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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의 예정된 몰락 | 1.성공의 패러독스

현재 레고가 겪고 있는 경영 위기는 2000년부터 시작된 시장 확대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레고의 경영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레고의 경영진은 너무 유능했다. 그들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레고가 슈퍼 히어로와 결합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레고의 본질적 가치 - 단순함, 추상성, 연결성- 를 잃어버리는 것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클래식 레고의 우아한 단순함을 그리워하는 내 관점에서 "키덜트"들이 열광하는 콜라보 시리즈들은 거품이 잔뜩 낀 조립식 장난감일 뿐이다.

  • 임규태
  • 입력 2017.09.11 10:05
  • 수정 2017.09.12 10:45

레고가 최근 실적 악화로 1400명을 감원하고, 8개월만에 CEO를 교체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전세계의 수많은 레고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겠지만, 나는 레고가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해 일말의 동정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소식을 이제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지금부터 내가 왜 레고의 몰락을 기다렸는지, 2개의 글로 나눠 이야기하겠다.

레고는 어떤 회사인가?

레고는 장난감 회사가 아니다. 레고는 블럭을 파는 회사다. 블럭이 장난감의 역할을 할 뿐.

1930년대, 덴마크의 목수였던 올에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대공황 여파로 일감이 줄어들자, 나무로 블럭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레고의 시작이다. 레고가 만든 블럭은 특징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단순한 형태로 이루어진 레고 블럭은 요철을 갖고 있어, 다른 블럭들과 연결할 수 있다. 이게 전부다. 아이들은 "단순한" 블럭들을 자유롭게 연결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형상화 할 수 있었다. 나는 레고 블럭의 '단순함', '추상성, '확장성'을 레고의 본질적 가치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레고가 비지니스 관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갖는 사실이다. 레고 블록은 단순한 구조에 고급 재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내구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모든 블럭들이 호환된다. 대물림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애들이 다 크면, 레고가 잔뜩 들어있는 노란색 버켓을 애들이 있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넘겨주곤 했다. 덕분에, 레고는 대대손손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지만, 성장에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대 들어서면서 저가 유사품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디자인이 단순하니까, 카피도 쉽다. (심지어 유사품이 레고와 호환된다!)

레고에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된 레고 경영진은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찾는다. 레고와 컨텐츠를 결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 처음 등장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을 토대로, 마블, DC 계열 영화들과 콜라보하면서 위기 극복의 수준을 넘어, 성공 대로를 걷게 된다. 급기야, 레고 월드는 장난감 영역을 넘어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심지어 테마공원 까지 확장되었다. (현재 마텔에 이은 세계 2위의 장난감회사이다.)

레고 스타워즈 밀레니엄 팰콘 시리즈

그 과정에서, 레고의 유능한 경영진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레고의 새로운 소비층을 개척한다. 바로 '키덜트'들 이다. 어릴 적 레고를 가지고 놀았던 이들이 성인이 된 것이다. 주머니가 제법 두둑해진 이들에게 레고는 애들 장난감이 아닌 향수를 자극하는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친척이나 지인에게 노란색 레고 버켓을 물려주던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지고, 포장을 뜯지 않은 레고 제품이 박스째로 고가에 거래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시계를 돌려 위기를 격고 있는 현재의 레고로 돌아오자.

결국 현재 레고가 겪고 있는 경영 위기는 2000년부터 시작된 시장 확대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레고의 경영진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레고의 경영진은 너무 유능했다. 그들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레고가 슈퍼 히어로와 결합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레고의 본질적 가치 - 단순함, 추상성, 연결성- 를 잃어버리는 것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클래식 레고의 우아한 단순함을 그리워하는 내 관점에서 "키덜트"들이 열광하는 콜라보 시리즈들은 거품이 잔뜩 낀 조립식 장난감일 뿐이다. (그 돈이면 차라리 일본 프라모델을 수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레고 배트맨 시리즈

레고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새로운 레고 경영진이 다시 한 번 위기를 극복할지, 아니면 부동의 스마트폰 1위였다가 하루아침에 거품처럼 사라진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지 관심이 없다. (불현듯 내가 2009년에 노키아의 몰락을 예측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게 우연일까?) 지금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레고가 예전의 레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유일한 목표인 전문 경영 시스템에서는 오직 양적 확장만 존재한다. "전기톱"이라는 전문 직군이 존재하는 이유다.

나는 자신들의 본질적 가치를 잊어버린 레고가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어려웠던 시절에 레고에게 대안은 있었을까?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나는 레고가 자신들의 본질적 가치를 유지하면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레고가 자신들의 본질적 가치 - 단순함, 추상성, 확장성- 를 버리고 상업적 성공에 몰두하는 사이, 레고의 DNA를 고스란히 계승한 후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

* 이 글은 〈레고의 예고된 몰락 | 2.진격의 레고 키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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