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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인터뷰] 박경추 MBC 아나운서 "아나운서국 망친 신동호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 원성윤
  • 입력 2017.09.01 06:30
  • 수정 2017.09.01 13:18
ⓒ허핑턴포스트코리아

MBC 총파업이 임박했다. 이들은 MBC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장겸 사장 '퇴진'을 외치고 있다. 5년 만의 파업이다. 지난 2012년 파업에서 사장을 몰아내지 못한 대가는 컸다. 파업 참가자들에게 혹독하게 보복했다. 숱한 해고부당전보가 잇따랐다. PD를 스케이트장으로 보내고, 아나운서에게 마이크를 뺐었다. 파업에 참여했던 박경추 아나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TV와 라디오에서 '박경추'를 완벽하게 지웠다. 박경추 아나운서가 8월 30일 허프포스트 스튜디오에 섰다. "촬영은 오랜만이시죠?"라는 말에 "그렇죠"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뜨거운 텅스텐 조명 아래에서 얼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익숙했던 방송. 스튜디오에 마련된 LED 조명을 처음 본 그는 "이건 안 뜨겁네요"라며 놀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송이 '업'인 아나운서가 새로 나온 조명도 모를만큼, 그는 방송을 떠나있었다.

- 자기소개 좀 해주시죠.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 같습니다(웃음).

= 1997년에 MBC에 입사한 박경추 아나운서라고 합니다. 입사 후에는 뉴스, 스포츠 중계를 주로 했고요. 파업 전에는 'MBC 저녁 뉴스'와 '출발! 비디오여행'을 고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연조가 있으신 분들은 저를 알 것 같고, 20~30대 시청자들은 저를 본 기억이 없어서 모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때는 꽤 괜찮은 아나운서였습니다(웃음).

- 어느 순간부터 방송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지난 2012년에 170일 동안 파업을 했는데요, 이후에 저는 회사의 부당한 명령으로 다른 조직을 겉돌았습니다. 경인지사 성남지국에도 있었고 '브런치 교육'으로 유명한 신천교육대에서 교육도 받고 방송을 떠난 지 벌써 5년이나 흘렀습니다. 현재 저는 라디오국에서 편성 운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편성에 변동이 있다면 알리는 그런 일입니다. 3년 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 아나운서인데 아나운서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걸 견디다 못한 11명의 아나운서들이 MBC를 떠났습니다. MBC를 떠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이유는요.

= MBC라는 옛 조직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직장, 가장 이상적인 방송사의 시스템이었습니다. 신입 아나운서, 신입 기자, 신입 PD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윗사람들도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도 불문율처럼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조직 문화가 하나씩 망가졌고, 지금은 말도 안되는 조직이 됐습니다. MBC를 살려야 합니다. 포기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 영화 '공범자들'을 본 MBC 구성원들의 마음이 착잡할 것 같습니다.

= 마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김재철 사장이 처음 왔을 때 저희랑 대치했을 때, 천막에서 일했을 때, 검찰이 PD수첩 압수수색 하러 왔을 때, 방문진 앞에서 시위했을 때, 그런 걸 보면서 저랬었지하고 생각했어요. 김민식 선배 혼자 페이스북 라이브 외치는 모습도 그랬고요. 잘 버텼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 파업 참가자 중에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이 스케이트장으로 보낸 장면이 나옵니다.

= 김범도 아나운서가 스케이트장에 있었어요. 아나운서 식구들끼리 거기 한번 갔어요. 우리가 관리실에서 앉아서 자장면도 시켜 먹고 음악도 선곡해보고(웃음). 그러면서 '김광석의 '광야에서' 한번 틀어볼까. 애들 놀러 오는데 너무 하지 않나' 이런 농담을 주고받고 그랬거든요. 솔직히 웃펐습니다. 그때는 끝이 안 보였고요. '지금은 버텨야 돼. 어떻게든지 살아 남아야 해'. 이런 생각이 강했고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얘기했어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오래 못가기 때문이었어요.

- 스스로 아나운서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자기를 죽여야 하는 일이 계속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 저는 아나운서로 하는 일은 아나운서국을 떠난 다음에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동문이 하는 행사 진행을 부탁해도, 외부의 좋은 일로 진행을 맡아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 해야 될 거 같았습니다. 쟤네(경영진) 들이 좋아할 거 같고 비웃을 거 같았습니다. 3년 전, 라디오국으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선배, 동료 PD들이 왔으니까 라디오 일도 익히면 도움이 될 거라 했는데 저는 그게 싫었어요. 여기 와서 잘하면 '거봐라 우리가 사람을 잘 보지 않냐. 보내면 잘하지 않냐'고 할 것 같았거든요. 정말 그런 예가 되기 싫었어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고, 적당한 선을 찾으려 무던히 애썼습니다.

