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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 이재용 징역 5년 선고에 대한 비판과 반박에 대하여

그동안 수많은 재벌 사건에서 법원은 '경제적 공헌' 등을 이유로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해 왔다. 또한 대통령은 일반인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사유(예를 들면 올림픽 유치)를 들어서 재벌들을 사면해 주곤 했다. 이재용이 받은 징역 5년을 가볍다고 하거나, 집행유예가 예상된다는 걱정들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들을 외면하고 마치 이번 사건이 백지 위에 처음 생긴 사건인 것처럼 법적인 논리만을 가져다 대는 것은 전후 맥락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 금태섭
  • 입력 2017.08.28 06:11
  • 수정 2017.08.28 06:12
ⓒ뉴스1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비판에 대해서, 특히 법원에 계신 분들을 중심으로 반론이 나온다. 대체로 두 가지 점에 대한 지적이 있다.

 

우선 첫째는 가장 중요한 뇌물죄 중 상당 부분이 무죄가 난 이상, 특검의 구형인 징역 12년에 비해서 선고형인 징역 5년이 가벼운 처벌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검은, ① 삼성 측이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에 제공한 204억원 + ② 정유라 승마지원과 관련한 77억원 + ③ 영재센터에 대한 지원금 16억원 등 합계 약 297억원을 뇌물로 보고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은 재단에 제공한 ① 204억원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하고 ②, ③ 부분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300억원 가까운 뇌물을 줬다고 기소를 했는데 유죄가 선고된 것은 90억원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구형량에 비해서 형량이 대폭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두 번째로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은 항소심(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해서 밑자락을 까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 대한 분개다. 무슨 근거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이라고 예단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률가로서 볼 때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제공한 돈도 뇌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약간 기술적인 얘기를 한다면, 이 부분이 무죄가 나온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삼성이 재단에 돈을 제공한 것을 '제3자 뇌물죄'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단순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없어도 성립할 수 있는데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한다. 이재용 사건의 재판부는 재단에 돈을 준 부분에 대해서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만약 단순 뇌물죄로 기소했다면 설사 부정한 청탁이 없더라도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기업 총수가 거액을 제공한 행위는 뇌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판결 참조- 특검 측이 나름 고민을 했겠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단 인사는 물론 사무실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정한 점에 비추어보면 단순 뇌물죄로 기소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최소한 주위적으로 단순뇌물죄를 적용하고 예비적으로 제3자 뇌물죄를 적용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서 300억 원에 달하는 뇌물죄 공소사실 중 200억원 이상이 무죄라고 본다면 구형량 12년에 비해서 선고형인 징역 5년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1심 재판부가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이 항소심에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서 풀어주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독단일 뿐만 아니라 조금만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해서 1심 재판부가 굳이 낮은 형을 선고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이 사건에 한정해서 본다면, 1심 재판부가 이재용에게 선고한 징역 5년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비판은 잘못된 것이라는 항변도 가능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조계 일각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는 어렵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주장이며, 애초에 논의의 대상을 일방적으로 한정시키면서 출발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있었던 각종 법조비리 사건의 예를 들어서 얘기를 해본다.

 

판사나 검사가 연루된 전관예우, 부패사건 등 법조비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당사자들은 억울하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억울한 사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여론의 지탄을 받는 당사자가 실제로 법조계 내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다.

 

말하자면 '훨씬 더 나쁜 놈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재수가 없어서 대표적인 부패 법조인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위 '스폰서 검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조 기자들 사이에서 "그 사람은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닌데."하는 얘기가 돈 경우도 많다.

 

그러나 큰 그림을 놓고 보면 그것은 결코 정당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그릇된 관행, 명백한 잘못임에도 슬쩍 눈감아 주는 풍토가 어떤 계기를 맞아 구체적인 사건으로 터져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놈이 그놈'인 것이지 어떤 특정 사건의 당사자가 개중에 좀 덜 부패한 축에 속했는지 혹은 더 부패한 축인지 여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세상 일이 묘해서,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겠지만) 법조계의 비리가 쌓이다 보면 큰 사건이 한 번씩 터지는데 그 주인공은 대표적으로 부패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잘못이 쌓이면 천벌이 내리는데 막상 하늘이 벌을 내릴 때는 약간 표적에서 빗나가게 내린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법조비리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런 저런 사정을 들어서 항변을 한다. 그러나 이럴 때 그 사건 당사자의 구체적인 사정을 가지고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국민과의 관계에서는 잘못 대처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법조계 전체가 장기간 고치지 못한 잘못 때문에 여론의 질타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모르고 기계적인 논리로 여론의 비판에 대응하다 보면 결국 법조계는 외부와는 단절된, 우리만의 좁은 우물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이재용 사건을 보자. 앞서 말했듯이 1심 재판부의 결정을 감싸는 법조계 일각의 주장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그러나 일반 여론의 분노는 비단 이재용 사건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재벌 사건에서 법원은 '경제적 공헌' 등을 이유로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해 왔다. 또한 대통령은 일반인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사유(예를 들면 올림픽 유치)를 들어서 재벌들을 사면해 주곤 했다.

 

이재용이 받은 징역 5년을 가볍다고 하거나, 집행유예가 예상된다는 걱정들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들을 외면하고 마치 이번 사건이 백지 위에 처음 생긴 사건인 것처럼 법적인 논리만을 가져다 대는 것은 전후 맥락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물론 토론의 규칙으로 보자면, 과거 재벌 사건들은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반칙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법조가 국민들의 분노 근저에 있는 사연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단지 논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면 잘못의 교정이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사법권 독립과도 관련이 없다. 제때 정의를 세우지 못하면 그만큼의 후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세상의 이치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는 후과는 언뜻 보기에 비논리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많다.

 

모든 일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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