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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의자놀이의 사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시험, 정확하게는 필기시험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비단 기간제교사뿐만 아니다. 기업도 공공기관도 모두 필기시험의 합격이 정규직의 요건인 것처럼 취급한다. 그 결과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끼리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하지만 상시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한다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정규직 고용이 원칙이고 비정규직 고용은 시정해야 할 예외일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고 다른 노동자들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희생양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바로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게 바로 노동의 원칙이다.

ⓒnico_blue via Getty Images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 반대 논란에 부쳐

특수교사 6명. 그 중 정규직은 2명, 나머지 4명은 기간제교사. 소송을 하면서 알게 된 어느 공립학교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특수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필요한 교사는 6명이라는 것, 둘째, 그러나 교육부는 2명만 발령을 냈다는 것, 셋째, 턱없이 부족한 교육부의 교원 발령으로 인하여 해당 교육청은 4명을 기간제교사로 채웠다는 것. 덧붙이면 4명의 기간제교사는 정규직교사와 동일하게 근무한다. 출퇴근 시간도, 출근일도, 하는 업무도 동일하며 학교 행정 업무도 구분 없이 나눠서 한다. 이 학교만 이런 게 아니다. 모든 학교가 이렇게 한다.

4명의 기간제교사 중 한 명은 이 공립학교에서만 8년째 근무 중이다. 만약 여타 노동자들처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을 온전히 적용 받았다면 이 기간제교사는 현재 정년을 보장 받으며 일하고 있을 것이다. 기간제라고 하더라도 2년 넘게 근무한 그 직후부터는 정년을 보장 받으며 일할 수 있다고, 기간제법은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간제교사는 10년, 20년 아니 30년을 근무해도 정년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최근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기간제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는 제외했다.

기간제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임용시험이다. 기간제교사는 임용시험에 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도 여기에 동조한다. 임용시험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교단에 설 자격이 없다고, 기간제교사는 교사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소송을 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이 있는데, 기간제교사 역시도 모두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감이 정한 지침에 따라 서류 심사-(강의 시연)- 면접-임용 심사위 결정을 거쳐야만 임용이 된다는 것이다. 시험의 방식만 다를 뿐 공정 경쟁 시험이라는 점에서 임용시험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필기시험인 임용시험을 교사의 자질을 가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착각하지만, 임용시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임용시험이 시행되었고, 그 전에는 국립 사범대를 졸업하면 곧바로 정규직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립학교 정규직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을 통과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임용시험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공립학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1991년이 되어서야 임용시험이 시행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사립학교는 임용시험과 무관하다는 것은 임용시험이 교사의 자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임용시험은 교사로서의 자격을 이미 갖춘 사람들 중 극히 소수만을 정규직으로 대우하기 위해 만든 좁은 문일 뿐이다. 작금의 상황은 정부가 20명은 필기시험으로, 80명은 서류/시강/면접시험으로 뽑은 후 똑같은 일을 시키고 5년, 10년 계속해서 사용하면서도 그 20명에게만 정규직 자리를 주는 것이다.

잘못은 정규직교사 정원을 낮춘, 그래서 기간제교사를 양산한 국가에 있다. 기간제교사로 임용해서 5년, 10년 사용하면서도 계속 기간제로 남을 것을 요구하는 국가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질을 운운하며 기간제교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면서 차별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억울한 일인데, 지금 기간제교사들은 스스로 자격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기간제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특혜 아니냐고. 지금도 노량진에는 임용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예비 교사들이 넘쳐난다고. 이런 주장이 교사 임용에 관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하던 비정규직노동자가 열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고를 계기로 지하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논의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정규직 전환이 "절차 없는 정규직 전환!". "공정사회 역행의 길!"이라며 반대하는 집회가 최근에도 열렸다.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계속 두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사회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주장을 정부와 기업이 주도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공정성에 반한다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청년 실업 해소와 공정사회 주장이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 더 낮은 노동조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경제 위기 논리도 정부나 기업이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비정규직을 활용하기에 위해 자주 써먹는 논리다. 경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정리해고를 하고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다고 기업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부는 정규직교사 정원을 줄이고 기간제교사를 늘린 것이 학생 수 감소에 대비한 부득이한 조치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학생 수 감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 공무원의 경우에도 정부는 비용 절감을 이야기하면서 공무원 총량제를 시행하고 있다. 공무를 담당하는 사람 중 극히 일부만 공무원으로 대우하겠다는 것이 공무원 총량제다. 정부는 학생 수 감소를 빌미로, 법원 판결에 반하면서까지 영어회화전문강사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이 불법파견을 활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교사, 강사들을 개인사업자인 것처럼 둔갑시켜서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간제교사가 정규직이 되어야만 그 자리가 정규직 일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시험, 정확하게는 필기시험으로 사람을 나누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비단 기간제교사뿐만 아니다. 기업도 공공기관도 모두 필기시험의 합격이 정규직의 요건인 것처럼 취급한다. 그 결과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끼리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하지만 상시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한다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정규직 고용이 원칙이고 비정규직 고용은 시정해야 할 예외일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고 다른 노동자들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희생양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바로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게 바로 노동의 원칙이다.

끝으로 소송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다. 앞서 언급한 소송은 바로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등학교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 인정 소송이다. 정부는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로 이들이 기간제교사라는 점을 들었다. 결국 소송을 하게 되었고, 분노한 시민들의 관심 덕분에 대통령은 취임 직 후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두 분의 순직을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소송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순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라고 주장했건만,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서 두 분만 특별히 순직 대상자로 명시했다. 원래 안되는 것인데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만 특별히 순직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되지만, 만약 반복되더라도 기간제 교사는 더는 순직을 인정받을 길이 없다.

글 | 윤지영 변호사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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