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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 수난시대 '삼총사'가 욕을 먹는 이유

김성태 의원은 총선을 위해 특수학교 부지를 이용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용할 만한 여론이 뒷받침되고 나서야 정의의 사도로 나서려 한다. 잠자코 있던 나경원 의원도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긴급간담회를 연다. 장애 아이 부모로서 마치 이제야 책임감이라도 느끼듯. 삼총사가 욕을 먹는 이유이며, 장애 아이의 부모로서 내가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있을 때만 정당한 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사살당한 느낌이 들어서다.

  • 류승연
  • 입력 2017.09.13 10:42
  • 수정 2017.09.13 10:46

논란이 일었던 강서구 특수학교 사태는 특별한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예정된 공진초 부지로 결정이 난 것처럼 보인다. '무릎 꿇은 엄마들'의 모습이 전국을 강타한 후 국민적인 여론이 들썩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문제는 특수학교를 설립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 진실이냐는 진실게임의 양상으로 넘어갔다.

장애 아이를 둔 엄마로서 이번 사태를 조용히 지켜본다. 재미있는 건 장애 아이 부모들 사이에서 소위 '욕'을 먹는 삼총사가 이번 사태의 중심에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주인공이다.

사진 : 김성태 의원 SNS 캡처 (링크를 누르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먼저 사실이 왜곡되어 억울하다는 심정을 내비치는 김성태 의원. 그런데 어쩌나. 남의 괴로움을 못 본 체 하면 나쁜 사람인데... 나는 김 의원이 느끼고 있을 억울함과 괴로움을 막 못 본 채 해버리고 싶다. 그의 괴로움을 외면하면서 "그냥 내가 나쁜 사람 해버리지 뭐"라고 자기합리화도 한다.

김 의원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이번 사태를 유발한 핵심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용이 불가능한 '남의 땅'에 제멋대로 한방병원을 짓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은 속은 셈이고, 장애 아이 부모들은 당황했다. 그러면서 애꿎은 지역주민들과 장애 아이 엄마들이 서로 맞붙었다. 감정이 격앙되고 한쪽이 무릎을 꿇자 다른 쪽도 무릎을 꿇었다. 하아~ 서로 다른 목적의 무릎 꿇기. 서로 다른 무게의 고개 숙임.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 김 의원도 어쩌면 의도는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지 용도야 일단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나서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그가 보여준 다른 행동들 때문이다.

호소하는 장애 아이 부모의 외침을 듣다 말고 토론회 중간에 나가버리는 행동,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차별받는 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올린 SNS 게시물이 논란이 일자 살그머니 삭제해 버린 행동. 이런 행동들에 '괘씸죄'가 추가되고 있다.

정치인은 자꾸 말을 바꾸면 안 된다. 행동을 바꾸면 안 된다. 그러면 김 의원처럼 이렇게 힘들고 억울하고 괴로워진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갔다가 다시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가는 등의 행동으로 이미 "워낙에 박쥐가 힘든 것"이란 말을 듣지 않았는가. 자꾸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안 된다고, 박쥐로 살면 안 된다는 충고도 들었을 터다. 그런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이번 사태는 어쩌면 조금 덜 이슈화됐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욕을 먹을 만큼 먹은 김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에 화살을 돌리기 시작한다. 지난 1월 강서구 공진초 부지가 아닌 양천구 마곡지구에 대체 부지를 선정하고 서울시에 도시계획시설 변경을 요청해 특수학교 건립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서울시교육청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사진 : JTBC 캡처

두둥. 무엇이 진실인가! 이제 화살을 받은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이 등장할 차례다. 조 교육감은 김 의원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다.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2015년 양천구청에 공문을 보내 특수학교 신설 가능한 부지가 있는지 문의했으나 적정 용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고 양천구와의 협의는 그걸로 끝이었다는 답변이다.

그러면서 예정대로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할 것임을 대외적으로 천명한다. "특수학교 설립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강서구민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강행의지를 내보인다.

이 지점에서 조 교육감이 욕을 먹는다. 왜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는지, 왜 이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이러는지 욕을 먹는 것이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건에 본격적으로 논란이 일기 시작한 지난 3월부터 장애 아이 부모들 사이에서는 "밀어붙이지 않는 조 교육감이 문제"라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어차피 공진초 부지는 서울시교육청 소속의 '교육부지'다. 다른 사람이 와서 그 곳에 한방병원을 짓겠다, 어린이 공원을 만들겠다, 쇼핑몰을 세우겠다 해도 그 사람 혼자만의 망상이라는 걸 조 교육감은 알고 있었다.

교육감인 그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되는 일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한방병원 건립'이라는 말 자체가 여태껏 나올 여지를 두면 안 됐었다는 얘기다. 그건 이미 내부에서 처리가 끝났어야 할 선결 과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방병원을 만들어달라는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호소'만 하다가 국민적 여론이 형성된 이제 와서야 강행 의지를 내보인다. 그는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만일 기다리던 그것을 얻지 못했으면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있었을 거란 말인가.

사진 : 뉴스1

마지막으로 욕을 먹는 사람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다. 스스로가 장애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나 의원. 같은 처지의 동지(?)를 왜 욕해야 하는가. 나도 참 안쓰럽다.

하지만... 내가 대한민국의 장애 아이 부모들을 모두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나본 모든 장애 아이 부모들은 나 의원에 대한 큰 실망과 배신감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장애 아이 부모란 점을 내세우면서, 진짜 장애 아이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법안(부양의무제 등)은 나 몰라라 하고 평소 '자기 정치'만 한다는 이유였다.

"차라리 그럴 바엔 장애 아이가 있다는 걸 내세우지라도 말던가!" 장애 아이 부모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사실 그동안 나 의원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12일 나 의원이 국회에서 '특수학교 설립개선을 위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순간 떠오른 단어는 '시류 탑승'이란 네 글자였다.

앞서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강서 주민들의 님비현상을 꼬집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사태 해결의 책임을 돌렸던 나 의원. 사실 그녀가 진정으로 특수학교 설립을 원했다면 SNS에 글을 쓰고 긴급 간담회를 여는 대신에 같은 당의 김성태 의원을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고 설득해야 했다. 다른 장애 아이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걸 알지 않느냐며 그를 설득해야 했다. "장애인이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며 일반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한 지붕 아래 있는 동료를 설득해야 했다. 사건의 당사자를. 적어도 국회의원이란 배지를 달고서 장애 아이 부모라는 점을 강조하려면 그랬어야 했다.

김 의원을 설득하는 대신 경쟁 당의 서울시장에게 사태 수습의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도 장애 아이 부모란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게다.

사진 : SBS 캡처

생각해 보니 모두가 그렇다. 김성태 의원은 총선을 위해 특수학교 부지를 이용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용할 만한 여론이 뒷받침되고 나서야 정의의 사도로 나서려 한다. 잠자코 있던 나경원 의원도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긴급간담회를 연다. 장애 아이 부모로서 마치 이제야 책임감이라도 느끼듯.

삼총사가 욕을 먹는 이유이며, 장애 아이의 부모로서 내가 자괴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있을 때만 정당한 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사살당한 느낌이 들어서다.

장애인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특별하게 이용하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정치권이 표를 얻거나 여론의 힘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럴 때만 챙김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너도 될 수 있고 나도 될 수 있는 게 장애인이고 장애인 가족이다. 정치권은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이란 세 글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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