- 박혜진, 오상진, 문지애, 김현정, 김소영 등 숱한 후배들이 나가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나갈 때마다 많이 잡았던 것으로 압니다.

= 프리랜서라고 하면 안에서 잘 나가다가 밖에 나가서 돈도 많이 벌고 방송도 다양하게 하는 게 일반적인죠. 그런데 이 친구들은 반강제적으로 나갔죠. 가장 크게 말린 건 문지애 아나운서였고요. 그 친구는 파업 끝나고 나고 올라가니까 방송을 아예 안 줬어요. 또 파업 참가 조합원과 비파업 조합원들의 갈등이 컸고요. 지애가 그걸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제 생각에는 조금만 더 버티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하고 계속 다독였어요. 그래서 사표 낸 걸 보류해달라고 해놓고 다시 지애 만나서 얘기하고. 결국, 본인 뜻이 완강해서 나갔죠. 그런데 나가고 나니까 말린 게 미안하더라고요. (웃음) 방송 활발하게 하더라고요. 아마 계속 있었으면 저하고는 원수가 됐을 거예요(웃음). 그다음부터는 안타까움은 있어도 그렇게 강하게 말리지는 않았어요.

- 오상진 아나운서가 MBC '라디오스타'에 나온 장면 어떻게 보셨습니까. 본인은 MBC 출연이 벅차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 상진이의 마음도 저희는 알고 있으니까…. 처음에 나온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어라, (금지가) 풀렸나? 싶었죠. 예능에서 일선 PD가 애써서 섭외하고 허가 맡아서 나온 거였죠. 조금씩 변하나 싶기도 했어요. MBC 출신 아나운서가 MBC만 못 나오고 다른데만 나온다는 거는 모순적이잖아요. 다른 회사 출신들은 굉장히 자유롭게 나오는데. MBC 출신 김성주는 MBC에 굉장히 잘 나오잖아요. 파업 참가자들에게는 유독 가혹했죠. 자기 고향인데 능력이 되면 자연스럽게 나와야죠. 얼마나 얘깃거리가 좋아요. 다만 파업이니 이런 얘기는 못했죠. 서로 조심했을 거예요. PD도 상진이도.

- MBC는 아나테이너라는 말을 탄생시킨 방송사였습니다. 교양과 예능, 시트콤, 드라마를 넘나들며 활약했고요. 그러나 지난 5년간 아나운서국이 철저히 파괴당했습니다.

= MBC 아나운서국은 특수한 조직입니다. 50명 정도 되는데, 공채 시스템이 있을 때는 한해에 2~3명 정도 들어옵니다. 다른 조직 같으면 부서이동 같은 게 있는데 아나운서국은 갈 데가 없거든요. 제가 입사 20년 차면, 아나운서국에서 자기 연차만큼 생활하는 겁니다. 입사 30년 차 선배님은 입사 20년 차인 저를 20년 동안 보는 거죠. 제 모습을 다 아는 거죠. 여기는 나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는, 나쁜 놈이 들어와도 좋은 놈이 되는 조직일 수밖에 없는 거죠. 후배들이 들어오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내부의 일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껄끄러운 소리가 들어오면 꼭 얘기를 해주고 가르쳐요. 백지 상태의 신입사원들이 들어오면 선배들이 어느 연차가 될 때까지 모니터해주는 이런 시스템이 자발적으로 체계가 잡혀있어요. 5년 차가 이 정도 해주고 3년 차가 이 정도 해주고. 신입사원이 매년 들어오니까, 순서가 있었죠.

- 그랬던 MBC가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계약직 아나운서를 채용해 빈자리를 메웠습니다.

=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뽑으면서 노린 건 신분을 불안하게 함으로써 회사에게 종속되게 만들었다는 거죠. 노조나 직능단체인 아나운서연합회 가입도 막았고요. 이 친구들 입장에서는 신분도 그런데다가 방송을 할 수 있게 하는 기회들도 국장, 부장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 이들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 저는 한번 개인적으로 만나서 저녁을 먹었었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사실 그 친구들이 계약직으로 안들어오면 똑같은 아나운서인데. 사랑을 받든 미움을 받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걸 받아들일 여유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그들은 1년, 1년 계약을 연장해야 되는 입장이고 그걸 눈치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죠. 미안하기도 하고, 결정할 수 있는 국장과 부장들이 그걸 왜 받았을까 싶어요.

