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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안전성과 여성건강 확보의 훼방꾼들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식약처는 이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전성분 공개나 안전성 규정 강화 등의 요구도 묵살해 왔다. 오죽했으면 환경단체가 자비를 들인 조사 결과까지 첨부해서 정책 개선을 건의했을까 싶다. 책임을 방기한 식약처가 그런 시민단체의 노력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하며 공격하고 나섰으니 적반하장격이다. 식품과 의약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약처의 무사안일은 위험 수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 장재연
  • 입력 2017.09.04 08:03
  • 수정 2017.09.04 08:06

식약처의 갈팡질팡 보도자료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과 소비자들의 부작용 집단 제보로 촉발된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논란이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갈팡질팡 왜곡과 일부 언론의 본질을 벗어난 보도로 인해 크게 혼탁해지고 있다.

식약처는 8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여성환경연대의 시판 생리대에서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 결과를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어 이를 근거로 정부나 기업의 조치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식약처의 보도자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부 언론은 특정 업체가 다른 업체를 죽이기 위해 시민단체를 매수해서 엉터리 실험 결과를 무책임하게 발표한 것처럼 호도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고 '손으로 하늘 가리기'도 어느 정도지, 이런 왜곡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횡행하다니 어이가 없다.

생리대 유해화학물질 규제 촉구 기자회견, 사진 한겨레

여성환경연대의 문제 제기

여성환경연대는 1999년 창립된 이후 지구와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시민운동에 주력해온 환경단체다. 자체 비용을 들여 매출량이 가장 높은 생리대 제품 10종의 유해물질 조사를 이 분야의 분석 경험이 많은 강원대학교에 의뢰해서 다수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결과는 보통의 경우에는 바로 언론을 통해 발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성환경연대는 그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2017년 3월 식약처에 공문과 함께 결과 자료를 보내고 해당 기업들과도 공유했다.

여성환경연대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까지 이들 화학물질에 대한 법적 규정이 만들어져 있지 않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기업의 선의의 피해를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 단체의 성과와 홍보를 포기하고 정부와 기업에게 실태 조사 및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할 기회를 준 사려 깊은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안생리대 운동을 펼치는 여성환경연대, 사진 여성환경연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약처

공문이 접수된 지 약 반년이 지나서야 반응을 보인 식약처가 여성환경연대의 조사 결과를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며 정부나 기업이 할 일이 없다고 뒤통수를 친 근거는 상세한 시험방법이 없고 연구자간 상호 객관적 검증(peer-review)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환경연대는 권위 있는 대학기관의 실험에 의해 일회용 생리대에서 각종 유해물질이 검출됐으니, 그것이 유해한 수준인지 아닌지, 현재 식약처가 실시하고 있는 검사 항목으로는 일회용 생리대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불충분한 것은 아닌지를 묻고, 전문적인 검토를 해달라고 한 것이다.

책임 있는 정부 기관인 식약처에, 그야말로 '객관적인 검증'을 부탁한 것이다. 학술논문을 제출한 것이 아니라 민원을 제기한 것이고, 정책 개선을 건의한 것이다. 분석 결과가 틀렸으면 몰라도, 거기다 대고 식약처가 자기들이 무슨 국제 학술지 심사위원인 양 '객관적인 검증(peer-review)을 거치지 않았다'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식약처의 무사안일

일회용 생리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상당량의 숫자를 매달 반복해서, 그리고 10대 초반부터 수십 년간 사용하는 제품이다. 그것도 화학물질의 흡수가 용이하며, 아주 예민하고 건강 문제가 생기기 쉬운 부위에 밀착 사용되는 제품이어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컸던 제품이다.

또한 심한 생리통으로 고생하다 대안 생리대로 바꾸면 증상이 크게 호전되었다는 경험이 입소문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은 더욱 커져 왔다.

그러나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식약처는 이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전성분 공개나 안전성 규정 강화 등의 요구도 묵살해 왔다.

오죽했으면 환경단체가 자비를 들인 조사 결과까지 첨부해서 정책 개선을 건의했을까 싶다. 책임을 방기한 식약처가 그런 시민단체의 노력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하하며 공격하고 나섰으니 적반하장격이다. 식품과 의약품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식약처의 무사안일은 위험 수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비과학적 운운하는 식약처는 얼마나 과학적인지 살펴보자.

식약처 판매허가를 받은 안전한 제품이라고 했으나 결국 환불에 들어간 제품. 사진 뉴스1

식약처의 비과학성, 비전문성, 무성의

식약처는 8월 31일 같은 보도자료에서 생리대 접착제로 사용되는 스틸렌 부타디엔 공중합체(SBC)는 발암물질이 아니며 미국에서는 식품첨가물로 사용되고 있다고도 밝혔다. 정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여성환경연대의 실험은 일회용 생리대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화학물질을 분석한 것으로 시험성적서를 보면 벤젠, 톨루엔, 자일렌, 트리메칠벤젠 등 방향족 탄화수소류를 중심으로 염소계 탄화수소류, 아세톤 등을 분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스틸렌 부타디엔 공중합체에 대해서는 분석실험을 수행하지도 않았는데, 엉뚱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식품첨가물에 사용하고 있어 '먹어도 되는 물질'이라는 식의 설명은 소비자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정말 막된 기업이 아니라면 해명 문구에서조차 사용하기를 기피해야 하는 표현이다. 이런 서술을 정부 기관인 식약처가 대국민 공식 문서에서 버젓이 사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놀랍다.

