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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광화문역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영상)

  • 박수진
  • 입력 2017.09.12 13:28
  • 수정 2017.09.12 17:58

"2012년 8월 21일, 농성을 시작할 때는 이곳에 누구의 사진도 없었습니다"

지난 5일, '드디어' 광화문역 안에 5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장애인 3대 적폐(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농성장이 자리를 정리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곳에 헌화하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약속하고 11일 후였다. 1842일 만의 농성장 철거는 하루가 넘게 걸렸다.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은 한결같이 "시원섭섭하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고 말했다.

[2012년 8월 22일 새벽 셔터를 내리기 직전 광화문역 농성 참여자들.]

- 광화문역을 떠나는 기분이 어떠세요?

"원래 2012년 8월 21일 2시에 여기 들어올 예정이었어요. 경찰들한테 밀려서 12시간 후에 깔판 몇개 들고 들어온 게 시작으로 해서, 오늘로 1842일이 되는 날이네요. 처음엔 여기에 어떤 물건 하나도 제대로 갖고 오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2주일 정도는 깔판 갖고 누워서 지내다가 천막도 놓고, 침대도 놓고, 그렇게 된 거죠.

천막은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왔던 정세균 의장이 여기에서 복지 관련 공약을 말하기로 하고 왔었는데 그 기회에 처음 가져왔어요. 우리가 그 일행 뒤로 따라오면서 천막을 가져 와서 깔려고 하니까 경찰들하고 우리하고 다시 싸움이 붙었는데, 대선 후보도 있고 하니까 경찰들이 심하게 못해서 그날 천막 설치하는 데 성공했죠."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광화문공동행동 공동대표)

"이런저런 기분들이 계속 왔다갔다 하는 거 같아요. 아쉬움도 있고. 시원함도 있고. 섭섭함도 있고. 이런 감정들을 좀 정리하는 날이라고도 생각 해서요.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다!라고 생각은 하지만요." (정성철, 광화문공동행동 활동가)

"시원섭섭해요.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나가는 부분이 좀 있고, 제가 원했던 '폐지'가 되지 않았는데 나가는 거라서 그런 부분이 좀 섭섭하고." (이상용, 광화문공동행동 활동가)

"서운하고, 섭섭하지만, 또 우리가 목적을 그래도 (어느 정도) 이뤘다는 게 좋고. 문재인 대통령님이 우리 요구를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조완수, 광화문농성 장애인 참가자)

광화문역에 갔다면 한번은 보았을 것이다. 서명을 받는 테이블 맞은 편에는 얼굴 없는 '송파 세 모녀'를 비롯해, 영정 사진 18점이 놓여있다. 밤낮으로 경찰과 역 직원들, 지하철 이용객들을 자신들의 얼굴로 고스란히 만나온 이들은 매일 이 영정들도 마주해야 했다.

"여기 영정에 모신 분들이 살아계셨으면 더 행복하게 잘 마칠 수 있었겠다... 저는 2013년 8월부터, 딱 1년 되던 해에 이곳에 와서 계속 같이 활동을 했어요. 영정이 한 분 한 분 늘어갈 때마다 이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사회적인 죽음임을 알려내려는 작업들을 계속 하다보니까 저뿐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이렇게 누가 돌아가셔도 무뎌지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가끔 너무 답답했어요. 왜 5년이란 시간동안 이분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하고 웃다가 영정사진 보면, 우리가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뭘까. 속상하고 마음이 무겁고. 여기서 서명을 받고 있으면 바로 맞은 편에 영정이 모셔져 있으니까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거든요." (양유진, 광화문공동행동 활동가)

[8월 10일 종로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 간담회'에서 공동행동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장관의 약속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국민들에게 존재를 알렸다는 뜻이다. 현장을 지킨 사람들은 "5년 전엔 그런 게 뭔지도 모르던" 사람들에게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있다'고 알린 걸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 여기서 지낸 5년 동안 가장 큰 성과가 있다면 뭘까요?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처음에 들어올 때는 장애등급제가 뭔지 부양의무자 기준이 뭔지 이 사회가 알지 못했는데 그런 것들이 알려진 것. 또 그걸 알고 나서 공감해준 시민들이 생긴 것." (이상용)

