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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전술핵 외교' 방미성과를 강변하며 '독자 핵무장'을 거론했다

  • 허완
  • 입력 2017.09.18 11:59
  • 수정 2017.09.18 13:50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겠다며 미국을 방문했다가 냉담한 반응만 마주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자유한국당이 '전술핵 외교'의 성과를 강조하고 나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8일 최고위원회의와 당 '북핵위기대응특위' 회의에 연달아 참석해 '전술핵 외교'가 실패했다는 지적을 반박했다.

"(...) 아침에 어느 언론을 보니 빈손으로 다녀왔다고 적었다. 전술핵 재배치라는 것이 얼마나 큰 세계적인 이슈인데 우리 의원 외교단이 가서 바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했는지 참 가관이라는 말씀을 드린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번 방미 의원 외교단이 가서 한 성과는 일부 언론에서 아침에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쓴 것을 보고 참 어이없다. 우리가 처음 가서, 야당이 가서 전술핵 배치 해주겠다고 하는 그런 답이 올 것으로 예상했는가. 그렇게 쓰는 것을 보고 참 어이없게 기사 쓴다고 봤다."

자유한국당 '북핵위기대응특위 특사단'이 16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뉴스1

그런가 하면 자유한국당 '북핵위기대응특위 특사단 단장'을 맡았던 이철우 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물론 국무부는 자신들의 기조대로 전술핵재배치 외에 핵우산으로 충분하지 않겠냐고 이야기 했지만, 우리의 활동을 워싱턴포스트가 사설에도 언급했다. 그만큼 이번 행사는 미국에 울림이 있었다는 보고를 드린다."

그러자 홍 대표도 "한국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포스트 사설에 안 나온다. 그만큼 방미 의원 외교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일단 사소한 것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워싱턴포스트가 사설에서 언급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따로 자료까지 만들어 홍보했던 '워싱턴포스트 사설'은 논설위원들(editorial board)이 쓴 사설이 아니라 외부 필자가 쓴 '칼럼'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사설에 안 나온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 대선 직후 사설에서 문 대통령을 언급한 바 있다.

여기까지는 사소한 오해나 나름의 주장 정도로 이해해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자체 핵무장"으로 가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북핵위기대응특위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홍 대표는 전술핵 요구가 "자체 핵무장"의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금 길지만 한 번 살펴보자.

"만약 미국이 핵우산을 핑계로 끝끝내 배치 안할 경우에 자체 핵무장하는 그런 국제적 명분도 우리는 가질 수가 있다. 경제 제재가 무서워서 우리 5천만 국민의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단순히 전술핵 배치 요구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고 마지노선으로 자체 핵개발 할 수도 있다는 명분을 갖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전술핵 배치 요구는 성사 될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한다. 그것은 5천만 국민 살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미국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해주지 않을 경우 자체 핵무장도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이 30여년 동안 유지해왔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북한은 물론, 한국도 포함된다)라는 정책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미동맹 관계를 어느 때보다 공고히"(정우택 원내대표)하자는 자유한국당 스스로의 입장과도 모순 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전술핵 재배치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해 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미국의 뜻을 거슬러가며 NPT를 탈퇴해 독자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중국의 '사드 보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의 전 세계적인 경제제재는 물론 한미동맹에 중대한 균열이 발생하는 사태를 피할 길이 없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북한학)은 "'남핵무장론'은 환상에 가깝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이 핵 개발을 시작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한국은 즉시 국제 제재 대상이 될 것이다. 한국의 전략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핵 확산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밖에 없는 강대국들은 한국의 논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한국의 안전과 이익보다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 명백하다. 한국이 직면할 국제 제재가 대북 제재만큼 심각하지 않을 경우에도,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매우 많이 가하게 될 것이다.

(중략)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 핵 확산을 유발할 개연성이 큰 남핵을 북핵보다 더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초강경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다. 사실상 대한(對韓) 무역 보이콧의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한국 경제에 1997~98년의 'IMF 위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마이너스 성장 때문에 생활수준이 하락할 게 분명하다. (조선일보 칼럼 8월30일)

황일도 전 신동아 기자(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2011년 기사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사례처럼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는 세간의 주장을 일축하며 다음과 같은 사례를 상기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례가 2004년 이른바 ‘핵 물질 실험 파문’이다. 2000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일부 직원들이 학문적 호기심으로 시도했던 우라늄 분리실험이 뒤늦게 불거져 IAEA에 회부된 사건이었다. 순수한 연구 목적이었던 데다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과거의 일이었지만, 이를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고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대응임무를 맡았던 외교통상부 고위관계자가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물러서려 했을 정도로 강경한 태도였다는 게 당시 상황에 관여했던 전현직 인사들의 한결같은 회고다.

