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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공영방송 정상화'와 '방송 장악'은 어떻게 다른가, 달라야 하는가

  • 허완
  • 입력 2017.09.05 12:48
  • 수정 2017.09.05 13:06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 토론 도중 (MBC논설실장을 앞에 두고) "옛날에 아주 자랑스러웠던 MBC의 모습 어디 갔냐, 이런 생각이 든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취임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둘러 말하는 경우도 없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무너진 게 많은데 가장 심하게,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우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 쪽이 아닐까 싶다"거나 "공영방송은 그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져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방송탄압-언론파괴 저지를 위한 긴급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일찌감치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회'를 결성한 자유한국당은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하며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노골적인 방송장악 시도이고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는 그런 폭거"라고도 했다.

홍준표 대표는 "정기국회 보이콧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방송파괴 음모를 분쇄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비상계엄 하에 군사정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언론파괴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말하는 '공영방송 정상화'와 홍 대표가 말하는 '방송장악'은 어떻게 다른 걸까?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홍 대표가 목소리 높여 규탄하고 있는 '방송장악'부터 한 번 살펴보자.

1. 방송장악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방송탄압-언론파괴 저지를 위한 긴급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두고 "방송장악"이라고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그동안 숨겨놓은 언론장악 발톱"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김 사장 체포영장 발부는 "정부가 공영방송을 자기네들 나팔수로 활용"하려 한다는 증거라는 게 자유한국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체포영장 사태'는 김 사장이 특별근로감독에 나선 고용노동부의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다소 이례적인 건 맞지만, 김 사장이 '노조탄압' 혐의를 받고 있는 사실상의 피의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방송장악'은 자유한국당이 말하는 그것과 차이가 있다. KBS나 MBC 같은 공영방송이 그동안 권력의 외압에 굴종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해왔다는 것.

"공영방송의 경우에 기본적으로 지난 정부 동안 공영방송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그런 노력들이 있었고, 그게 실제로 현실이 됐다." - 3월22일

"이번에 공영방송이라도 제 역할을 했더라면 이렇게 대통령이 탄핵되고 아주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로 소환이 돼서 구속되니 마니 하는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장악해서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 8월17일

문 대통령의 인식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도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KBS 보도 책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정부를 비판하는 아이템을 뺄 것을 지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KBS) 길환영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는 폭로도 있었다.

사진은 2016년 6월, 전국언론노조가 2014년 4월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전화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는 모습.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이 임원 인사 때문에 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였다'는 사실도 논란이 됐다.

그밖에도 정부가 '언론장악'을 시도한 정황과 증거, 각종 연구자료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정부가 입김을 미칠 수 있는 언론사와 관련 정부기관에 대통령 측근을 '낙하산'으로 앉힌 사례,
  • 정부 비판 기사를 검열하고 아이템을 삭제시킨 사례,
  •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낸 사례,
  • 정부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인을 상대로 체포영장과 소송을 남발한 사례,
  •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사에 광고를 몰아준 사례,
  • 해고와 징계로 언론사 노조를 탄압한 사례 등

반론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공영방송에 입김을 행사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인사다. 두 정부 모두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인물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질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다.

일례로 참여정부에서 임명됐던 정연주 KBS 사장은 보도나 아이템 선정에 일체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KBS 기자협회장이나 전 보도국장의 증언이 뒷받침 한다.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특정 아이템을 빼거나 청와대의 '보도지침'을 내려보내는 일은 없었다는 것.

정 전 사장은 지난해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 노 전 대통령은 실제 KBS 사장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나?

“KBS를 운영하는 데 있어 자율성을 저해하는 건 내 스스로 다 차단하려고 했고, 실제 전화는 없었다.(웃음) 정권 차원에서 왜 불만이 없었겠나. KBS가 참여정부 시절 비판 보도를 많이 해서 지지자들이 ‘KBS가 참여정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항의도 많이 했는데. 한미FTA와 관련해 정부 인사가 내게 너무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언론 본연의 기능, 사실 전달과 권력 감시에 충실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2016년 6월20일)

그래서, 문제는 '공영방송 정상화'다.

