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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담았던 곳은 '혐오시설'입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의 배움터인 '학교'를 '혐오시설'이라 이름 붙이고 약자들을 무릎 꿇린다. 기간제교사인 나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채용시험과 면접을 보러 다녔다. 홀몸에 사지 튼튼한 나도 찾아가기 힘든 구석자리에 처박아놓은 듯 자리한 몇몇 특수학교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접근성이 뛰어나도 학생들이 올 수 있을까 말까인데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우리 아이들의 배움터는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하나. 나의 일터는, 정말로 '혐오시설'인가.

  • 한다인
  • 입력 2017.09.19 12:00
  • 수정 2017.09.19 12:03
ⓒmaroke via Getty Images

나의 첫 직장은 발달장애아 및 자폐아 전문교육기관인 서울소재의 특수학교였다. 이듬해 입학생이 줄어 반 하나를 통째로 없애게 되면서 기간제교사 티오 역시 나지 않아 아쉽게도 1년만 근무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여건만 허락된다면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학교였다. 중고등부 미술 교사로서 교실을 순회하며 120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금세 아이들에게 흠뻑 정이 들었다. 왜 굳이 자폐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르는지 전공서를 벗어나 아이들을 만나니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비록 자폐아라는 진단명 하나로 묶여 있었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무지개빛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름을 불렀을 때 1년간 대답 한 번 한 적 없어 목소리도 몰랐는데, 담임선생님께 크게 혼이 나자 억울함을 가득 담아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하고 울며 또박또박 노래를 불러 빵 터지게 만들던 A. 키도 크고 얼굴도 송승헌처럼 잘생기고 수업시간 내내 군인처럼 반듯한 자세를 잃지 않으나 지나치게 귀여운 미소와 가끔 허당같은 모습을 뽐내던 매력남 B. 덩치는 큰데 온몸이 순두부같이 뽀동뽀동하고 배가 볼록 나와 "곰돌이 푸우~"라고 부르면 "넵!"하고 대답하며 달려오던 C. 스케치도 없이 독특하고 거침없는 선으로 친구들과 선생님 초상화를 그리던 작은 화백 D. D외에도 번뜩이는 감각으로 나도 상상조차 못한 멋진 미술작품을 완성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결과물은 비록 조악하나 미술시간이 너무 좋아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활동에 참여하거나 기분이 좋아 팔짝팔짝 뛰던 아이들도 있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싫어하는 아이들도 당연히 있었다. 여기는 학교니까. 아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중증 지적장애를 겸한데다 소근육 힘이 없어 크레파스를 쥐고 선 하나 긋기 어려운 E는 어느 날 하교 전 실종되었는데, 스쿨버스 창 너머로 본 풍경을 죄다 기억하고 한 시간 거리의 자기 집으로 혼자 걸어서 돌아가 교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갑자기 없어지는 아이들이 간혹 있어 빠르게 전단을 인쇄해 배포하고 교사별로 담당 수색영역과 수색조가 미리 구성돼 있는 등 실종 시를 대비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별 문제행동을 한 적 없고 학업성취도도 퍽 우수하며, 늘 예의 바르고, 중증장애 급우를 거의 보조교사급으로 챙기는 F와 G도 있었다. 초등부는 일반학교에서 마쳤으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쟤는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고 웃기'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에게 배척당하다가, 버티다 못해 특수학교 중등부로 옮기게 된 케이스라고 했다. 직업훈련의 일환으로 교내에서 작은 와플수레를 몰며 수요일마다 와플을 구워 팔던 H도 있었다. "아노, 아노, 아노"라는 말을 항시 반복했기에 교사들은 교무실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H의 목소리에 와플수레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즐거워했고, H는 자신의 시그니처를 살려 〈아노와플〉이라는 상호가 붙은 명함을 제작해 돌리기도 했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아침에 스쿨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달려와 포스트잇에 가장 사양 좋은 것들을 가득 적은 쪽지를 수시로 건네며 '한다인 선생님을 위한 맞춤 조립식PC'를 권해주던 I. 그 쪽지는 I의 러브레터였다. 아이들 개개인에 대해 얘기하자면 Z까지 써도 끝이 없다. 자폐아의 특성이라 해도 그 정도가 다 달라서 대화가 가능한 아이와 무발화 아이, 반향어와 상동행동이 심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었고, 수줍은 아이와 쾌활한 아이, 적응이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 노래를 잘하는 아이와 음치, 유순한 아이와 폭력성이 있는 아이들까지 모두 있었다. 일반학교도 그렇지 않은가.

TV에서 주로 소개하는 천재성을 가진 자폐아 '서번트'들 역시 있었다. 그리고 -부정하지 않겠다- 자해를 하거나 남에게 위해를 가할 만한 위험한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기억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놀라운 서번트' 혹은 '위험한 발달장애아' 두 가지뿐이었다. 교무실에는 서번트 아이를 찾는 방송매체의 전화가 꾸준히 걸려왔다. A to Z에 이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 같은 아이들은 관심 밖이었다. 왜? 장애아니까. 장애는 쫌 그런 거잖아? 신기하거나 이상한 거 말고 뭐가 또 있겠어? 와 일반인보다 뛰어난 장애인이다 구경 가자! 와 위험한 장애인이다 어서 피해! ...

'지적장애'와 '지체장애'라는 용어도 구분 못해 맘대로 혼용하고 자폐와 정신병도 구분 못하는(게다가 정신병을 가진 이들조차 싸잡아 극도로 위험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나 하는) 주제에,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의 배움터인 '학교'를 '혐오시설'이라 이름 붙이고 약자들을 무릎 꿇린다.

기간제교사인 나는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채용시험과 면접을 보러 다녔다. 홀몸에 사지 튼튼한 나도 찾아가기 힘든 구석자리에 처박아놓은 듯 자리한 몇몇 특수학교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접근성이 뛰어나도 학생들이 올 수 있을까 말까인데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우리 아이들의 배움터는 일반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하나. 나의 일터는, 정말로 '혐오시설'인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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