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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의 결단'은 가짜 뉴스다

전술핵을 도입해야 한다는 보수 언론은 헬무트 슈미트의 결단을 추켜세운다. 소련의 SS-20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퍼싱-2를 도입한 독일 총리의 고독한 결단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슈미트의 결단'에서 강조하는 핵심 논리는 퍼싱-2를 갖다 놓았기 때문에 소련이 상호감축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사실이 아니다. 이중결정을 했던 1979년은 브레즈네프 시기고, 퍼싱-2를 배치하던 1983년은 안드로포프가 소련의 지도자였다. 전략무기 감축, 특히 유럽에서의 중거리 핵미사일 감축을 추진했던 인물은 바로 고르바초프다. 그가 등장한 시기는 1985년이다.

  • 김연철
  • 입력 2017.09.18 10:26
  • 수정 2017.09.18 10:35
ⓒBoris Spremo via Getty Images

언제부터인가, 전술핵을 도입해야 한다는 보수 언론은 헬무트 슈미트의 결단을 추켜세운다. 소련의 SS-20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퍼싱-2를 도입한 독일 총리의 고독한 결단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역사적 사실과도 다른 이야기를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누군가 저런 어처구니없는 가짜뉴스를 반박하겠지라는 기대도 했다. 할 수 없이 몇 가지만 지적한다.

1. '이중결정'이란 말을 왜 안 하나?

슈미트의 결단의 구체적인 결실은 1979년 12월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외교·국방 장관 회담의 '이중결정(Dual-Track Decision)이다. 왜 이중결정이라고 부를까를 생각해야 한다.

핵심 내용은 "소련과 핵 군비통제 협상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1983년까지 성과가 없으면 NATO는 SS-20에 대응하는 무기를 배치한다"는 것이다. 핵군비 통제 협상을 먼저 제안했고, 그것이 안 되면 전술핵을 배치하겠다는 약속이다. 핵무기를 배치하니, 위협을 느낀 소련이 협상에 응한 것이 아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이중결정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군비경쟁이 일으킬 수 있는 긴장을 완화하고, 국내적인 설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결단을 한반도에 적용하려면 최소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안을 먼저 말해야 한다. 이중결정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바로 협상과 억지의 균형이다. 보수언론의 거의 비슷비슷한 칼럼(슈미트의 결단과 관련된 최근 몇 개의 칼럼 내용을 비교해 봐라. 거의 표절에 가까울 정도로 내용이 똑같다)은 최소한의 균형감이 없다.

2. 핵억지로 핵군축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슈미트의 결단'에서 강조하는 핵심 논리는 퍼싱-2를 갖다 놓았기 때문에 소련이 상호감축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사실이 아니다. 이중결정을 했던 1979년은 브레즈네프 시기고, 퍼싱-2를 배치하던 1983년은 안드로포프가 소련의 지도자였다. 전략무기 감축, 특히 유럽에서의 중거리 핵미사일 감축을 추진했던 인물은 바로 고르바초프다. 그가 등장한 시기는 1985년이다.

유럽의 중거리 핵 미사일 폐기는 '슈미트의 결단'으로 상징되는 억지력의 강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냉전의 전사 레이건이 밀어붙여서, 압력을 느낀 소련이 굴복한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깃발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평화공세를 배제하고, 어떻게 전략무기 감축협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1985년 제네바에서 이루어진 미소 정상회담과 그리고 아무런 합의가 없었지만 결국 냉전종식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1986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누가 핵군축을 주도했는지를 좀 알았으면 한다.

3. 어떻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유럽의 중거리 핵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했을까?

핵 억지의 결과가 아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중거리 핵 미사일을 전부 폐기해도, 미국과 소련의 전략핵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캬비크에서 중거리 핵미사일의 전량 폐기에 가장 쉽게 합의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79년의 이중결정에서 (1986년의 레이캬비크를 거쳐) 1987년의 워싱턴 미소 정상회담에서의 중거리 핵 미사일 폐기까지는 중간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별 관계가 없다. '슈미트의 결단'을 강조하는 사람들처럼 직접적인 인과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다.

4. 유럽의 경험을 도대체 어떻게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을까?

유럽은 집단안보체제다. 이중결정도 NATO차원의 결정이고, 중거리 핵 미사일 폐기도 미소 정상회담의 결과였다. 동독과 서독의 자체 무장 수준을 어떻게 남북한과 비교할 수 있을까?

슈미트는 소련의 SS-20이 배치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퍼싱-2 배치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서독은 아무런 억지 수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다르다. 남북한은 이미 공포의 균형 상태다.

전술핵을 갖다 놓는다고 추가적인 억지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91년까지 한반도에 전술핵이 있었다. 1960년대 많을 때 950여기까지 있었고, 1991년 철수할 때 150여기가 존재했다. 알다시피 전술핵이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1.21 사태가 벌어졌고, 푸에블로호도 나포되었고, 울진 삼척에 3달 동안 120여명의 무장게릴라들이 제한전쟁을 벌였다.

'슈미트의 결단' 사태는 한국 보수언론의 수준을 드러내고, 매우 우려할 만한 반지성 풍토를 상징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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