"지난 대선 때는 후보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빈곤의 사각지대 해소'라는 말로 공약을 썼었어요. 장애등급제 폐지는 언급되긴 했지만 어떻게 할지 예산 계획 같은 건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대선 때는 예산 증액도 이야기했고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라는 명확한 언어를 사용해서 표현했어요.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때 약속했고요." (박경석)

"장애등급제가 뭔지, 부양의무자 기준이 왜 잘못된 건지, 이런 거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는 거 자체가 저희로서는 굉장히 큰 하나의 성과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농성 하기 전에는 저희끼리만 아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분 한 분씩 물어봐 주시고, 거기에 또 저도 동의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시면 힘이 굉장히 나고. 서명을 해주시는 것 자체가 이 운동, 이 움직임에 동참해주고 동의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궁금해하는 반응, 서명하는 거, 토론하는 거. 이런 건 좀 아닌 거 아니냐, 그런 분들도 진심으로 관심 가져주신 거고요." (양유진)

"이미 부양이라는 문제가 가족의 책임이나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로 인식의 방향이 서서히 전환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방향이 맞춰졌으니까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폐지시킬 것인가, 그것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박경석)

- 그동안 마주친 시민들 반응 중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오늘(마지막날) 철거하고, 정리하고 있는데 지나가면서 '고생했다', '수고하셨다' 말씀해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아 진짜, 우리 투쟁을, 이 농성을 많은 분들이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우리가 이 투쟁으로 많이 알려냈구나, 그런 생각이 다시 한번 들더라고요." (이상용)

"지금까지 우리들만의 외로운 투쟁은 아니었을까 고민이 있었는데, 오늘 치우는 걸 보고 전혀 모르는 분이 와서 그동안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가기도 했고, 왜 치우냐,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안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봐와주신 거 같아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이 쌩쌩 지나가는 줄만 알았는데 그냥 지나가기만 한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좋아지더라고요. 우리 외롭지 않았구나, 그렇게." (양유진)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인식이 안돼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얼마전까지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여기 누가 똥을 버려가지고 밖에 나가다가 똥을 밟은 적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와서 여기 시설을 망가뜨린 적도 있고. 또 막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어요. '왜 여기다 이런 짓을 하냐, 집에서 가만히 있지.' 그런 말도 듣고. 또.. 아하하. 내가 말이 안 나와요. 나오지 말라고 그러면서 막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랬습니다." (조완수)

[조완수 씨는 '세어보진 않았지만 농성장에서 50번은 자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분위기가 바뀐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지난해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꼽았다.

-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나요?

"'탄핵'이라는 정국을 맞아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저희도 거기에 함께 했거든요. 촛불집회가 있었기 때문에 정권도 바뀔 수 있었고요. 그래서 바뀐 새 정부도 현장에서, 길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어떤 정권이 들어왔어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았고, 분위기가 확실히 변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양유진)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2017년에 '촛불'이라는 게 있었고,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왔다갔다하는 걸 본 적이 처음이에요. 어마어마한 인파들에게 우리의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됐고요.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문제도 촛불의 중요한 주제이고 이후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야한다고 이야길 더 많이 할 수 있었고요.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는 그때도 많이 노력은 했지만은 그냥 선거에 공약을 거느냐 안 거느냐 이 정도 문제였으니까요." (박경석)

"저희는 5년 동안 대화의 창구도 없었고, 우리가 만나려고 하면 거기서부터 막혀서 답답했는데 지금은 장관이 방문을 했잖아요. 물론 지금까지의 노력이 쌓여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만, 그걸 보니까 예전 정부에서는 일부러 귀를 막고 있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구나. 아직 우리가 말하는 3대 적폐가 없어진 게 아니고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변해가고 있다는 걸 조금씩 실감하고 있어요." (양유진)

- 내일부터의 계획은 뭔가요?

"내일은 일상적인 업무들 활동들 계속 해야죠." (이상용)

"농성은 접지만,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저희는 이것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라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3대 적폐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으로 재조직해서 행진, 서명운동, 계속 준비하고 있고요. 청와대에 10만통의 엽서를 부치려고 해요. 물론 많은 문제로 바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약속과 실천의 계획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새롭게 출발한 문재인정부도, 그냥 정치인 몇명이 잘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정말 국민이 주인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실현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석)

"이게 될 거 같다고 말이 나온다고 해서 우리가 이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계속 투쟁하고, 계속 요구할 거 요구하고,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조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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