- 몇 명이 계약직입니까?

= 11명이 계약직입니다. 처음에 6명을 뽑고, 나중에 5명을 뽑았습니다.

- 그럼 50명 중에 11명입니까?

= 아닙니다. 지금 50명은 안되고 다 나가고 해서 현재 아나운서국에 30여명이 있고 그 중에 11명이 계약직입니다.

- 3분의 1이네요.

= 그렇죠. 중간이 완전히 비었어요. 국장, 부장, 다음에 10년은 연차가 없는 거 같습니다.

- 뉴스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맡기는 구조입니까?

= 라디오 뉴스는 계약직 아나운서도 아닌 별개의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보도국에서 한번 하면 얼마 받는 프리랜서를 고용하고요. 그 사람들도 들어올 때 '너희 이거 잘하면 TV 뉴스도 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 회사에 이용당하는 거죠. 이것도 아나운서국 죽이기에 일환입니다.

- 최근 퇴사한 김소영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국 밖으로 내쫓지 않고 프로그램을 주지 않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그렇죠. 연차가 낮고 이제는 많이 내보내고 나니 이제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을 한 모양입니다.

- 박경추라는 사람이 찍히게 된 일이 있었다고 보십니까.

= 누가 이른 것 같아요. (웃음) 170일 파업할 때, 파업한 지 100일째 될 때 일일주점을 열었는데, 뭐라도 열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 대학교 때는 행사만 있으면 일일주점 이런 걸 했거든요. 김정근, 김나진 등이 주축이 돼서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임원진들이 많이 화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 인사를 안 하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오히려 제가 인사하면 안 받던데요? 눈을 돌리고.

신동호 MBC 아나운서 국장

- 신동호 국장이 5년간 국장을 했습니다. 그 많은 아나운서가 나갈 때 붙잡은 적도 없었고, 오히려 '아나운서 잔혹사'에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8월22일에는 아나운서 27명이 기자회견도 하셨습니다.

= 신동호 국장은 MBC 아나운서국 잔혹사가 펼쳐지는 동안 계속해서 보직자였습니다. 최재혁 국장 시절 부장이었고, 최재혁 국장이 영전하자 신동호 국장이 이후 지금까지 국장을 했습니다. 가장 잔혹한 일이 벌어졌을 때 국장이었습니다. 책임을 안 지려야 안질 수 없습니다. 윗선 내려오는 지시를 그냥 힘이 없어서 이행했든 주도적으로 했든 이 사태에서 1%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입니다.

- 본인은 국장 신분으로도 100분 토론이나 라디오 시선 집중 MC를 맡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 그렇죠. 처음에는 아나운서국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나운서국 존립 자체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 아,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했습니까?

= 네. 이런 말로 조직원들을 설득했어요. 처음에는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물론 저는 믿는 쪽이었습니다. 3년 전에 제가 부당전보 돼서 라디오국으로 나올 때도 신동호 국장의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했다고만 생각했다. 돌이켜 지난 5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말이 앞뒤가 안 맞아요. 신동호 국장의 행보를 보면 자신이 챙길 것은 철저히 챙겼어요. 아나운서국이라는 조직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방송 욕심을 낸다든지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이제 보직을 버려도 지나간 일들의 책임은 져야죠.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법을 위반 한 거잖아요. 방송을 못 하게 하고 누군가를 철저히 배제하고. 이건 그냥 선후배 간의 문제 이런 차원을 넘어섰어요.

- 방송의 날 시상식에서 신동호 아나운서가 'MBC 방송유공자' 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 이 상황이 어떤지 알고, 후배들이 직접 대놓고 물러나라고 할 정도인데 방송협회장상을 받는다니 무슨 마음일까요. 시상식을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웃으면서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참담한 기분입니다. 한때는 참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내가 가장 원망하는 사람이 돼 버렸어요. 점점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인간적으로도 슬픕니다. 하지만 분명히 책임은 져야 합니다.

저희가 손석희 선배를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는 방송에서 하는 말과 생활하는 모습이 일치되기 때문이죠. 방송에서 번지르르한 말을 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실제 생활과 내면의 모습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신동호 국장의 행보를 보세요. 방송에서 비치는 깔끔하고 멋지고 모습은 정말 포장된 모습일 뿐입니다.

