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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 환불이 끝이 아니다

저는 어떻게 이렇게 심각한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되고, 또 대체 어떻게 이런 제품들이 안정성 적합 판정을 받고 시중에 나왔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언제까지 피임약부터 생리대까지 임신준비와 부담에 관한 것들은 모두 여성들이 떠안고 마루타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심지어 식약처 품질관리기준 항목에는 유기화합물(TVOC) 유무가 빠져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더더욱 화가 납니다. 릴리안 사측에서 제품에 대한 환불을 해주겠다고 공지를 띄웠는데, 전 그것조차 화가 납니다. 환불이 커다란 조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 표범
  • 입력 2017.08.24 08:01
  • 수정 2017.08.24 08:05
ⓒ뉴스1

소셜에서 릴리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여러 번 했었습니다. 생리대를 검색하면 언제나 저렴한 가격 5위 안에 모두 릴리안 제품군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배송비만 내면 생리대 중형 + 라이너 한 팩씩을 보내주기도 했기 때문에 저는 몇 팩을 썼습니다.

릴리안 라이너는 특히 특유의 진한 향 덕에 생리혈의 잔혈이나 분비물 냄새가 날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쓰신다고 했습니다. 동의했습니다. 향이 진했어요. 그래서 확실히 다른 냄새가 숨겨질 것 같았고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저는 평소 화학물질에 매우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심지어 클렌징폼을 못 씁니다. 시중의 클렌징폼을 쓰면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열감이 느껴지고 아픕니다. 심하면 딱지가 앉기도 해서 계면활성제의 성분을 보고 제품을 고르고, 샴푸나 린스, 바디 제품들은 모두 성분을 보고 해외에서 직구하거나 국내에서 열심히 골라서 삽니다. 욕실에 구비해 놓는 클렌징폼 종류도 3가지 정도로 두개는 약산성 클렌저이고 하나만 손님용으로 일반 제품을 둡니다.

기관지는 말도 못 합니다. 강한 효과로 유명한 모 회사의 스트렝스 가글을 제가 사용하면, 즉시 목이 부어오르고 심한 경우에는 목이 쉽니다. 전 에프킬라 등의 살충제도 집에 없습니다. 제가 먼저 아프거든요. 모기가 있으면 그냥 물라고 두기도 합니다. 먹을 만큼 먹으면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약 4~5개월에 걸쳐 릴리안 생리대와 라이너를 썼습니다.

그런 제가 저저번달에 생리를 안 했습니다. 심지어 저는 생리 주기와 컨디션에 예민하고, 계획에 없는 임신을 막기 위해 경구 피임약을 복용법에 맞춰 복용하는 사람입니다. 산부인과도 주기적으로 갑니다. 저는 성병과 제 건강에 민감해서 (아픈 것을 참다가 정말 죽을 뻔해서 긴급수술을 한 후로는) 못해도 삼 개월에 한 번씩은 병원에가서 검사를 받고 제 연인에게도 검사를 권합니다. 그런데 생리를 안 했습니다. 저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임테기도 열 개를 넘게 썼습니다. 하면서도 이상했습니다. 약을 꼬박 꼬박 먹었고, 임신 가능성이 없는데 왜..? 하며 불안함으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경구피임약을 복용했는데 휴약기간에 생리를 안 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몸이 심각한 상태가 아니고서야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스트레스에 취약해 그런 것인가 하여 피검사도 모두 했지만, 저에게는 어떠한 부인과 관련 질병도 없었습니다. 의사분도 정말 이상한 일이라며, 경구피임약을 복용하였는데 생리가 없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결국, 두 번에 걸친 진료 끝에 스트레스성 생리불순이라고 저와 의사분의 '합의'하였습니다. 왜 합의라고 하였냐면, 진짜 그 외에는 의심 가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신이 아니었음은 당연하고요.

그리고 얼마 전, 릴리안에 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생리가 멈췄던 달을 포함, 그 전전 전달 등... 약 4~5개월에 걸쳐 릴리안 생리대와 라이너를 썼습니다. 휘발성유기화합물 방출 수치가 경악할 정도로 높게 나온 그 라이너입니다. 평소 위생에 무척 민감해서 라이너는 외출 시마다 늘 착용했습니다. 외출 후에도 두세 번씩 갈아줬습니다.

그리고 생리가 멎었습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릅니다. 주변인의 말대로 제가 최근 받은 스트레스들이 너무 커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진료 이후 저는 릴리안 생리대를 다시 구입하지 않고, 노브랜드의 라이너를 착용했습니다. 생리대도 우연히 다른 것이 생겨 바꿨습니다. 그 다음 달 생리량이 좀 적었지만 생리를 했고, 이번 달 역시 생리를 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저는 매우 화가 납니다. 이게 과연 우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의 생식기는 내부 피폭에 매우 취약합니다. 원전사고가 있은 후, 일본산 원재료를 쓰는 생리대 라인이 쭉 뜬 적이 있었습니다. 후속 조치도 취해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것은 소비자들이 어떻게 대처할 수도 없는 무언가였습니다. 미리 원료를 검색해보고 선택할 수 있는 사건조차 없었죠. 지금 이 환불 조치조차 이미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난 후에 취해진 것이니까요.