식약처가 생리대 이상 사례를 접수한다고 홈페이지에 개설한 설문은 유치하고 무성의하기 이를 데 없다. 과연 식약처가 이 문제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식약처 홈페이지 초기 화면

생리대 사용으로 인해 겪은 이상 사례를 묻고자 한다면 생리통, 생리불순 등 여성들이 생리 중에 겪을만한 증상들과 관련된 응답 항목을 제시해야 함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식약처 설문을 보면 전신반응, 눈/코/귀/입, 심혈관, 위장관, 간 및 담도, 호흡기, 신장, 근골격 등등을 나열하고 있다.

제품 사용량의 경우에도 사용한 생리대 숫자와 빈도 등을 물어야 하는데, 1회 투여량, 투여 빈도 등 엉뚱한 단위를 선택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경악스러운 질문은 제품 사용으로 인한 증상 때문에 초래된 결과를 묻는 항목이다. 입원, 중대한 불구, 선천적 기형, 생명의 위협, 사망 등에서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것이 여성환경연대가 권위 있는 대학에 의뢰한 연구결과에 대해 비과학적 운운했던 식약처가 생리대 사용으로 인한 이상 사례를 조사하겠다는 설문 항목이다. 이보다 더 비과학적이고 비전문적이기 쉽지 않다.

이 설문은 아마도 비특정 의약품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하던 항목을 하나도 수정하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리대 안전성에 관한 논란이 사회적으로 이렇게 뜨거워도 이런 수준의 설문을 겁도 없이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내거는 식약처, 이보다 더 비과학적이고, 비전문적이고, 무성의할 수 있을까?

식약처 생리대 이상사례 설문 항목의 일부

중구난방 전문가와 언론

이번 사태에서 여성환경연대 조사 결과가 생리대 안전성을 평가하는데 부족하느니 어쩌느니 하며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전문가들 역시 자중할 필요가 있다. 여성환경연대가 제기한 문제의 본질과 전후 사정도 살피지 않고 어설픈 전문성을 내세워 환경단체가 마치 무책임한 문제 제기를 한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성환경연대는 그동안 정부, 학계가 무시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그러나 엄청난 인구 집단이 사용하고 있고 부작용을 염려하는 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정부와 학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도 우리 언론의 역할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든다. 일회용 생리대와 관련해서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과 부작용을 공론의 장으로 올리고, 안전성 평가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제도적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증거도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어이없는 음모론이나 추측성 기사로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탁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미흡한 생리대 안전성 평가

현재 일회용 생리대의 규제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은 폼알데하이드, 색소, 형광물질, 산알칼리 규정뿐이다. 이번에 검출된 휘발성 유기화합물들에 대해서는 안전 기준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현행 규정은 생리대의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리대에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사용 과정을 통해 체내로 흡수된다면, 심각한 보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설사 유해물질 함량이 매우 작아 개별 유해성은 낮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인구 집단이 매우 자주 그리고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서 보건학적 심각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휘발성 유기화합물만이 아니라 생리혈에 의해 용출되어 건강 피해를 줄 수 있는 물질은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 생리혈이 새지 않도록 만든 기능이 오히려 건강에 해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지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안전성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여성들의 일회용 생리대 사용이 생리통이나 생리불순 등 이상 증상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연구 조사 역시 필요하다.

사진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제조 회사가 지켜야 할 윤리

지금 국제적으로 많은 운동화, 의류 회사들까지 자신들의 제품 제조과정에서 독성물질을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약속과 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운동화나 의류에 함유된 독성물질의 건강영향이 생리대에 함유된 독성물질에 비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들은 제품 사용에 의한 유해성만이 아니라 생산과정과 심지어 폐기된 이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과 비교해서 이번 사태에서 숨을 죽이고 있듯 침묵하고 있는 생리대 제조회사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다.

일회용 생리대 제조 회사들은 자기 제품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됐으면, 설사 그 물질이 아직은 정부의 규제 항목은 아니더라도 원인이 뭔지 자체 조사를 벌여야 마땅한 것 아닌가 싶다. 원료에 문제가 있는지, 제품 생산 과정에 혼입 등의 문제는 없는지 원인을 찾고 오염 원인을 제거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소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윤리일 것이다.

사진 뉴스1

만시지탄, 생리대 안전성 검증

거의 모든 가임기 여성들이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이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잘못된 사회적인 분위기에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인간의 절반인 여성, 그들이 달마다 겪는 월경은 생명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가장 고귀한 생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남성 중심 사회•문화가 불결 또는 부정한 이미지와 연결해 터부시하고 사회적 침묵을 강요해 온 것이 생리대의 안전성 검증까지 늦어지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이런 부정적 문화와 관념까지 혁파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장재연의 환경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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