- MBC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가 나왔습니다. 아나운서국도 이런 블랙리스트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 저희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 것도 못 외웠다. 그러면 바보입니다. 문서는 없을 거 같아요. 충분히 외우고 말로 충분히 전할 수 있을 정도에요. 사례가 워낙 많고요.

- 파업 참가 아나운서들에게 방송 섭외가 들어와도 윗선에서 줄줄이 잘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저는 파업에서 돌아온 다음에 제가 차단을 했어요. PD에게 연락이 와도 제가 오케이 한 적이 없거든요. '어차피 안 될 거 알잖아'라고 말했죠. 뉴스는 완전히 배제됐었고...제가 라디오국에 있을 때 드라마 'W'에서 사격 중계 장면을 찍자고 연락 온 적은 있어요. 지난 올림픽에서 제가 사격 중계를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랬죠. '저 쓰면 드라마가 안나갈 수도 있어요' 아나운서국에 있는 후배를 대신 소개시켜줬죠. 저 스스로 밖에 나와 있는 시간 동안 고행 기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혼자의 견디는 방법이었던 거 같고요. 나는 돌아가서 아나운서 일 때 일을 하리라라고 생각했어요.

- 시청자들은 박경추 아나운서를 스포츠에 특화된 아나운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드니, 아테네 올림픽 현지 메인 MC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2012년 파업 이후 스포츠 중계는 전면 배제됐습니다. 그간 올림픽이나 대형 스포츠 중계를 맡지 못하는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 올림픽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시드니 때는 운이 좋아서 가게 됐고, 아테네 베이징 가니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올림픽에 가면 나한테 좋은 경험 추억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되면서 아나운서들은 안가기로 결정하고 포기했어요. 당시는 파업 전이었지만 올림픽은 ID 신청을 한참 전에 해야되니까.

- 스포츠 중계 TV를 보셨습니까, 아니면 외면하셨니까?

= 솔직히 스포츠는 좋아하니까 MBC 안보고 SBS를 봤습니다. 뉴스도. JTBC가 생긴 다음에는 뉴스는 JTBC를 봤고요. MBC를 다니면서 MBC를 자꾸 멀리하게 됐죠.

- 그야말로 유체이탈이네요.

= 괴로우니까요.

- MBC는 스포츠 중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방송사였습니다. 아나운서들을 간판으로 내세워 지하철이나 여의도 MBC 사옥 전체에 랩핑 광고를 했었습니다. 이제는 '아나운서'를 내세우는 그런 모습 자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제작부서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회사는 니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이죠. 함께 나가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면 되는데 외부 프리랜서를 쓰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먹고 사는 조직이고 신입사원을, 원석을 뽑아서 갈고 닦아서 유능한 사람을 만드는 게 조직이 할 일인데 그게 없어진 겁니다. 허일후, 김나진 아나운서 정도가 스포츠 중계를 할 수 있는데 그 친구들도 소위 좋은 거, 큰 이벤트는 맡기지 않습니다. 아나운서국 안에 있기는 하지만 회사에서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 예전에는 MBC 아나운서국에서 누가 올림픽에 가냐 안가냐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연예부 기사로 올라올 정도로 한명 한명이 주목받았는 그런 언론사였습니다.

= 그럼요.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게 도움이 됐고요. 지금 회사 경영진이라는 사람들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거에 관심이 있다면 미운 놈도 쓰겠죠. 그렇게 회사를 생각한다면 쓰지 않겠습니까? 말은 MBC를 위해서 한다고 MBC를 생각하는 건 없고,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 있는 거죠.

- 밖에서 볼 때는 이 사람들은 조직을 망치는 게 목표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맞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는 거죠.

- 다들 배현진 아나운서라고 부르지만, 실은 얼마전 기자직으로 전직했죠. 아나운서국이 아닌 보도국에서 일하고 있고 있던데요.

= 저도 얼굴 본지 몇 년 된 거 같아요. 사무실도 다르니까 마주칠 일도 없고. TV에서 나오면 놀라서 얼른 돌려버려요.

- 이렇게 아나운서국이 찢어지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까.

