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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마오는 억울하다

현역 시절 아사다 마오는 꽤나 억울하게 조리돌림당한 적이 있다. 바로 인터뷰에서 '억울하다(悔しい, 쿠야시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기 때문이다. 김연아에게 지고서 그리 말할 때마다 한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제목으로 뽑아서 보도했고, 한국 대중 또한 기사를 대거 공유하며 아사다를 힐난했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 편파판정이 의심된다 등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우리말 '억울하다'에는 부당한 이유로 안 좋은 일을 겪은 상황이 전제돼 있지만 일본어 '悔しい'는 반대다.

ⓒYOSHIKAZU TSUNO via Getty Images

현역 시절 아사다 마오는 꽤나 억울하게 조리돌림당한 적이 있다. 바로 인터뷰에서 '억울하다(悔しい, 쿠야시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기 때문이다. 김연아에게 지고서 그리 말할 때마다 한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제목으로 뽑아서 보도했고, 한국 대중 또한 기사를 대거 공유하며 아사다를 힐난했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 편파판정이 의심된다 등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우리말 '억울하다'에는 부당한 이유로 안 좋은 일을 겪은 상황이 전제돼 있지만 일본어 '悔しい'는 반대다. 자신의 부족함 또는 허물로 경쟁에서 지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상황에서 표하는 강한 유감을 뜻한다. 이에 따르면 아사다가 한 말의 실제 의미는 '내가 부족해서 졌다. 그래서 매우 침통하다'가 된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다음을 대비해 갈고닦겠다는 뜻이니 전혀 문제 삼을 게 없는 발언이다.

재미난 점은 '억울하다'에 대응하는 단어가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를 위시한 다른 외국어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나도 미처 몰랐던 대목인데 한화투자증권 백우진 편집위원이 며칠 전에 쓴 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백 위원은 "한국 사회에는 사람들을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구조나 문화가 있어서 그런 경우가 다른 문화권보다 더 자주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조선시대는 조선시대대로,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제 강점기 때대로, 독재시대에는 독재시대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수탈하고 고문하고 처벌하고 죽이며 억울하게 했다"고 해석했는데 한번 읽어봄직한 글이어서 아래에 링크한다.

왜 한국어에만 '억울하다'가 있을까

P.S. 그나저나 왜 한국 기자들은 아사다의 그 발언을 '억울하다'로 보도했을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기자도 적지 않았을 텐데. 다른 단어로 바꿔서 실제 의미를 살려주는 게 적절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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