2. 공영방송 정상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언론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라는 것을 약속드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말은 따로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아예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안을 입법을 통해서 강구를 하겠다. 지금 이미 국회에 그런 법안들이 계류되어 있는데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정부도 함께 힘을 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약집(61쪽)에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확실한 방안"들로 몇 가지 과제들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첫 번째로 등장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항목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KBS와 MBC, EBS 같은 공영방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도가 그렇게 되어있다.

핵심은 인사권이다. 대통령은 공영방송 경영진 선출 과정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고리는 방송통신위원회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측근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에 앉혔다. 소위 '방통대군'으로 불렸던, MB정부 실세 중 실세였다.

관련법(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방통위는 총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대통령은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을 임명한다. 여당이 1명을, 야당(교섭단체)이 나머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과적으로 정부 및 여당 3명, 야당 2명의 구도로 위원회가 구성되는 구조다. 이런 방통위에 공영방송 이사장 및 사장 인사에 대한 막강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2012년 4월25일,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검찰청에 출석하는 모습. ⓒ뉴스1

* KBS :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방송법에 따라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11명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한다.

* MBC : 특수재단법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지분 70%를 소유한다.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방문진 이사 9명을 임명한다. 이 이사회가 사장을 임명한다.

* EBS :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장과 감사를 임명한다. 비상임이사 9명도 방통위가 임명한다.

이런 점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7월, 국민의당·정의당 의원들과 함께 각각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세 법안에 공통적으로 담긴 핵심은 각 공영방송의 경영진 선임에 방통위가 직접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소위 '방송장악 금지법'이다.

이 법안들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방통위의 이사 임명·지명 권한을 박탈하고 대신 여당이 7명을, 야당이 6명을 추천해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함

사장 임명과 해임 권한을 각 이사회에 넘기고, 이사회가 사장 임명 및 해임을 결정할 때 이사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함 (정부·여당 이사진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도록 함)

이사회와 별도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공개모집을 거쳐 사장 후보를 추천하도록 함 (사장 선임 과정의 공정성 확보)

사장 또는 이사의 임기 및 독립성 보장, 정치활동 개입 금지, 강제 해임 금지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함)

이사회 회의 회의록 작성 및 공개 의무화 (이사회 투명성 강화)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들에 제동을 걸었다. 그 덕분에(?) 김장겸 MBC 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전 유유히 MBC 사장에 취임할 수 있었다. 홍준표 대표가 "지금 남아있는 게,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MBC 밖에 없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3. 공영방송은 어떤 방송이어야 하는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KBS본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KBS본부노조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방송장악 금지법'이 완벽한 건 아니다. 선진국의 공영방송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지배구조는 취약하고, 권력의 개입을 제어할 안전장치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 법안들이 추구하는 원칙은 분명하다. 공영방송이 일방적인 정권 홍보방송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송이 되어야 한다는 것. 민주사회 시민이라면 이 원칙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다.

허프포스트가 2015년 소개한 호주 공영방송 ABC의 사례를 다시 떠올려보자. 아래는 당시 ABC 사장 마크 스콧이 총리의 '외압'에 맞서며 했던 말이다.

“어떤 팀에서든 같은 팀이라 하더라도 각각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기 마련이다. ABC는 (정부와) 같은 편이지만, 역할은 다르다.”

“북한, 러시아, 중국, 베트남처럼 ABC가 정부의 관영방송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ABC는 분명 호주 방송국이며, 호주의 편이다. ABC의 A는 호주를 뜻한다. 우리가 호주를 위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우리의 문화와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룬다. - 독립적인 공영방송으로 존재한다는 건 그런 뜻이다.”

"독립적인 공영방송". 눈치보지 않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자유롭고 공정하게 보도·제작에 임하는 방송. 공영방송은 마땅히 그런 방송이어야 한다. KBS와 MBC는 공영방송이다. '관영방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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