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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화가 나도 소년법 '폐지'를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

  • 박세회
  • 입력 2017.09.06 13:55
  • 수정 2017.09.06 14:04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의 여파가 커지고 있다. 가해자들이 국민 법감정에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청원에 서명한 이가 28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년법 폐지 여론에 불을 지핀 사람 중 하나는 '개정'을 주장한 표창원 의원이다.

그의 주장은 '개정'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폐지 주장의 근거가 됐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부산의 중학생들이 동년배를 폭행한 이른바 사건 가해자들에게 소년법이 아니라면 살인미수 혐의도 적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금 이 사건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적용한다면 야간에 무기 등을 사용해 2명 이상이 행한 상해죄다. 사실상의 살인미수로도 적용이 가능하다" -중앙일보(9월 5일)

아이로니컬하게도 표 의원은 지난 2013년 2월 25일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에선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그는 당시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은 범죄 예방의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범죄학에서는 거의 결론이 내려졌지요. 그래서 이러한, 범죄와의 전쟁 혹은 범죄를 발본색원하겠다, 범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응징하겠다, 이런 흔히 말해서 '로 앤 오더 팔러틱스(law and order politics)'라고 하는, 법질서를 강조하는 정책들은 사실은 범죄예방효과가 전혀 없다, 오히려 범죄를 증가시킨다, 그런데 오히려 사회를 통제하고 얼어붙게 만든다." - 표창원/오마이뉴스 재인용

오마이뉴스에 청소년 지원 변호사 김광민 씨는 표 의원이 당시에는 이처럼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은 범죄 예방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사회를 경직시킨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전했다.

한편 막말 논란으로 '여자 홍준표'라는 비판을 받아온 자유한국당 류여해 최고위원은 "소년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 독일 소년법을 너무 고민 없이 옮겨왔고 그 뒤에 누더기 개정을 거치면서 현실성 없는 소년법이 된 것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위원은 이어 "형사미성년자의 연령문제도 가볍게 고민할 것이 아니다"라며 "냄비처럼 끓다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밌게도 이 말 역시 표의원이 한 말이다. 표 의원은 지난 7월 JTBC '썰전'에 출연해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만 14세 미만으로 보는데 독일 형사법 체계다. (이런 체계는) 일본과 우리나라 정도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러니 류 위원의 말과 표 의원의 말은 언뜻 다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같은 말이다.

소년법을 개정할 수는 있지만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소년법을 정말 '폐지'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10세 미만은 어떤 형사 책임도 지지 않고 10세 이상 14세 미만을 촉법소년으로 따로 분류하여 '보호처분'을 부과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이 '보호처분'을 형사제재의 일부로 보면 우리나라의 '형사책임연령'은 10세가 되고, 이를 형법에 정해진 형벌 부과의 대상으로만 따지면 14세가 된다.

세계 각국의 입법례를 보면 소년사법의 형사책임연령(The age of criminal responsibility)은 7세에서 18미만까지 매우 다양하게 정해져 있다.(국회입법처 정책연구용역자료, 「형법」상 형사미성년자 연령 설정과 「소년법」상 소년보호처분제도와의 관계: 외국의 입법례를 중심으로)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형사미성년 연령 기준은 세계 주요국에 비춰봐도 평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왜 세상의 모든 나라가 아이를 어른과 구분할까?

근본적인 이유는 간명하다. 아동 청소년기의 비행은 본인에게서만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찾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국회입법처, 상동 자료 인용)

그 이유는 통계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오마이뉴스는 경찰청이 낸 2016년 경찰범죄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미성년범 7만 5757명 중 50.4% (3만 8173명)가 생활 수준으로는 하류층에 속했으나, 상류층인 미성년범죄는 0.8%(601명)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특히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가정 형태별로도 부모가 없거나 친부모가 아닌 가정에 있는 미성년 범죄자가 5만 6612명으로 전체의 68.1%를 차지했다고 한다.

법적으로도 아동 청소년을 구분해야 할 논리가 있다.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행위”여야 하는데, 이 “책임”은 행위자가 적법한 행위를 할 수 있었음에도 범죄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규범적 평가, 다시 말하면 불법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에 그 본질이 있다.(헌법재판소 2003. 9. 25. 2002헌마533 결정, 재인용)

현행 형법은 14세 미만은 지적·도덕적·성격적 발육상태와 별도로 사물의 변별능력과 그 변별에 따른 행동통제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국회입법조사처,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조정의 논의와 쟁점')

그래서 그동안 주로 문제가 된 건 '14세'라는 선을 어떤 근거로 그었느냐다.

소년법의 연령(10세 미만, 10~14세 미만, 14세~19세 미만) 구분을 확정하기 위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

1958년 7월 24일 제정된 소년법에서는 만12세 이상을 하한연령으로 규정한 이후 2007년 소년법 개정의 과정에서 소년범죄의 저연령화, 흉포화에 따른 사법대응책의 강경화로 인해서 보호처분 대상자의 하한연령이 만10세로 낮아졌다.

그러나 폐지를 진지하게 논한 적은 없다.

특히 이번 케이스에서 가해자 4명 중 한 명이 촉법 소년(10~14세)이라는 논란에 대해서 뉴스1은 "‘형사처분’을 받지는 않지만 경찰에 입건되고 소년분류심사원에 입원하거나 또는 소년원 송치 등의 ‘보호처분’을 받는다"고 전했다.

형사미성년이더라도 범죄를 저지렀을 경우에는 경찰조사, 법원 소년부 심리,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등을 거치는 과정을 만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 처벌로 받아들일 개연성도 낮지 않다.

이 때문에 단지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형사미성년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1(9월 6일)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가해자 역시 형사처분 절차와 '유사한 형벌'의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다.

뉴스1은 또한 형사정책 전문가들이 소년법의 청소년 범죄자 형 감경 조항을 폐지하는 것으로 청소년 강력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강력범죄 사건의 발생에 따른 '처벌강화' 여론으로 형사미성년 연령에 손을 댈 경우 '낙인효과' 등에 따라 범법소년들이 사회로 정상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원천 차단돼 사회에 더 큰 폐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뉴스1(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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