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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 언론의 미래를 막지 마라

우리는 망가진 것을 손쉽게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 조롱과 비난에 어울리는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양심이 없고, 관심도 없다. 정작 그런 조롱과 비난에 직면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질문과 맞닥뜨린다. '우리는 정말 언론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타락한 언론사를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라고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 광장에서 밀어내버리면 끝나는 일이라고 단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락한 공영방송사는 독버섯처럼 방치될 뿐이다.

〈공범자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얼굴을 조명한다.

한때 광장에서 MBC라는 구호를 희망처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MBC에는 〈PD수첩〉이 있었고, 손석희의 〈100분 토론〉이 있었으며, 신경민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데스크〉의 '클로징 멘트'가 있었고 김미화가 진행하는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MBC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한도전〉? 어쨌든 광장에서는 더 이상 MBC를 외치지 않는다. 되레 광장에서 나가라고 악을 쓴다. MBC는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공범자들〉은 바로 MBC를 망친, 보다 정확하게는 한국 언론을 망친 공범자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본래 MBC 〈PD수첩〉을 제작하던 최승호 PD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2012년에 당시 MBC 사장이었던 김재철 퇴진을 위한 파업에 참여했다가 2012년 MBC에서 해임당했다.

시작은 MBC가 아니었다. KBS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통령 취임식 날 KBS 〈9시 뉴스〉는 이명박 정부의 내각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시작했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상습 체납 의혹을 보도했다. 결국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임했다. 저널리즘의 승리였다. 승리인 줄 알았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KBS를 향해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최시중을 임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이였다. 곧바로 KBS 정연주 사장의 퇴임 요구가 이어졌다. 기자들과 PD들이 반발했지만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경찰 호송차가 KBS를 포위했고 사내까지 투입돼 정연주 대표 해임 건을 논의하는 이사회에 반발하는 KBS 직원들을 막아섰다. 결국 정연주 사장은 해임됐다. 그리고 〈시사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같은 시사프로그램들이 차례로 종영됐고, 탐사보도팀은 해체됐다. 시사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간에는 대통령 홍보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이번엔 MBC였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벌였는데 노무현 정권에서 금지한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논의했고, MBC 〈PD수첩〉은 이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론이 폭발했다. 촛불을 밝힌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30개월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미국과 재협상했다. 저널리즘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지 않았다. MBC로 검찰이 들이닥쳤다.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한 공무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을 고발했다는 것이다. PD들은 방송국에서 버텼지만 결국 체포됐다. 자택 압수 수색도 이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클로징 멘트로 정부 비판을 하던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가 경질됐다. 〈100분 토론〉의 손석희가 물러났다. 방송문화진흥회에 친정권 이사들이 대거 임명됐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은 사장을 바꿀 권한을 갖고 있었다. 엄기영 MBC 사장은 이사회에 소집된 뒤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뒤 〈PD수첩〉에서 일선 PD들이 타 부서로 발령을 통보받았다.

앞선 내용은 '점령'이라는 첫 번째 소제목에 해당하는, 〈공범자들〉의 내용 중 일부다. 단지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방송국 하나쯤 망가뜨리고 사유화하는 건 너무나 손쉽고 싱거워서 허탈할 따름이다. 하지만 〈공범자들〉은 단순히 방송사의 눈을 감게 만들고 입을 막은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고발하는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공범자들〉은 총 세 개의 소제목으로 구획돼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진행된 KBS와 MBC 길들이기 과정을 담은 '점령'과 이에 맞서는 방송사 기자와 PD들의 고군분투를 담은 '반격' 그리고 그럼에도 끝내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정권의 수단으로 몰락한 방송사의 타락을 담은 '기레기'까지, 이명박과 박근혜의 시절을 지나오는 동안 벌어진 공영 방송사의 추락 과정을 면밀히 다룬다.

〈공범자들〉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잃었는가?' 그리고 '우리에겐 왜 언론이 필요한가?' 〈공범자들〉이 첫 번째 질문에 답해주는 과정은 큰 맥락에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 정책에 쓴소리를 내는 언론사의 보도 기능을 구조적으로 망가뜨리는 권력자들의 몰염치한 태도는 공정성을 수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분투하는 기자와 PD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쓸쓸한 풍경 속에서 분노보다도 허탈함을 안긴다. 차라리 미드에서나 봤던 정교한 음모론 같은 것에 압도되는 것이라면 낫겠다는 심정이랄까. 그 와중에 공영방송은 권력이 가만두질 않으니 MBC는 민영화돼야 한다고 말하는 전 MBC 사장 김재철의 태도는 부역자들의 정확한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 되레 흥미롭기도 하다.

