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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실존한다. 그걸 잘 아는 게이 남성의 조언

  • 김도훈
  • 입력 2017.09.13 11:02
  • 수정 2017.09.13 11:03
depressed man sitting head in hands on the interior Skyscraper with low light environment beside the windows over the cityscape background, dramatic concept
depressed man sitting head in hands on the interior Skyscraper with low light environment beside the windows over the cityscape background, dramatic concept ⓒPhotographer is my life. via Getty Images

내게 있어서는 침대가 가장 중요했다. 대학교 이후 최악의 우울증을 겪을 때는 침대에 눕는다는 것이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한 잔 더, 한 잔만 더, 계속 더 부어줘라고 하는 것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침대는 나를 끈에 매인 꼭두각시처럼 끌어당겼다. 눕고 나면 나는 취한 듯한, 꿈과 비슷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잠든 것은 아니지만,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멍한 상태가 될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옛 친구들과의 대화를 상상했다. 미소를 지으며 그간의 의견 충돌에 대해 서로 사과하는 모습을 그렸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난 그 대화들을 종종 반복하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판타지들은 구체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해서 일어난 게 아니었다. 마취제에 담긴 대본 속 대화 같았다. 하지만 위로가 됐다.

밤에 꾸는 꿈도 대피처였다. 최소한 10시간씩 잤고, 무의식은 불편한 꿈을 꿀 때조차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꿈을 꼭 자세히 기억해야겠다고 느꼈고, 꿈에 살을 더 붙이려고 얼른 다시 잠들었다.

당시 나는 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야 할 유일한 이유는 개 산책이었다. 개는 일찍 나가길 원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11시 정도까지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개가 옆에 있는데 우울증을 느낀다는 사실에도 죄책감이 들었다. 내 고통이 그토록 충직하고 나이 많은 동물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행복한 사람이 개를 명랑한 집으로 데려가서 함께 있어줬으면 했다. 개의 온기를 느끼고 싶기도 했다. 개는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매일 해야 할 일은 세 가지였다. 일어나기, 개 산책시키기, 먹기. 다른 모든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들었다. 샤워는 미리 준비해야 할 수 있는 트레킹이나 다름없었다. 양치질을 건너 뛰는 날도 있었다.

집에는 음식이 별로 없었고, 저녁 때까지 굶거나 전날 밤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우곤 했다. 저녁식사로는 집 옆의 던킨 도너츠에 가서 다섯 개 정도를 사곤 했다. 오후 늦게 가면 덤을 준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개를 산책시키며 산 아이스크림과 쿠키와 함께 도넛을 봉지에서 꺼내 바로 먹었다. 어느 날 저녁에 가게 주인이 나를 보고 명랑하게 “아이스크림 아저씨 오셨네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미소를 짓거나 농담을 할 수 없었다. 몇 주 만에 5kg이 쪘다. 나중에 그 체중을 다시 빼는데 몇 년이 걸렸다.

상태가 괜찮은 날에는 한 블럭 반 거리의 체육관에 갔다. 가방을 쌌다가 그대로 벽장에 넣어버리는 일도 많았다.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다 포기하고 집에 가는 날도 있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길 바라며 안에 들어가 기구 몇 개로 운동을 하는 날도 있었다. 포기하고 집에 가거나, 뭔가 해냈다는 기분을 느끼려고 자전거를 20분 타기도 했다. TV 화면을 보며 운동에 마음을 쏟을 수 있길 바랐다. 그곳은 내가 30년 동안 정기적으로 다녀온 체육관이었다.

신문은 1면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신문 읽기 역시 내가 30년 동안 해왔던 일이었다. 마치 내가 휴가라도 간 것처럼 신문이 커피 테이블 위에 쌓여갔다. 어찌보면 나는 휴가를 떠난 셈이었다.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 내가 1년 중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이었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보면 절망이 더 깊어졌다. 여러 사람들이 올린 사진, 멋진 해변 여행 계획, 휴가 포스팅들이 정말 많았다. 모두 정말 잔인했다. 7월 4일이 최악이었다. 여러 리조트 포스팅들이 넘쳐났던데다, 멋지고 안전한(!) 휴일을 보내라는 전화와 문자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그 날 침대에서 Words with Friends(단어 게임)을 했다. 관심도 없는 TV 드라마를 잔뜩 보았다. 지금 그 드라마들 광고를 보면 나는 몸을 움찔하게 된다.

힘을 내게 해주려고 친구가 나를 햄튼스에 데려갔다. 수영하고, 테니스 치고, 해변에 가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주말이었다. 첫 날 아침에 내가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하자 친구는 내게 잔소리를 했다. 그가 실망하는 걸 이해했다. 커피를 만들고 있었고 밖에선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테니스공 튀는 소리가 들렸다. 바베큐를 한다고도 했다. 남자들은 자기가 만났던 귀여운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함께 어울려 놀지 않는 것에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저녁식사 때는 나는 조용히 앉아 미소를 지었다. 그 전 해에 나는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동네에서 만난 사람과 데이트를 했다(이번 주말엔 그가 동네에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해변에서 바디 서핑을 하고 매일 아침 수영했다. 이번에는 나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개 산책에 맞춰 하루 계획을 짰다.

저녁식사 후 나는 얼른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면 빠져나와 침대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30분 정도만 있으면 된다. 나는 침대에 있는 걸 정당화할 수 있도록 어두워지길 갈망했다. 우울증이 내면에서 끌어당기는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내 존재 전체를 장악하고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만들 능력을 거의 없애 버린다. 우울증은 나를 잠식하고, 우울증의 다채로운 어둠은 기만 적인 매력을 지녔다. 이 느낌은 장소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내 모든 말에 공감한다. 그런 점에서 우울증은 중독과 비슷하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고립감이 더해진다. 우울증은 육체적 질병과 비슷하다. 다 낫도록 기다려야 하고, 가장 빠른 회복 방법에 대한 이론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떨쳐버려.”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리고 우울증은 실존한다. 아름다움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운 인생에 대해 하는 아름다운 말 중엔 우울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들어있을 때도 있지만, 그들은 감정의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9월은 자살 방지의 달이다. 게이 남성들이 이성애자들보다 자살률이 높다. 특히 25세 미만에서 차이가 크다.

나는 운이 좋았다. 집과 건강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 나를 도와주는 든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 전의 화창했던 8월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여름이 끝나서 나는 무척 기쁘다.

허핑턴포스트US의 Depression Is Real —Take It From A Gay Man Who Know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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