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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과 생리, 그 불편함에 대해서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장시간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다. 장시간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나에게 매달 해야 하는 생리는 고통의 근본이었다. 생리가 시작되는 날이면 아무도 모르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엔 더욱더 괴로움이 크다. 여름에는 휠체어 앉아있는 것만으로 힘든데 생리까지 하게 되면 생리대의 표면이 땀에 젖은 살과 닿아서 마치 오물을 깔고 앉아있는 기분이 된다. 더구나 양이 많은 날에는 조금 더 두꺼운 생리대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날이면 차라리 자궁을 떼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비마이너
  • 입력 2017.09.19 11:08
  • 수정 2017.09.19 11:11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장애여성의 눈으로 '발암물질 생리대 사태'를 다시 생각하기

검정 비닐봉지와 생리

여성들에게 생리 혹은 월경하면 떠올리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면 아마도 긍정적인 답변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생리한다는 것은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생리를 한다고 해도 늘 '그 날'이 다가오면 언제 시작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불안을 느껴야 하고 양이 많은 날엔 혹시 새지는 않을까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생리 증후군이나 생리통이 심한 여성들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몸의 고통과 더불어 생리하는 여성은 사회적인 시선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대부분 여성은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생리대를 사게 되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검정비닐에 넣어서 사온다. 그리고 생리대를 처리할 때는 아버지나 남자 형제 눈에 안 띄게 꼼꼼하게 휴지에 싸서 버리도록 어머니나 학교 선생님 통해 교육받는다. 그게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예절이라고 가르친다. 만약 생리대가 흐트러져 있거나 피가 보이게 버렸다면 '여자가 돼서' 칠칠치 못하다고 야단을 맞아야 한다. 그렇게 야단을 맞고 나면 생리하는 것이 죄인처럼 느껴지며 '불결한 여성'이 되는 것만 같다.

가끔 여성 화장실에 '청소하시는 분이 남성이라서 생리대는 깔끔하게 처리'해달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물론 쓰레기를 치우는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생리대가 거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 거북한 게 생리대만 한정되어 있을까. 왜 청소하는 남성의 불편함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청소하는 남자가 아닌 청소노동자를 생각한다면 생리대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볼일 보고 닦았던 휴지들도 잘 처리하라고 모든 화장실에 써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생리는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개인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여성들, 특히 남의 손이 필요한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들은 생리 그 자체가 공포이고 수치심이다.

나는 생리가 두려웠다

나는 14살 때 이후부터 장애가 급격히 진행되어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와 언니들의 귓속말하는 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상희 생리하면 어떻게 해? 이제 나이가 되어가잖아" "난 쟤 생리하면 도망갈래!"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그거' 안 하게 하는 수술이 있다고 하더라.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래. 저 몸에 애도 낳지 못할 텐데 그 수술 시켜버리라고 엄마 친구가 그러더라" 이런 말들이 내 귓속으로 들렸다. 엄마와 언니들은 귓속말로 했다고 하지만 나는 너무 또렷하게 들려서 마치 내 귀에 대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생리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고 생리가 시작되는 날에 그냥 죽어버릴까? 라고 생각까지 했었다. 나에게 생리는 불행을 더 안겨줄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런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나의 몸에 대해, 나의 자궁의 쓰임에 대해 타인의 시선과 입장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여성의 자궁이 재생산 역할을 할 때만 중요시 여겨지는 사회적 편견에 그대로 흡수 되었던 것 같다. 여성주의를 접하고 나서 나는 이러한 내 생각과 사회적 편견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매달 겪게 되는 괴로움