〈공범자들〉에서 공범자들의 진짜 범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우리에겐 왜 언론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감상의 수면 위로 올라올 즈음부터다. 세월호 참사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언론사의 오보로부터 시작됐다. 〈공범자들〉은 세월호 오보의 작동 원리가 현장 취재의 부재나 기자들의 안이한 태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방송사를 장악한 부역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끝내 자신들의 잘못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 구조적 몰염치와 심리적 태만에 있음을 직격한다. 일선 취재기자들이 올린 정보를 무시하고 정부의 보도 자료를 받아 보도하는 행태의 저변에는 공영방송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저버렸다는 문제를 넘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정보를 왜곡해 더 큰 재앙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섬뜩한 교훈까지 가닿는다.

"왜 언론을 감시견이라고 합니까? 짖어야죠. 문제가 생기면. 그런데 짖는 게 아니고 그냥 잠들어버린 거 아닙니까. 아니죠. 엄밀히 말하면 잠든 게 아니죠. 외면한 겁니다. 개뼈다귀 몇 개 더 먹으려고 외면해버린 거죠." KBS 새 노조위원장인 성재호 기자의 말처럼 공영방송사는 사회적 공정성을 외면하고 정권에 부역하는 이들에 의해 몰락했다. 방송사로서의 신뢰도, 기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지는 사이, 부역자들의 뻔뻔함만 떠올랐다. 〈공범자들〉은 지난겨울 촛불을 밝힌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 "엠 병신 차 빼라"라며 욕지거리하는 군중을 비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묵묵히 취재했던 MBC 노조위원장 김연국 기자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최순실 게이트는 나라의 기본 틀을 농단하고 파괴한 초유의 사건이죠. 그런데 KBS, MBC, 특히 MBC는 이 사건을 다루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아니, 침묵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방해했고, 검찰 수사를 방해했고, 주변적인 것들을 부각해서 사건을 본질을 흐리려 했습니다. 저는 결국은 MBC 경영진의 핵심인 안광한 사장, 김장겸 본부장 이 두 사람에게 핵심적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공범자들〉이란 다큐멘터리가 숭고해지는 건 여전히 MBC에 남아서 싸우는 김연국 기자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가진 것을 손쉽게 조롱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 조롱과 비난에 어울리는 당사자들은 죄책감을 느낄 양심이 없고, 관심도 없다. 정작 그런 조롱과 비난에 직면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이다.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질문과 맞닥뜨린다. '우리는 정말 언론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타락한 언론사를 외면해버리면 그만이라고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 광장에서 밀어내버리면 끝나는 일이라고 단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락한 공영방송사는 독버섯처럼 방치될 뿐이다.

〈뉴논스톱>과 〈내조의 여왕〉을 연출한 김민식 PD는 MBC 사옥에서 페이스북 라이브로 "김장겸을 물러가라!"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해맑게 웃으며 이를 말하던 김민식 PD가 갑자기 흐느껴 울며 아내로부터 들었던 말을 전한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부에서 아무도 안 하면 당신은 또라이야. 당신 혼자 또라이되고 마는 거야."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김연국 기자를 비롯한 MBC 기자와 PD들의 페이스북 라이브가 이어졌다. 어쩌면 당신도 모르는 곳에서 그들은 더욱 외롭게 싸우고 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영방송을 위해. 어쩌면 지금 우리가 힘을 실어줘야 하는 언론인은 손석희가 아니라 김연국일지도 모른다.

최승호 PD는 UHD 개국 행사에 참석한 김장겸 사장을 쫓아다니며 끈질기게 부당 해고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자 백종문 MBC 부사장이 그를 막아서며 이곳은 UHD 개국을 축하하는 자리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문장을 덧붙여 발음한다. "방송의 미래를 막지 마세요." 지난 8월 14일 MBC 법인과 전·현직 임원 5명이 낸 〈공범자들〉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재판부 의견은 이와 같다. "영화 〈공범자들〉은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영화인데, 이 같은 제작 목적과 취지를 재판부가 충분히 이해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당신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 언론의 미래를 막지 마라.

현재 MBC와 KBS에 남아 공영방송의 가치를 제 자리로 돌리고자 파업에 나선 기자들과 PD들을 지지한다. 부디 권력의 개뼈다귀나 물고 뜯으려는 부역자들을 밀어내고 공영방송의 주역으로서 다시 공정한 목소리를 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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