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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유시민 선생님께

의사들은 원가보전도 안되면, 지난 40년간 돈벌이가 안 되었을 텐데 왜 의과대학의 입시성적과 경쟁률은 매년 최고수준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문제점들은 별개로 치더라도 썰전을 본 많은 의과대학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과, 의과대학 학생들, 그리고 의사들이 가장 분노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국민들은 의사들이 당신들의 생명권을 담보로 돈만 쫓는 사기꾼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에 더해 언론과 미디어는 의사들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집단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선생님은 '돈과 명예'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진료실에서, 학교에서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남은 순수했던 그 마음을 수능성적 줄 세우기로 치부하여 버렸기에 우리는 이토록 분노하는 것입니다.

  • 여한솔
  • 입력 2017.08.24 06:21
  • 수정 2017.08.24 06:25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시골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진료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젊은 의사입니다. 어떤 호칭을 붙여야 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의원, 당 대표 등 너무 많은 직책을 맡으셨기에. 제가 제일 존칭으로 여기는 '선생님'으로 호칭을 통일하겠습니다.

어떠한 경로로든 상관없으니 유시민 선생님이 이 글을 꼭 읽어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의 팬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항소이유서 말미에 언급하신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말을 저 역시 가슴 깊이 새기고 살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TV에 나오셔서 해주시는 이야기들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들보다 재미있게 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책들도 다는 아니지만 웬만큼 유명한 책들은 다 사서 보고 고민하고 붙들어 매고 공부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글을 쓰기 전에 선생님 팬임을 인증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뒤에 나올 내용들만 보면 무조건 까고 보는 안티 유시민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치와 경제, 사회, 외교와 안보,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안목에 혀를 내두르며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이번 썰전에서 언급하셨던 문재인 케어와 의료계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부분 동의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있다고 여겨,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셨으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의료계 현안들과 제가 꺼내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저보다 오히려 더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편지글은 그 껄끄러운 대한민국 의료계의 문제점들을 한 번 더 확인 하는 계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부분들에 대해 하나씩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혹시나 제가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왜곡 할 수 있어 선생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들을 메모장에 속기 한 후에 말씀드림을 알려드립니다.

비급여 서비스가 너무 많기에 서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서민들이 생명과 크게 상관없는 선택 비급여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지는 않을 것이고요. 문제가 되는 비급여 항목은 각종 검사나 치료를 함에 있어서 급여 편성되지 않은 횟수제한이 있는 검사나 새로운 치료법들 때문에 이 이야기가 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게 과연, 의사들의 잘못인가요?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 정부의 잘못은 아닌가요?

건보공단이 정한 급여항목이 아니면, 모든 진단, 검사 및 치료의 방법들은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되어 국가의 혜택을 볼 수 없습니다. 최근 몇 년간 건보공단의 흑자규모가 21조원입니다. '의사들 입장에선 제대로 책정 안한 보상을 안주고 쌓인 것이다, 시민들 입장에선 우리한테 혜택을 안줬기 때문에 쌓인 것이다.' 이렇게 언급을 하셨지요.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옳은 것이 아니라, 모두 옳은 소리입니다. 의료공급자와 혜택을 받는 국민 수요자 모두가 불만을 갖고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공단의 잘못된 보험 기준과, 재료값에도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의료수가를 정하고, 보장성강화를 위해 국민들이 지급한 보험료가 올바로 쓰이지 못했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인 보험공단과, 의학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삭감내용에 대해 의사들을 마치 사기꾼 취급하며 서류만 휙 던져 보내는 심평원의 행태를 26과목의 임상 의학 선생님들께 물어보십시오. 수백 아니 수천 개가 나올 것입니다. 왜 이러한 문제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서민들이 양과 질 모두를 만족하는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이유를 의사들에게 돌려버리셨나요.

