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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크리스천, '이단'이 되어야 하는 이유

한국의 기독인들은 '이단'이 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비로소 실천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 강남순
  • 입력 2017.08.24 09:49
  • 수정 2017.08.24 10:34

1.

최근 두 명의 기독교 목회자들이 "성소수자"를 "옹호"한다고 하여 이단 시비에 걸렸다고 한다. 이 이단 시비의 우선적 문제점은 첫째, 인간의 섹슈얼리티란 '옹호-저지'나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채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누구의 관점'으로 '이단'이 규정되는가가 은닉되어 있다는 점이다.

2.

기독교의 역사는 '정통'에 의한 '이단 박해'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통(orthodoxy)'은 '올바른/곧은'의 의미를 담고 있고, '이단(heresy)'은 '선택' 또는 '의도적 결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때 여성설교 허용, 여성안수 지지, 노예제도 반대, 다른인종간 결혼 지지 등이 '이단'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여성안수 지지가 교회의 '정통'교리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기독교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 현대 기독교 안에 가장 커다란 논쟁이 되는 세 가지 주제를 들자면 인공유산, 여성안수, 그리고 동성애 문제이다. 이 세 가지 문제가 각기 다른 것 같지만, 사실상 그 인식론적 뿌리에는 "남성중심주의적 가부장제"가 버티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인공유산과 동성애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주목받곤 한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이 '종교'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회정치적 쟁점이 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정통-이단'의 규정은 시대적 정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3.

그런데 이단과 정통을 나누는 '기준'과 '관점'은 어떻게 구성되고 정당화되는가. '정통'은 언제나 '권력'과 분리 불가의 관계 속에 있다. 미셸 푸코의 권력 담론이 주는 통찰이다. 그래서 이제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식/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tself is power)"의 근대적 모토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그 대신에, "권력이 지식이다(power itself is knowledge)"라는 탈근대적 인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권력의 중심'과 '지식의 중심'은 일치하기 때문이다.

4.

이러한 '권력/지식'에 관한 푸코적 관점에서 보자면, '정통'을 주장하며 '이단 시비'를 제기하는 이들은 언제나 다층적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다. 물론 이들은 성서를 그 강력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진리의 '자명성'을 지닌 단일한 책이 아니다. 성서 안에는 각기 상충하는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제도 찬성/반대, 여성안수 찬성/반대, 또는 성소수자 혐오/포용 등의 각기 다른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동일하게 '성서'에 그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성서는 언제나 다양한 '해석'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 점에서 성서해석에는 언제나 시대정신을 담은 철학/종교적 관점들의 비판적 개입이 요청된다. 이제 현대세계에서 과연 '정통'과 '이단'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예수'를, 그리고 그 예수를 중심에 놓고 있는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와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5.

"기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자명한 것 같다. 그러나 313년 이후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무엇인지는 통일된 대답이 없다. 전근대, 근대, 또는 탈근대적 관점에 따라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상이하며, 또한 정통신학,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 등의 입장에 따라서 '기독교'가 무엇인가의 내용이 다르다. 즉 절대화된 '정통교리'나 '절대진리(absolute truth)'에의 주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위 '정통 교리'는 기독교 2천여 년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바뀌어 왔으며, 앞으로도 바뀌어질 것이다.

6.

21세기 새로운 '정통'의 의미는,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서 구성해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정작 '종교'나 '교리'에 대한 것은 없다. 물론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등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가르침도 없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타자에 대한 책임성, 환대, 사랑, 돌봄이 궁극적으로 신/예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은 이러한 예수-가르침의 핵심을 담아내고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다. 즉 '정통'과 '이단' 시비는 '예수'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가치들인 타자에의 책임성과 사랑, 약자들과의 연대와 배려, 그리고 주변부인들에 대한 환대를 통해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명증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수-가르침의 핵심들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 '정통'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이단'이다.

7.

내가 일하고 있는 신학대학원의 학장은 미국연합감리교 목사이며 레즈비언이다. 나의 동료 교수 중에는 침례교 목사이며 게이인 교수도 있다. 나의 학생 중에는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이 있다. 이들 모두 섹슈얼리티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황에서 타자에 대한 책임성, 사랑, 연대, 환대라는 예수의 '정통'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일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며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 못한 성소수자들과의 연대가 '이단'이라고 규정되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이다. 지금 한국기독교에 필요한 진정한 기독인들은 보다 많은 '이단'들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기독인들은 '이단'이 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을 비로소 실천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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