다행히(?) 나는 수술을 받지 않고 생리를 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만큼 불행이 더 커진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다. 처음 생리하던 날, 감당하기 힘든 만큼의 생리통이 있어서 배를 움켜쥐고 앓아누웠었다. 진통제를 먹으면 이상하게도 생리 양이 더 많아져서 약 복용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매달 이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었다.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장시간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다. 장시간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나에게 매달 해야 하는 생리는 고통의 근본이었다. 생리가 시작되는 날이면 아무도 모르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리 할 때마다 방광염이 자주 오기도 하고 피부 트러블도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여름철엔 더욱더 괴로움이 크다. 여름에는 휠체어 앉아있는 것만으로 힘든데 생리까지 하게 되면 생리대의 표면이 땀에 젖은 살과 닿아서 마치 오물을 깔고 앉아 있는 기분이 된다. 생리대를 실시간 교체하지 않은 이상 온종일 찝찝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 아무리 통풍 잘 되는 옷을 입어도 불편한 기분은 똑같았다. 조금이라도 이런 불편함이 나아질까 해서 생리대 제품 브랜드마다 다 써보기도 했다. 더구나 양이 많은 날에는 조금 더 두꺼운 생리대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날이면 차라리 자궁을 떼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온갖 생리대 제품을 다 써 본 결과 그나마 가격이 조금 비싼 생리대 제품이 조금은 나았다. 나는 이것이 피부가 예민한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인 것 같다. 보통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아플 때 어디가 아프다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그런데 왜 유독 생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할까. 왠지 생리는 부끄러운 일이고 남(남성)이 알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생리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예민한 나의 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누구도 나의 몸에 대해 어떻게 존중을 해야 할지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그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성적 대상으로 환원될 뿐 몸 자체로서 존중받지 못해 왔다. 그렇게 남성 중심에 사회에서 타자화된 여성의 몸은 나의 몸이 되었고, 어떠한 긍정적인 생각과 언어를 찾지 못한 채 사회가 부여한 억압의 고리를 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달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괴로움만 느꼈던 것 같다.

발암물질이 검출된 생리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여성단체의 항의 시위 모습 ⓒ여성환경연대 (사진출처 : flickr.com)

생리대 사태, 그리고 장애여성

몇 주 전, 한 생리대 제품에서 발암 물질이 의심된다며 많은 여성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결국 환불조치가 실행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만의 고민으로 안고 살았던 여성들은 생리대 부작용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며 대안적인 생리용품에 관심이 쏠렸고 여러 정보들이 공유되었다. 공유된 대안적인 생리용품 중에 많은 여성들이 신세계를 경험했다며 적극 추천이 된 생리컵은 생리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SNS 곳곳에서 신세계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사실 이미 10년 전부터 여성주의 운동 진영에서는 생리대의 유해함을 지적해 왔다. 이는 생리대의 부작용과 더불어 일회용 생리대가 환경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면생리대를 대안으로 내놓으며 하나의 운동이 되어갔다.

그러나 장애여성인 나는 그 운동에 동참할 수 없었다. 화장실 보조를 받아야 하는 나로선 활동보조인에게 일회용 생리대 교체 보조를 받는 일조차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데, 면생리대 세탁까지 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생리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요즘 많은 여성에게 신세계를 안겨 준 생리컵 역시 나는 사용할 수 없다. 생리컵을 사용하려면 질 안에 생리컵을 넣어야 하는데 보조 받는 입장에서 그러한 행위를 해달라고 말하기도 불편하고 개인적으로 수치심이 느껴질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내 몸에 관한 활동보조 영역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고 굳이 내 몸 곳곳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 활동보조를 하는 입장에서도 상황에 따라서 성적인 불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리컵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장애여성인 나는 발암물질 생리대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어떤 문제이든 대안이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생리대 문제가 남성 사회에 보편적인 문제였다면 앞당겨질 수도 있었지만) 생리컵이 개발된 것처럼 장애여성이 겪는 불편함도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현재 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에서, 생리대를 판매하는 업체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리대 사태는 여성들만의 문제 이전에 국민의 문제이고, 장애여성들만의 불편함에 대한 문제 이전에 국민의 불편함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글 |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 이 글은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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