선생님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을 국민들의 에이전트로 표현하셨지만, 그 표현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전권을 위임한 국민들의 건강권과 의료보장성에 대해 이 두 기관이 깊이 고민하고 있지 않다면, 그 표현은 틀렸습니다. 에이전트라면 국민의 의견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그것을 반영했어야 하지만 그 두 기관은 그렇게 운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규제하는 감시기관도 없을뿐더러, 흥청망청 성과급 파티를 벌여도 지적받지 않기에 차라리 독과점 기업이라고 언급하시는 게 더 맞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건보공단의 천문학적인 누적흑자와 잘못 계산된 의료수가 이야기는 모든 문제점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될 것입니다. 이 문제들을 수면 위에 띄우지 않으면 대한민국 의료계의 어떤 문제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대학병원 선택 진료제의 폐지는 불가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양쪽의 주장이 개인적으로 모두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제도들은 개혁되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비록 낡은 제도라 하더라도 시스템에 긍정적으로 기인하는 바가 있다면 전면적 개혁보다는 대책이 존재하는 느린 개혁으로 가야 함이 맞습니다. 올바른 대책을 위해서라면 의료관리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구요.

제가 기억하는 선생님이 일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해보았습니다. IT강국 대한민국인지라 2초 만에 제가 원하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시민, 선택 진료'라고 구글에서 검색하면 첫 번째로 뜨는 기사가 제가 찾는 기사였습니다. 2006년 2월 7일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그리고 선생님이 2006년 4월 5일 국회도서관에서 주최된 '선택 진료비 폐지'관련 토론회에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원문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선택 진료제는 불합리한 제도가 맞다, 그러나 제도가 폐지됐을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선택 진료제가 없어지고 3차 병원의 진료서비스에 대한 보상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1,2,3차 종별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 이 경우 경질환자가 3차 진료기관에 몰리게 될 현상을 생각하면 끔찍한 광경이 연출 될 것이다. 공공선을 위해 불가피하게 독과 같은 제도, 악으로 불리는 제도도 종종 있는 것 아니냐, 사회적 효용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부당한 짐을 덜 수 있는 아이디어를 토론회에서 제시해 주기 바란다."

아마도 06년도 당시에 선생님은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료계에 계신 많은 선생님들과 이 제도에 있어선 같은 맥락을 하고 계셨으니까요.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2006년의 상황에 비해 2017년 현재 어떤 점이 달라졌고, 어떤 대책이 나왔기에 태도를 달리 하신건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는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왜곡 되었습니다. 중소병원은 물론, 동네의원에서 경영난을 호소하는 우리의 외침을 묵시하고 여론의 흐름에 주마가편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선택 진료비 이슈와 조금 떨어져 선생님께서는 진료비 인하로 인한 국민들의 대학병원 몰림 현상에 대해서도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 해결책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 정부의 위와 같은 선택 진료제 폐지는 불가역적인 상태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를 알면서도 회피하는 것은 어용지식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문제를 선택 진료제와 연관시키지 않고 따로 떨어트려 대중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 또한 잘못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알지만,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같은 지식인들이 정확하게 문제점들을 짚어주시고 국민들이 고민할 수 있게 해주셨을 때에야 더 존경받으실 겁니다.

의사들은 원가보전도 안되면, 지난 40년간 돈벌이가 안 되었을 텐데 왜 의과대학의 입시성적과 경쟁률은 매년 최고수준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문제점들은 별개로 치더라도 썰전을 본 많은 의과대학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과, 의과대학 학생들, 그리고 의사들이 가장 분노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 사람들은 그저 금전적 소득만 바라고서 직업을 택하지 않습니다. 저는 돈 많이 벌려고 의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매년 꿈꿔왔던 직업과도 거리가 먼 수의학과에 입학하여 3년간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을 다니며 방황하던 찰나에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지금 이 자리까지 너무나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저는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또 의사가 되었습니다.

환자들 진료를 보는 중에 뼈저리게 느낍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들을 의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치료하는 것은 당연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 한번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쫓지 않고 양심적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면 열심히 일한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고, 돈은 알아서 들어오게 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동화책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의사들이 당신들의 생명권을 담보로 돈만 쫓는 사기꾼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에 더해 언론과 미디어는 의사들을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집단으로 치부해버립니다. 물론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게 한 의사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 마주하는 환자들과의 괴리감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박탈감은 너무 큽니다. 이런 현실이 저는 너무나 싫었습니다.