심지어 트위터 등의 SNS와 여타 카페들에서 '릴리안을 쓴 후 생리량이 줄었다'는 말이 돌았고, 내부에서 문제를 먼저 인지하고 핫딜이나 특가세일을 통해 재고처리를했 다는 말들까지 있더군요. 실제로 그래서 그렇게 저렴한 딜에 늘 릴리안 제품군이 쭉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면 생리대나 생리컵을 쓰면 되지 않나요? 하는 것도 이상한 말입니다.

생리대는 비쌉니다. 다른 나라의 가격과 비교한 표를 가지고 와서 이렇다는데? 왜 너네만 난리야? 할 일도 아닙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그 물가에 맞춰 구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 피해를 본 여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줄여보고자 특가에 눈이 멀어 구매한 소비자들을 우매하고 멍청하다고 후려칠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인지하고도 전량회수, 폐기조치를 하지 않고 끝까지 시중에 유통시키려던 제조사가 미친 거죠.

그럼 면 생리대나 생리컵을 쓰면 되지 않나요? 하는 것도 이상한 말입니다. 심플하게 말해서, 그것은 선택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생리현상을 처리하는 데 있어 커다란 불편함이 따른다면 그것은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왜 그 절반이 당연하게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면 생리대를 쓰는 친구네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 하자 저를 제지하고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들어보니 면생리대를 세척하기 위해 전용 통에 담아 놨는데 거기에 핏물이 있어 제가 보고 불쾌할까 봐, 그리고 자신이 민망할까 봐 처리를 하려고 먼저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걸 빨고 삶고 말리고 접어서 보관해야 합니다. 밖에서 생리대를 갈려면 핏물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지퍼백 등을 들고 나가서, 무거워진 생리대를 갈아서 다시 가방에 넣고 다녀야겠죠.

이게 왜 당연히 대안으로 여겨지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편함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건강이 걱정되어서 면 생리대를 쓴다면 그것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일이어야 하지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아직 유통되지도 않은 생리컵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더 할 말도 없습니다. 여성은 살면서 한 번쯤, 아니 사실은 자주 '미래의 엄마'이기 때문에 몸을 조심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같은 흡연자여도 가임기의 여성이 흡연할 경우에는 꼭 그 사람의 계획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자녀를 언급하며 흠을 잡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 한다면, 그 소중한 자궁과 생식기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 이지경인데 왜 이렇게나 여성이 예민한 일로 취급받아야 하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불안합니다. 다시 한번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 볼 것입니다. 부디 제 난소와 자궁 등에 아무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미래의 어머니라서가 아닙니다.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전 제가 아프기 싫고 소중하기 때문에 겁이 납니다.

릴리안 뿐만이 아니라 10종이 넘는 제품군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하는데, 그럼 사실상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생리대 중에서 믿고 살 수 있는 제품군은 얼마 안 될뿐더러 인터넷이나 소식에 느린 가임기 여성들은 고스란히 싼 가격에 속아 얼마든지 해당 제품들을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저는 어떻게 이렇게 심각한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되고, 또 대체 어떻게 이런 제품들이 안정성 적합 판정을 받고 시중에 나왔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언제까지 피임약부터 생리대까지 임신준비와 부담에 관한 것들은 모두 여성들이 떠안고 마루타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심지어 식약처 품질관리기준 항목에는 유기화합물(TVOC) 유무가 빠져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더더욱 화가 납니다.

릴리안 사측에서 제품에 대한 환불을 해주겠다고 공지를 띄웠는데, 전 그것조차 화가 납니다. 환불이 커다란 조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궁이나 난소에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고질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그야말로 커다란 소송으로 번졌을 일인데, 이 사태를 그저 환불이라는 가벼운 조치 하나로 대체하려는 것이라면 이야말로 소비자들을 쉽게 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번에 검출 된 휘발성 유기화합물(TVOC)이 무엇인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셔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첨부합니다.

- 릴리안 생리대 피해자를 위한 집단소송(손해배상청구) 준비 모임

카페링크

- 릴리안 생리대 제품 피해자 집단소송(손해배상청구)을 위한 설문 (법무법인 법정원)

구글 폼 링크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기사 링크]

- 위해성 논란 릴리안 생리대, 휘발성화합물질 방출도 1위 (한국일보)

- 식약처 "릴리안 생리대 품질검사 앞당겨 곧바로 시행" (연합뉴스)

-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에 나선다 (허프포스트)

- '릴리안' 안전성 논란에 100% 환불 결정한 깨끗한나라 (디스패치)

- 릴리안만 문제?... 10위권 인기 생리대 모두에서 발암물질 검출 (일간스포츠)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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