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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2) 적폐청산 수사, 경찰에 기회를 줍시다

적폐청산 사건 수사에 대해서 경찰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까지만 검사들한테 맡기고" 혹은 "이 사건들은 너무나 중요해서 경찰에 맡길 수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검찰개혁을 얘기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지극히 의문이다. 만약 경찰에 맡겨보고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아예 대한민국에서는 검사가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 금태섭
  • 입력 2017.08.31 10:56
  • 수정 2017.08.31 11:16
ⓒ뉴스1

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1)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수사권 조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역시 반론을 환영하고 기대합니다.

 

'적폐청산'이 화두다. 개인적으로 '적폐'나 '청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 심각하게 잘못되었던 일들의 진상을 명확히 밝혀서 책임을 묻고 여야나 정파에 상관없이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라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부분을 개선하자는 것이라면 당연히 찬성이다. 그런데 요즘 진행되는 적폐청산 작업을 보며 의문이 하나 생기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일은 꼭 검찰이 나서야 되는가, 하는 점이다.

 

적폐청산에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검찰개혁이다.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한 기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독점적으로 주어졌다는 점'에 있다는 것은 검찰개혁을 고민해 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때문에 그 해법은 검찰 권한의 분산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다.

 

대통령령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는 25개의 부를 두게 되어 있다(실제로는 28개가 있다). 그 중 13개가 특수부, 첨단수사부 등 직접수사를 하는 부서다. 즉 절반 이상의 부서가 기소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가 아닌 직접수사만을 전적으로 하는 것이다(나머지 12개 부서인 형사부도 때때로 직접수사를 한다). 직접수사는 원래 경찰이 하는 일이다. 우리 검찰은 사실상 경찰이 해야 할 일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전세계 어느 나라 검찰보다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보면 그 건물 크기도 단일 검찰청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근무하는 검사와 직원 숫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나라의 검사들은 기소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경찰 수사를 간접적으로 지휘하는 업무만을 하는데 비해서 대한민국 검사들은 기소와 수사지휘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서 경찰처럼 수사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이 그렇게 크고, 직원 숫자가 많은 것은 다른 나라에서라면 경찰에 속해 있어야 할 권한과 인원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추기관인 검찰이 광범위한 수사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살짝 뒤집어 보면 수사기관인 경찰이 기소권을 행사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권한을 줄여서 직접적인 수사권은 경찰이 행사하도록 하고 검찰은 기소권과 간접적인 수사지휘(상하 관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지휘'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면 다른 용어를 써도 좋다)에 관한 권한만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지난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정치인들 다수가 이런 취지의 공약을 내세웠다. 검찰개혁은 이번 정부가 첫 번째로 앞세우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수사권의 행사, 즉 적폐청산이 눈앞에 닥치자 다시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검찰에 이런 저런 주문을 한다. 각각의 입장에 따른 '공정한 수사'를 주문하기는 하지만, 적폐청산 작업의 일환인 수사를 검사가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다.

 

정부 쪽은 어떤가. 법무부의 이번 검사 인사를 보면 검찰 권한의 분산은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수사권을 행사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어 놓았다. 서울중앙지검장에 특수통으로 이름 난 윤석열 검사장을 임명했고, 1, 2, 3차장 세 명 모두를 역시 특수부 출신 검사들로 임명했다. 이번 인사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소위 '기수파괴'의 측면(직전 검사장이나 차장들에 비해서 3-5년 후배들이 임명되었다)을 주로 보도했는데, 인사의 실질은 직접 수사력의 강화라고 보아야 한다. 부장검사, 평검사, 수사관들의 경우도 인지수사 경력이 많은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서울중앙지검에 배치했다.

 

청와대에서 과거 정부의 문건들이 발견되거나, 혹은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과 관련된 자료들이 발견되었을 때도 당연한 듯이 자료들이 경찰이 아닌 검찰로 간다. 이미 기소해놓은 사건의 공소유지와 관련된 증거라면 당연하지만 새로 수사를 해야 할 내용이라면 경찰로 보낼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검찰개혁을 하려는 의사가 있다면 경찰에 자료를 주고 수사를 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표시하면, 대체로 두 가지 반론을 들을 수 있다. 첫째로 경찰이 그런 수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두 번째로 수사권 조정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결국 권한 배분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현재 추진해야 하는 적폐청산과 관련된 수사를 경찰이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중요한 사건은 검찰이 하고 안 중요한 사건만 경찰이 수사하는 것은 이미 검찰개혁과 거리가 먼 얘기고,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 첨언할 것은 수사권 조정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과거 수사권 조정에 한 논의는 '민생범죄'에 관한 수사권을 경찰에 주자는 얘기로 이어지곤 했다. 쉽게 말하면 절도, 교통사고, 단순폭력 사건 등 '스트리트 크라임'에 대해서 경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양적 수사권 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이미 99%가 경찰에서 수사가 끝나고 형식적으로 검찰의 검토를 거칠 뿐이다. 실제로 중요한 사건은 정치적으로 편향될 위험성이 있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경찰)과 기소 및 수사지휘를 담당하는 기관(검찰)을 분리해서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막아야 한다. 이것을 '기능적 수사권 조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 정치권이 그런 개혁을 할 의사가 있는지를 가늠 하는 시금석이 이번 적폐청산 수사일 수도 있다. 급하다는 이유로 검찰에 진짜 중요한 사건의 수사를 맡기면서 어떻게 그 후에 검사들에게 권한을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적폐청산 사건 수사에 대해서 경찰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까지만 검사들한테 맡기고" 혹은 "이 사건들은 너무나 중요해서 경찰에 맡길 수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검찰개혁을 얘기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지극히 의문이다. 만약 경찰에 맡겨보고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아예 대한민국에서는 검사가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검사들은 기소와 기소에 필요한 범위에서 간접적인 지휘를 맡으면 된다. 경찰도 국민적 여망이 담긴 수사에 임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검찰과 경찰의 권한 분배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개별 사건에서의 적폐청산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제도를 교정하는 진짜 '적폐청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중요한 사건 수사를 검찰에 맡기고, 한편에서는 검찰과 경찰을 불러놓고 수사권 조정을 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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