이 문제가 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공중보건의사가 되어 끊임없이 의학을 공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탓에 의학 책은 내팽개쳐두고 대한민국 의료계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따분하고 지루하지만 그만큼 잘못되고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우리 사회는 모르고 있고, 또한 알면서도 묵과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회의 문제점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의사들이 지금보다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저도 작은 몫을 거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의 개인 질병만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 뜻을 하나로 같이 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환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이 대한민국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가 되는 꿈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돈이 욕심이었다면,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뜯어내어 볼까 고민하지, 선생님께 이런 글을 남길 필요도 없고 목소리 터져라 후배들에게 대한민국 의료계에 대해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고 선배가 꼰대짓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합니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니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골치 아픈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 하고 계실 많은 동료 의사들, 그리고 이 무더운 여름에도 짧은 방학도 없이 학교를 지키며 공부하는 의과대학 후배님들의 생각 역시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돈과 명예'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진료실에서, 학교에서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남은 순수했던 그 마음을 수능성적 줄 세우기로 치부하여 버렸기에 우리는 이토록 분노하는 것입니다.

보건소에서 문진과 적절한 검사에 따라 진단을 내려 처방하고 혹은 이곳에서 환자 관리가 안 될 때 상급병원으로 소견서 써서 전원시킨 후에, 후에 병이 나았다고 감사하다고 전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쁩니다. 할머니들이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고구마 한줌, 과자 한 봉지 안 드시고 가져온 것 먹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래서 의사하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대한민국 의료계 현실을 직면할 때에는 앞으로 이렇게 날마다 바보같이 웃으면서 진료 볼 자신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편지 글로 그 이유를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의료수가를 국가가 엄격히 통제하고 있음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 의료계의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의료수가는 반드시 재조정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돈 많이 벌어야 하기에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1차 의료기반이 무너지는 현실에 의료비 지출은 늘어나지만 의료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들로 기인한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이지만 의사들을 향한 비난은 강도가 더욱 세지고, 의사와 환자와의 간극은 더욱 커집니다. 이 간극을 메우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료수가 정상화는 필수입니다.

지난 2002년 의사협회의 요양기관 당연 지정제 위헌여부 판결 시 헌법소원의 판결문을 인용하겠습니다. '의사들의 재산권에 침해가 없다 할 수 없으므로 국가는 요양기관 별로 의료수가를 차등해서 의료 발전에 저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 이 판결문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 것일까요. 스쳐지나가듯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기 어려울 문제이기에 , 이런 유명한 방송에서 정부의 의료수가에 대한 통제를 인정해주시고 의료수가의 재조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신 것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료서비스의 원가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의료수가를 결정함에 있어 필요한 지표들은 다른 국가산업에서 쓰이는 거시적인 지표들과 비교하였을 때 훨씬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수가 산정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과학적이고 경제적으로 검증한 후에 정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의료수가를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의료수가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왜 이때 OECD를 언급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OECD에 가입된 모든 국가들의 보험시스템은 나름대로의 절차를 거쳐 수가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절대수치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각 국가의 경제 및 사회발전정도를 고려하여야 겠습니다. 우리나라 현재 1인당 GDP가 27000달러입니다. 1인당 GDP가 현재 1700달러인 인도와 비교를 해도 터무니없이 의료수가는 낮습니다. 고정되어 쓰일 재료비, 인건비조차도 나오지 않는 터무니없는 의료수가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금액을 규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우리의 주장을 흐트러트리시면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추후에 정부당국이 의료수가 재조정의 의지가 있어 조사를 한 과정과 결과물은 의사들과 국민 모두에게 낱낱이 공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 같은 엉터리 원가보존율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일산공단병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공의료의 활성화를 위해 국공립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동시에 민간병원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면서 생긴 표본이 바로 일산공단병원입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이니, 건보공단이 정한 수가대로 운영을 하게 되어 이득을 보았다면 이제까지 제가 말했던 의료수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 됩니다.

일산공단병원의 2011년도 경영성과 보고 자료입니다.