= 아니요. 생각 못 했어요. 몇몇 사람들이 피해 볼 수 있다고는 생각했어요. 방송에 못 나올 수는 있겠다는 정도였지. 이렇게 위 아래 가리지 않고 아나운서국 존재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배현진, 양승은, 최대현 등 다수 아나운서들과 다른 길을 가는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감정은 불쌍하다는 겁니다. 저렇게 해서 뭘 얻으려고 하는 걸까. 그 얻은 게 얼마나 갈까요. 사실은 꼬리표거든요. 저렇게 생활 했던 게요. 저 친구들 나이도 어린데 그런 꼬리표를 가지고 경영진의 비호 아래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자신들에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느낌을 알기나 하는 걸까요. 한마디로 불쌍합니다.

- 최대현 아나운서는 일베 성향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그런 성향인 줄 알고 계셨나요?

= 네. 알았습니다. 조직이 제대로 되는 동안은 꺼내지를 못했죠. 그냥 성실하게 지내는 거였죠. 사람들이 알고는 있죠. 그거를 그렇다고 해서 저 친구 저러니까 배제하고 축출해야 돼 이런 거는 아니거든요. 조직 안에서 가르치게 해서 그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끔 한 거죠.

-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까?

= 제 개인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아들이 TV에서 몇년째 안나오니 걱정이 크시죠. 예전에는 TV에서 아들 얼굴을 보고 위안을 삼으셨는데. 다 큰 어른이 걱정을 끼쳐 죄송한 마음입니다.

- MBC가 정상화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 MBC 입구에서 함께 고생한 친구들과 포옹하고 싶어요. 잘 참았다고. 고생했다고. 한 번씩 안고 사무실로 올라가고 싶어요. 되게 오래전에 생각했던 모습이고 여러 후배한테도 말했어요. 아직도 못하고 있네요.

- 파업 찬반투표에서 재적인원 1785명 중 1682명이 투표에 참여, 1568명이 파업에 찬성했습니다. 투표율은 95.7%, 찬성률은 93.2%로 역대 최고 수치입니다.

=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걱정도 했었거든요. 170일 파업 여파가 너무 커서 우리에게 동력이 있을까 했는데, 그동안 불만을 참고 어떻게든 이 시기를 견뎌내자는 게 이번 총파업 투표 결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최근 아침 피케팅을 하고 점심시간 피케팅을 하는데 분위기가 상상을 초월해요. MBC 로비에 설 자리가 없을 정도고, 피켓이 완판될 정도입니다.

- 영화 ‘공범자들’에서 보면 안광한 사장이 최승호 PD를 피해 도망 다니는 장면들이 압권입니다. 최근 임원진을 상대로 한 피케팅 상황에서 임원진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고 항의하는 조합원을 찍는 희한한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 그것조차도 이제는 견디지 못하는 깜냥인 거죠.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발악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런 본능 같은 게 사람한테는 있다고 하더라고요. 궁지에 몰리면 궁지에 몰린 걸 알고 방어하기 위해서 더 오버하고 반응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 지난 세월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병이 생기신 것으로 아는데요.

= 꼭 그것 때문에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아팠습니다. 요즘 암으로도 안친다는 갑상선암을 발견하게 돼서 작년 12월에 수술했습니다. 갑상선이 없으면 호르몬제를 계속 먹어야 하거든요. 약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술도 줄이고 있습니다.

- 같이 싸웠던 이용마 기자가 복막암으로 투병 중입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 이용마 선배는 긴 파업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정말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집행부였으니까. 파업이 길어져서 아나운서 조합원들에게 너무 큰 피해를 준 것 같다고. 그때 본인은 해직된 상태였는데도요. 사실은 이용마 선배 위로하려고 만났는데 위로만 받고 왔어요. 최근의 용마 선배 모습을 보면 겉으로만 봐도 너무 아파 보이던데…. 잘 버텨줬으면 좋겠습니다.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보이는데 복직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이용마 기자로서 화면에 나오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MBC의 나갈 길, 술 먹고 토론도 하고 그런 시간이 올 때까지 잘 치료하고 잘 이겨내기를 정말 기대합니다.

- 다시 20대로 돌아가도 MBC에 들어올 겁니까?

= 정말 보람이 있는 직장이었습니다. 출근하는 게 즐거웠고요.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저에게 이런 무지막지한 선택지가 주어진다고 해도 저는 다시 MBC를 선택할 겁니다.

- 왜 언론자유가 중요합니까?

=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정치 권력, 돈, 이런 센 사람들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견제해야 합니다. 그게 국회, 사법부일 수도 있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언론이고요. 센 놈이 눈치 보게 만드는 것, 그게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봐오지 않았습니까. 세상을 어떻게 왜곡시킬 수 있는지. 이걸로 언론의 역할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사진=윤인경 에디터

글=원성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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