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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 핵으로 협박해도 중국은 침묵할까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과 내 자존심이 중요할 뿐이라는 강대국 특유의 독선이 흘러넘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3일 6차 핵실험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전화 통화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중국 사람들은 틈만 나면 초강대국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난한다. 하지만 사드 배치라는 안보 사안 때문에 경제 보복을 하는 비상식적 나라가 중국이다. 견디다 못해 이마트가 20년 만에 중국에서 철수하고, 롯데마트의 112개 점포 가운데 87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현대차 부품업체들은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고, 삼성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은 1위에서 9위로 추락했다.

ⓒPOOL New / Reuters

한국에서 사드 발사대 4기가 추가 배치된 다음 날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토론 도중 중국의 고참 언론인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사드 배치는 수퍼마켓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이웃 아파트에 사는 여자의 샤워 장면을 들여다보는 격이라는 것이다. 어이없는 비유다. 북한 핵의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전 세계를 협박하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위험성에 의도적으로 눈감고, 주권국가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핵 억지력인 사드에 대한 중국의 편견을 드러낸 대국주의 프레임이다.

북핵은 전 지구적 재앙이다. 1만㎞를 날아갈 수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국 본토의 대부분과 유럽 전역까지 때릴 수 있다. 북한에서 8000㎞ 남짓 떨어진 유럽에서 EU가 강력한 제재에 나선 이유다. 멕시코가 북한 대사를 추방하고, 필리핀이 북한과의 교역을 전면 중단한 것도 북한의 막무가내식 핵 폭주를 못 참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대신 성주에 중계차를 보내 사드 배치 장면을 생중계했다. 환구시보는 "한국의 보수주의는 김치를 먹더니 멍청해졌고, 사드는 악성 종양이 되고, 한국은 부평초 신세가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한마디로 네가 죽고 사는 문제는 내가 알 바 아니고,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과 내 자존심이 중요할 뿐이라는 강대국 특유의 독선이 흘러넘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3일 6차 핵실험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전화 통화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중국 사람들은 틈만 나면 초강대국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난한다. "체제가 다르다고 옛소련과 리비아를 없애더니 이제는 중국을 적대시한다"고 흥분한다. 하지만 사드 배치라는 안보 사안 때문에 경제 보복을 하는 비상식적 나라가 중국이다. 견디다 못해 이마트가 20년 만에 중국에서 철수하고, 롯데마트의 112개 점포 가운데 87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현대차 부품업체들은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고, 삼성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은 1위에서 9위로 추락했다. 삼성 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업계도 중국의 횡포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기본인 정경분리 원칙은 사라졌고, 시대착오적 냉전시대의 적의(敵意)만 번뜩인다. 두 나라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달콤한 레토릭은 악취 나는 쓰레기통에서 나뒹군 지 오래다. 이러면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자유무역을 선도하겠다는 시 주석의 공허한 약속을 믿으라는 것인가.

사드 배치는 문 대통령이 8일 밝힌 대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최선의 조치"가 맞다. 만일 중국의 턱밑에 있는 대만이 북한처럼 핵으로 무장하고 위협을 가한다면 중국은 북핵에 대해서처럼 침묵할 것인가. 어림도 없다. 사드 배치 정도가 아니라 대만을 봉쇄하고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그런데도 방어용인 사드 1개 포대를 들여놓았다고 이렇게 무차별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 사드가 중국을 감시하는 용도라는 의심이 들면 성주에 와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될 것이다. 한국은 미군을 설득해 얼마든지 의문을 풀어줄 의사가 있다. 이제는 중국이 냉정을 되찾고 본질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휘청이던 중국이 손을 내밀자 잡아주었다. 한국전쟁 때 죽기살기로 싸워 한국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적이었지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됐다. 이렇게 해서 1992년 수교한 뒤 사반세기 만에 중국은 한국의 뛰어난 제조업 기술을 발판 삼아 혁신을 거듭한 끝에 경제 대국이 됐다. 물론 한국도 성장하는 중국 시장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런데도 한국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인가. 시 주석의 "인류 운명공동체를 함께 구축하자"는 제안을 실현하려면 죄 없는 한국 기업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대신 막 나가는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 공급을 중단하고 핵 개발 포기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이 발사 방향만 바꾸면 치명적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중국은 옛소련의 해체로 고립된 북한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국과 손을 잡은 현실적인 나라다. 수교 1년 전인 1991년 덩샤오핑은 댜오위타이 18호각에서 김일성과 만나 "영원히 깨지지 않는 동맹은 없다"며 한·중 수교를 예고했다. 댜오위타이를 빠져나오면서 힘이 없어 혈맹으로부터 배신당하고 망연자실했을 26년 전 김일성의 심경을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강국이다. 강대국 눈치 보지 말고 생존과 안보에 대해 당당히 할 말을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환상의 실체를 재점검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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