순수 진료수입 1428억원, 장례식장 수입 등 의료부대수입 48억원, 예금이자와 편의시설 운영 수입등 사업외 수입 52억원을 더해 총 수입금액 152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당해 총 지출은 1531억원으로 2억원의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진료외 수입을 제외한 순수진료수입과 지출을 비교해보면 110억원의 적자가 났던 것입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대로 표준 진료를 하게 되면 이 병원은 매년 100억원씩 적자가 나는 구조입니다. 또한 이 구조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입원수입이 770억원, 외래수입이 590억원입니다. 공공병원인 만큼 외래보다 입원환자 위주로 진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이행하지 못하고 부대수입까지 모두 합치더라도 적자가 나는 구조에 있습니다. 이 일례가 시사 하는 바가 무엇일지 선생님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의료수가는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어있습니다.

다행히 의사단체와 정부의 대화와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미에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대통령의 이름으로 선포된 만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매번 해왔던 식으로 터무니없는 의료수가가 산정될 우려가 너무나도 큽니다. 눈을 부릅뜨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제가 벌써 3번째 본 책입니다.

그 책에서 선생님은 의약분업 당시 사태를 언급하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셨습니다. 일전에 선생님을 좋아해서 개인공간에 게시 했던 글이 있었습니다. 원문을 갖고 오겠습니다.

"의사는 특별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며, 자선사업가나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살피는 목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남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돈을 탐해서 안 될 이유는 없다. 사람 목숨과의 관련성만 보자면야, 택시 운전사나 항공기 조종사도 그렇고 심지어는 쌀집 아저씨까지도 그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돈 욕심 없이 자기의 몸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남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것은 존경받아야 마땅한 선행이다. 하지만 그런 선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사를 비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의사가 되기 위해 투자했던 그 기나긴 시간과 힘든 공부, 수련의와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지새야 했던 수많은 불면의 밤들, 만만치 않은 의대 등록금, 이런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병원을 차리는데 들어간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면 의사도 돈을 벌어야 한다. 다른 모든 직업이 그런 것처럼, 의사 역시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공동선을 진작한다는 자본주의적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직업인이다. 그들은 다른 모든 직업인들이 그런 것처럼 의사로서 지켜야 할 직업윤리와 상도덕을 지키고 법률이 금지한 행위를 하지 않고 돈벌이를 함으로써 사회와 이웃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제가 이 본문 내용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더 똑똑하시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1인당 의료기관 평균 방문일수가 세계최고수준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령화 비율은 유럽 일본보다 낮은데 왜 그럴까에 대한 대답에서 행위별 수가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일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사들을 너무 나쁜 사람들로만 여기셨습니다. 행위별 수가제가 적용되지 않는 제가 일하는 보건기관을 예로 들겠습니다. (보건소는 방문 일수 당 본인부담금 수가를 적용합니다.) 65세가 넘는 분들은 3일에 한 번씩 약을 타러 옵니다. 65세 이상 환자들은 약이 무료입니다. 본인부담금을 올바로 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여 의료법 위반 사유가 되기에 공보의 첫해에 이것저것 시행령과 조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허울좋은 복지제도라며 지자체장들의 표심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랍시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올바른 사회 환경을 저해하는 명백한 포퓰리즘입니다. 고급 세단을 타고 와서 500원만 내며 만성질환 약을 처방받아가는 환자들을 날마다 마주합니다. 선생님께서 물으신 질문 1인당 의료기관 평균 방문일수가 세계최고인 이유는 당국의 행위별 수가제 때문이 아닙니다.

답은 "환자가 의료기관에 부담하는 진료비가 터무니없이 싸기 때문입니다."

연령별 적용 인구당 진료비에 대해서도 정확히 선생님께서 아셔야 하겠습니다.

