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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수교' 카드가 남아 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 포기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만, 한가닥 핵 포기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즉, 북한은 김정은의 육성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핵 포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미국과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불가침이 보장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북한의 이 조건은 표현만 거칠어졌을 뿐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난 20여년간 일관해온 주장이다.

ⓒKCNA KCNA / Reuters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온통 격분한 분위기에서 협상을 말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역사가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 냉정을 찾을 때쯤 우리는 '닥치고 제재'가 사태의 악순환을 증폭시켰을 뿐이라는 사실 앞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협상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는 한계를 더 분명히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의 생명줄을 끊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그것이 북한 경제에 고통을 줄 수 있지만 북한을 굴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에 북한 주민의 고통이 증대하면서 북한 사회의 긴장이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이판사판'식의 정서가 확산되면서 그 히스테리가 고스란히 휴전선이나 북방한계선(NLL)에서 군사적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우리 정부가 대북 제재에 앞장설 때 그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제재 국면에서도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신중하게 전략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북한 핵을 포기시킬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있다. 미국의 정책 전환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미국과 북한의 수교라는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다. 북-미가 서로 원하는 것을 동시행동의 원칙 아래 맞바꾸는 것으로서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포기하면 외교관계 수립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 것이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 포기는 없다"고 외치고 있지만, 한가닥 핵 포기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즉, 북한은 김정은의 육성으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핵 포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미국과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불가침이 보장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북한의 이 조건은 표현만 거칠어졌을 뿐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난 20여년간 일관해온 주장이다. 김정은이 핵무기와 아이시비엠을 보유하려는 실질적인 목적을 추정해도 결론은 비슷하다. 김정은은 대체로 ①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한 대응 ②국내 권력기반 강화 ③북한 정세에 대한 외부세력의 물리적 개입 차단(즉, 불가침 환경 확보) 등의 목적으로 핵 개발에 매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김정은 체제의 안정적 유지가 핵심 목적이다. 이 중 ③항은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는 대신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한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가 민주혁명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을 받아 몰락하고 결국 사망한 사건(2011년 10월)을 계기로 확고해졌다. 핵 개발을 통한 김정은의 권력기반 강화라는 ②항은 이미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북-미 수교와 불가침 약속'은 북핵 포기의 대전환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북-미가 이런 합의를 하게 되면, 우선 북한은 핵 동결과 미사일 도발 중단을 하고 동시에 유엔은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함으로써 합의 구체화 및 이행의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6자회담에서는 이 합의를 국제적으로 보증하고 북한 핵의 영구적인 폐기와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담은 이행 합의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핵 포기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대화조차 불가하다는 입장이어서 이 제안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이 현재의 북핵 상황을 진정 절박한 위협으로 느낀다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으로서는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사실 위기가 막바지로 치닫기에 '최후의 대안'이라고 표현했을 뿐, 북-미 수교는 북핵 문제의 근원이 양국 간 불신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근본 해법이었다.

북한에 대한 극한의 압박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필자의 제언이 일견 당혹스러울지 모르나, 기실 이 방안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기본인식이었으며 대통령 후보 시절 문재인을 지지했던 많은 전문가들이 공유한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미국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엄중한 북핵 상황에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을 직시하여 제재 편승에서 벗어나 주도적·창의적 외교를 향해 험한 길로 나서야 한다. 그래서 이 방안이 아니라도 좋으니 평화적인 현상타파를 선도하는 독자적인 책략과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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