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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들이 갑자기 휴업을 철회하고 고개 숙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자

  • 박세회
  • 입력 2017.09.18 13:20
  • 수정 2017.09.18 13:55

기세등등하던 사립유치원은 왜 휴업을 하지 않고 사과를 했을까?

전국의 사립유치원들이 모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은 지난 주인 11일 "모든 학부모에게 같은 혜택을 주도록 사립유치원 학부모에게 정부 지원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휴업을 예고했다.

중부일보에 따르면 이들은 국·공립유치원을 현재 25%에서 2022년까지 40%까지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며 휴업 엄포를 놨다.

요구 사항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지 말 것.

2.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가 지원을 확대할 것.

3. 감사는 싫다. 준비될 때까지 늦춰달라. - 중부일보 정리(9월 18일)

시사인의 "사립 유치원의 ‘좋은 시절’은 가고"라는 기사에는 현재 우리나라 유치원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유치원 수는 8987개. 국립·단설·병설을 포함한 국공립 유치원이 4696개, 사립 유치원은 4291개로 절반 수준이지만, 원아수로 따지면 훨씬 많은 아이들이 사립 유치원에 다닌다.

원아 수로 비교하면 사립 비중이 76%에 이른다. 전체 유치원 재원생 70만4138명 가운데 국공립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겨우 17만349명이다. 나머지 53만3789명이 사립 유치원에 다닌다. -시사인/2016 <교육통계연보>(9월 15일)

우리 법에 따르면 학교에 가기 전 3년간은 무상으로 실시하도록 되어있다.

현행 유아교육법 제24조(무상교육)는 “초등학교 취학직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無償)으로 실시하되, 무상의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며 “제1항에 따라 무상으로 실시하는 유아교육에 드는 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되, 유아의 보호자에게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주경제(9월 18일)

그러나 현실에선 추첨을 통한 선별적 무상 보육이 이뤄지고 있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당첨'되어서 공립에 가면 저렴한 비용으로(약 1~2만원) 임용 고시를 통과한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사립유치원에 가면 최소한 월 20만원 이상의 교육비를 학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국공립에 당첨되는 건 말 그대로 '로또'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또식의 '공 뽑기'를 했다.

2016학년도 유치원 원아 추첨식에서 한 학부모가 당첨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도시를 위주로 국공립 비율을 40%까지 늘리겠다'는 것이 목표고,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그러지 말고 그 돈을 우리에게 주면 우리가 하겠다'고 주장하는 상황.

동아일보에 따르면 지난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부이사장은 “국·공립유치원에 비해 사립유치원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하다. 같은 국민이자, 납세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아 한 명당 지원액을 보면 공립유치원은 98만원, 사립유치원은 29만원”이라며 "“그래서 저희는 국·공립 확대정책 대신 그 예산을 사립유치원 학부모에게 월 20만원씩 추가로 지원해 국립과 사립 상관없이 모든 유아가 무상으로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평등하고 공정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물론 정부가 사립유치원에 누리예산을 지원해주지 않는 건 아니다. 시사인에 따르면 정부는 사립유치원에 원아 1명당 29만원(방과 후 교육비 포함), 교원 인건비로 월 최소 40만원(서울시 기준)을 지원한다.

내일신문에 따르면 그 외에도 단기 강사비, 교재비, 신용카드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지원되는 금액까지 합하면 2016년도 사립 유치원에 지원된 국가 예산은 총 2조330억여 원, 사립 유치원 한 곳당 지원금액을 평균 내면 4억7000만원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 돈을 목적에 맞게 쓰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사립 교육기관 감사에 허덕이느라 겨우 슬쩍 들여다볼 때마다 문제가 터져 나왔지만, 사립유치원들은 정부의 감사에 다양한 이유를 들어 강하게 반발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5년 10월부터 사립 유치원 특정감사를 실시해 지난 8월까지 부당 지출된 41억여 원을 보전 조치하고 원장 등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중략) 어떤 곳은 원장 자녀의 애견용품, 성인용품 구입도 유치원 예산으로 집행했다. 설립자와 원장은 매달 1000만원이 넘는 급여를 받으면서 아이들 급식 재료비에는 한 끼당 1000원을 쓴 유치원도 있었다. -시사인(9월 15일)

시사인은 1000개가 넘는 경기도 내 사립 유치원 가운데 70여 곳만 들여다본 결과가 이렇다고 전했다.

그러나 인천일보에 따르면 이 '특정감사'에 반발한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도교육청 감사관 등 3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내일신문은 이번 집단 휴업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가 "사립유치원들이 재산을 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재무회계규칙을 바꿔 내년부터 시행하고, 이런 틀이 갖춰지기 전까지 감사를 유예해달라는 게 휴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지난 16일 '18일 휴업을 강행하는 사립유치원에 대해 유치원 폐쇄와 감사, 고발 등 강력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히자 한유총이 집단 휴업을 철회하고 사과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중부일보는 '한유총이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고 지원은 늘리되 회계 감사는 줄이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폈기 때문'에 오히려 국·공립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과 정부 방침에 힘을 싣는 기폭제가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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