건보공단 자료에 따르면 50세 이전의 국민들은 기껏해야 1년에 80만원 내의 진료비밖에 쓰이지 않지만, 50세 이후부터는 100만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60대 후반에는 200만원, 70대 후반에는 300만원을 의료비로 지출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2015년 65세 이상 인구가 15%, 2021년에는 20%, 2030년에는 30%가 되어 초고령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책에서 언급하셨던 기초연금제도가 반드시 정비되어야 하는 것처럼 건강보험료 인상 또한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장기적인 문제를 제가 선생님보다 잘 알겠습니까만, 지금 아무것도 안해선 분명히 10년이 지나 폭탄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은 준비금도 21조원이나 있고 (얼마 만에 소진될지는 모르지만)그래도 나중보다는 여유가 있을 때입니다. 지금 보건정책입안자들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고령화 사회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악화우려와 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마련인데, 오히려 그 준비금을 모조리 다 써버리겠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정확히 꿰뚫고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 썰전에서 그런 언급이 없으셔서 많이 아쉽습니다.

포괄수가제를 하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단점 지적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맞는 말씀 하셨습니다. 다만 진짜 정부가 포괄수가제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들 건강권을 볼모로 건강보험료 지출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인 것임을 왜 언급 하지 않으셨습니까. 국민들의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정부의 꼼수는 쏙 빼놓고 언급하지 않는 이런 문제들도 진짜 어용지식인이라면 말씀하셨어야 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표준적인 진료방법이 확립된 질병을 중심으로 포괄수가제를 적용했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수가가 어떻게 설정되어있습니까? (또 의료수가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앞서 설명 드렸듯이 모든 문제는 의료수가로 시작해서 의료수가 이야기로 끝나야 합니다.)

건강보험료 상승 없이 경제성장을 고려할 때에 건강보험 준비금은 더 쌓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틀리셨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을 말씀하셨음에는 이해할 수 있지만, 모든 사회지표와 경제지표를 볼 때에 건강보험료의 파격적 인상 없이는 건강보험 준비금의 전액소진과 걷잡을 수 없는 적자는 이미 확실시 되어있습니다. 연금기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책에서 예측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준비금 역시 마찬가지로 바닥납니다.

전체 보건재정의 대다수가 치료에 쓰이고 있고 예방에 쓰이는 돈은 5%에 불과하다며 이번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으로 지적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때에 수천 명의 공보의 고급인력을 의원이 버젓이 있는 면단위 지소에 배치시켜두거나, 보건소의 본연의 기능인 질병예방과 감염관리에 역점을 두지 않고 그들을 공짜진료, 500원 진료 보도록 방치하셨습니까. 공보의들에게 감염질환에 대처하거나 질병예방교육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교육시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국민들에게 설명 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혁신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직위는 대통령 혹은 보건복지부장관직 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공보의들이 하는 역할이 국가 보건정책에 이바지 하지 못하고 노인들에게 지자체의 표심으로만 쓰이게 해야겠습니까.

두서없이 쓸데없이 글이 길었습니다.

유시민 선생님은 정치계에서 은퇴하셨지만, 제가 느끼는 선생님은 예전 정치인으로 계실 때보다 인지도와 파급력이 훨씬 더 커지셨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생님의 생각을 존중하고 많은 부분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합니다. 하지만 하찮고 부족한 젊은이인 제가 지적 할 만큼 문제가 많은 내용들을 여과 없이 말씀하셨기에 유감이었습니다. 혹시나 선생님께서 녹화할 때에는 말씀하셨는데도 자체 편집된 내용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느꼈던 분노로 인한 분별없는 비난은 최대한 자제하고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혹시나 언짢은 부분이 있었다면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가장 훌륭한 왕의 정치는 그 시대 백성들이 왕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살아갈 때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의사들, 의대생들 , 이런 정책들에 대 해서 잘 모릅니다. 혹자는 '너희가 맞닥뜨릴 일인데 관심도 없고 걱정도 안 한다'며 젊은 후배학생들과 의사들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의사들이 이런 정책적이고 경제적인, 이런 것 모르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논리와 옭아매는 의료규제정책들에 좌지우지 않고 떳떳하게 환자들에게 배운 지식들과 술기들을 토대로 치료함으로서, 그리고 그 정당한 대가를 지급 받으며 환자와 의사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정책의 상당 부분은 아직 시행까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떳떳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선생님께서도 일조해 주세요.

이 편지가 꼭 제가 존경하는 유시민 선생님께 전해지길 바랍니다. 두서없이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공중보건의사 여한솔 드림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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