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차별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명절 때마다 듣는 '아이는 언제 낳느냐'는 질문은 이제 귀여운 수준이다. 점점 더 '아이 키우는 의무는 저버리고 공짜 연금만 타먹을 사람들, 국가경제를 좀먹는 무임승차자'라는 얘기가 진지해지고 강해진다. 흥미롭게도 무자녀 가구에 대한 차별과 비난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노키즈존' 사태는 육아비용 분담 둘러싼 갈등

한편으로 부모들이 지불해야 하는 육아비용은 점점 더 커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마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손자, 며느리가 끈끈하게 붙어 살던 가족조차 이미 사라졌다. 모든 육아공동체가 사라졌다. 그래서 육아는 오로지 부모가 감당해야 한다.

냉정히 말해 노키즈존 사태는 육아비용 분담을 놓고 벌어진 갈등이다. 식당이나 카페 주인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들이 육아비용을 분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 있는 가정은 밥값은 덜 내면서 자리는 똑같이 차지한다. 유모차 놓을 자리도 차지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특정한 분위기 때문에 자리를 피하는 손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식당이나 카페 주인에게는 비용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식당을 찾는 것은 예고나 동의를 거치지 않는 행위다. 그냥 우연이다. 식당 주인은 그 비용이 자신에게 예고와 동의 없이 갑자기 전가됐다고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더 비용을 청구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아예 못 들어오게 한다. 그게 노키즈존이다.

당연히 부모도 할 말은 있다. 아이 키우는 일은 사회적 사명이다. 이들이 커서 낼 세금은 무자녀 성인을 포함한 모두의 연금이 된다. 자녀가 나중에 이끌어갈 사회에 부모와 무자녀 성인이 다 같이 얹혀살게 된다. 아이 키우는 비용은 오롯이 부모가 감당한다.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분담하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 메뉴가 더 싼 것은 당연하고, 식당도 카페도 아이들에게 더 잘 맞춰야 한다고 여긴다. 이는 사실 정당한 생각이다.

해법은 뭘까. 차별은 없애고 비용은 나누자는 게 내 생각이다.

우선 저출산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자. 아이 낳지 않는다고 차별하는 문화와 제도는 모두 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 주도의 '저출산 대책'을 폐지해야 한다. 무자녀 부부와 비혼, 독거 가구에 대한 차별을 거둬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못 낳는 게 아니다.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못하는 게 아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비정상은 없다. 비정상이 아니므로 '대책'의 대상일 수 없다. 이게 국가 정책의 기본 가정이 되어야 한다.

대신 양육비용은 최대한 사회 전체가 떠맡아야 한다. 부모에게 육아비용을 보조하는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부모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지만 국가가 사정을 봐서 일부 보조해준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육아비용을 보조하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가 아동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컨대, 아동수당의 전면 도입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동수당은 출산 유도 대책이 아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생활비다. 그 생활비를 부모가 위탁해 사용하는 것이며, 원래는 온전히 아동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 많은 가정이 당당히 더 많은 돈을 내고 식사할 수 있다. 노키즈존 대신 '웰컴키즈 식당'이 수두룩하게 생겨날 수 있다. 식당과 카페 주인들은 이제 어떤 비용도 떠맡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온 고객이 같은 수의 성인 고객보다 돈을 더 많이 쓴다. 중요한 고객이므로 더 좋은 서비스가 주어질 것이다. 그만큼 아동수당의 액수와 기간이 충분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아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보육·교육·의료 등 필수 서비스가 아동에게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양육비 지원하면 분배도 나아진다

한국 신혼부부들을 보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무자녀 비중이 높다. 2015년 기준 연 1억원 이상 소득 가구의 무자녀 비중은 45%인데, 3천만~5천만원 소득 가구의 무자녀 비중은 32%다. 또 지방에 견줘 서울의 출산율이 낮다. 전국 합계출산율은 1.17명인데, 서울은 0.96명이었다. 그러니 아동을 지원하면 그것이 저소득 가구와 지방으로 간다. 분배 상황이 더 나아진다.

차별은 없애고 비용은 분담하자. 이게 저출산 문제, 노키즈존 사태를 푸는 유일하고 당연한 해법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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