이후 3개월간 30여 차례의 장관급 회의를 열며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대사관 직원들을 총동원하는 ‘사상 최대의 외교전’을 치르고, 청와대 핵심인사가 존 볼튼 당시 미 국무부 군축·안보담당 차관을 만나 담판을 지은 뒤에야 상황이 가까스로 진화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동아 2011년 3월호)

서독의 슈미트 총리 처럼?

자유한국당은 냉전 시대 서독 총리 헬무트 슈미트의 '결단'을 언급하며 이를 전술핵 재배치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은 홍준표 대표의 말이다.

"우리가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배경을 아침에도 얘기를 했는데 독일의 슈미트 총리의 결단대로 한번 추진해보자는 그 뜻이다. 슈미트 총리가 구소련의 핵미사일에 대응을 해서 독일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때, 미국이 핵우산을 들어서 반대를 했다. 지금 우리 방미의원 외교단이 가서 얘기 할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아마 미국 국무부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똑같은 이유다. 그러나 슈미트는 핵우산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느냐, 전적으로 믿기 어렵기 때문에 전술핵 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것 성사되고 러시아가 굴복했다. 아마 미사일 철수를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헬무트 슈미트 모델이다."

홍 대표의 발언은 18일자 중앙일보 신문에 등장한 칼럼 등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레파토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어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건 역사 왜곡에 가까운 낭설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어처구니 없는 가짜뉴스"라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슈미트의 결단'에서 강조하는 핵심 논리는 퍼싱-2를 갖다 놓았기 때문에 소련이 상호감축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사실이 아니다. 이중결정을 했던 1979년은 브레즈네프 시기고, 퍼싱-2를 배치하던 1983년은 안드로포프가 소련의 지도자였다. 전략무기 감축, 특히 유럽에서의 중거리 핵미사일 감축을 추진했던 인물은 바로 고르바초프다. 그가 등장한 시기는 1985년이다.

유럽의 중거리 핵 미사일 폐기는 '슈미트의 결단'으로 상징되는 억지력의 강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냉전의 전사 레이건이 밀어붙여서, 압력을 느낀 소련이 굴복한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깃발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평화공세를 배제하고, 어떻게 전략무기 감축협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1985년 제네바에서 이루어진 미소 정상회담과 그리고 아무런 합의가 없었지만 결국 냉전종식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1986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누가 핵군축을 주도했는지를 좀 알았으면 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블로그 9월18일)

슈미트 전 총리는 1987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상세히 회고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미국-소련의 2차 전략무기 감축협정(SALT-II)에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 SS-20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미국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된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큰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애초 자신은 이에 대응하는 무기를 배치할 것을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유럽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치적이고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미국 카터 정부의 분별력(wisdom)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또 그는 1979년 카리브해 남부 프랑스령 과들루프 섬에서 열린 미·영·프·독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제안했던 것을 회고하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했다. 먼저 제안한 건 미국 쪽이었다는 설명이다.

1979년 12월,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소련의 위협에 대응해 '이중결정'(Double-Track Decision)에 합의하게 된다.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에서 완전히 없애자는 협상 목표를 두되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련과 똑같은 양의 미국 중거리 미사일(전술핵)을 배치한다는 것.

슈미트 총리는 이 결정의 '아버지'로 네 명을 꼽았다. 당시 과들루프 회담에 참석했던 영국 총리 제임스 캘러헌,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 자기 자신, 그리고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었다.

미국 '핵우산' 못 믿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5일 오후 대구 중구 동아쇼핑 앞에서 열린 2차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이 전술핵 재배치를 미국에 요구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못 믿겠다'는 논리를 댄 것도 기이한 일이다. '동맹국을 못 믿겠다'는 주장이 한미동맹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게다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술핵이나 '핵우산'은 동아시아 전반을 아우르는 고도의 외교 전략과 연계된 문제다. 무턱대고 조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1991년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할 당시 상황과도 연관돼 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선언 때문에 전술핵을 철수한 게 아니라 옛 소련과 맺은 핵 군축 합의에 따라 비핵화선언을 서둘러 시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러시아의 턱밑인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해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변경하겠다는 ‘결단’ 없이는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중앙선데이 제549호 9월17일)

한국과 일본의 자체 핵무장 용인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뒤흔드는 것이어서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게다가 동맹에 대한 핵 억지력 제공을 바탕으로 누려왔던 동북아에서의 패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이어서, 미국이 대외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겨레 9월10일)

미국은 한국 내 반대 의견과 중국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사드(THAAD)를 배치시켰다. 전술핵도 마찬가지다. 전략적으로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미국은 한국이 먼저 요구하지 않아도, 중국이 아무리 강하게 반대해도 전술핵을 한반도에 들여올 것이다. 현재 미국은 전술핵의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국무부 측은 자유한국당 방미단의 전술핵 요구에 "핵우산을 믿어 달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우산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이루는 장치다. 따라서 이 말은 '한미동맹을 믿어 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한국당은 한미동맹을 못 믿겠다는 걸까? 한미동맹을 깨고서라도 자체 핵무장을 하자고 주장할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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