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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즐거운 사라'에 대한 당시 법원의 판결문

소설가이자,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인 마광수씨가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가족은 그가 “그동안 우울증이 있었다”며 “자살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광수 교수의 별세 소식에 그의 대표작 중 한 편인, 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 소설은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대생이 여러 남자를 만나 섹스를 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92년 10월 29일 당시 검찰은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간주했고, 당시 학교에서 강의 중이었던 마광수 교수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후 12월 1심에서 그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마광수 교수는 항소를 했지만,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도 항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그래서 ‘즐거운 사라’는 지금도 금서다. 단, 마광수 교수는 지난 2013년, ‘2013 즐거운 사라’를 출간한 바 있다. ‘즐거운 사라’의 속편으로 이 책에서 사라는 자살한다. 이에 대해 마광수 교수는 2015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사라를 자살시킨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의 한국을 풍자한 거지. 야한 거를 무슨 대역죄로 보더라. 빨갱이도 안 잡아가는 세상 아니야. 근데 왜 야한 것만 가지고 난리야. 야한 소설로 유명한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나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이런 건 건드리지도 않으면서. 내가 또 그거 사 봤잖아. 재미 하나도 없더라. 별로 야하지도 않고.”

1990년대 당시 검찰과 법원은 ‘즐거운 사라’를 어떻게 보았을까? 옛날 신문에서 판결문을 찾아봤다.

“‘즐거운 사라’의 내용이 생면부지의 남자와의 성관계, 여자친구와의 동성연애, 대학스승과의 부도덕하고도 음란한 성행위등이 여과되지 않고 장황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사회의 건전한 도덕성을 파괴하고 성질서를 문란케 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는 충동적 모방심을 자극해 성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중략.... 비록 작가의 창의력이 존중돼야하는 점도 있으나 소설의 전체적인 맥락이 노골적이고 변태적인 내용을 주로하는 경우에까지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다.” - 1992년 10월 30일. 마광수 교수 구속 당시 검찰의 발표 ‘경향신문’ 보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반인의 성의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학작품이 상세하고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실어 출판되어서는 안된다는 공동체의 성도의관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 ‘즐거운 사라’는 온갖 변태적인 성행위와 불륜관계가 작품의 중추를 이루고 있어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잃었을뿐 아니라, 각종 성범죄를 유발하는 등 사회적 폐해도 적잖다” - 1992년 12월 29일. 1심 판결 ‘경향신문’ 보도

“‘즐거운 사라’는 항문성교, 카섹스, 비디오 섹스등 병적이고 동물적인 성행위 장면이 감각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됐을 뿐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나 통찰을 제시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문학작품이라고 해서 무한정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으며 건전한 성풍속이나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소설의 주조를 이루는 노골적이고 상세한 성행위 묘사는 일반인들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 인간의 성행위 자체에 대한 혐오감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 1994년 7월 14일. 2심 판결 ‘동아일보’ 보도

“오늘날 각종 매체를 통해 성적표현이 대담,솔직해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 해도 정상적인 성적 정서와 선량한 사회풍속을 침해하고 타락시키는 정도의 음란물까지 허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즐거운 사라’는 그 한계를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 - 1995년 6월 17일. 대법원 판결 ‘한겨레’ 보도

2015년, ‘월간 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마광수 교수는 재판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예전에 검찰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즐거운 사라>의 사라가 반성을 안 해서 유죄래. 미쳐 미쳐. 끝 장면에 사라가 ‘오늘도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고 말하는데, ‘먹잇감’ 이 단어가 도마 위에 올랐어. 왜 이렇게 천박한 말을 썼느냐고.”

또한 그는 이 인터뷰에서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 솔직했으면. 사라가 즐겁게 살 수 있는 솔직한 사회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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