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TV에서 '동네 바보 형'을 추방합시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확산에는 TV가 한몫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아들을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장애 판정을 받고 나서 TV 속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에서 대표 MC 중 한 명이 바보 흉내를 낸다. 친절하게 자막도 나간다. '동네 바보 형'이라고. 바보 흉내를 낼 때의 MC는 꼭 흰색으로 콧물 분장까지 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영구, 맹구 등도 모두 발달장애인이었다. 그들 모두 우리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인 흉내를 낸 것이었다. 인지가 낮고 상황파악을 잘 못 해 엉뚱한 말을 하는 걸 부각해 남을 웃겨온 것이었다. 사실상 바보 흉내를 내는 모든 개그맨들이 마찬가지다. 우리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인을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 류승연
  • 입력 2017.08.18 09:42
  • 수정 2017.08.18 09:46
ⓒHarald Sund via Getty Images

지난 주말 동네에 있는 대형마트를 갔다가 생난리를 겪었다. 발달장애인 아이들은 때때로 '난리'를 부리는 순간이 있는데 그 '난리'가 마트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난리가 날 때를 장애 아이 부모들은 '터지는 순간'이라 표현한다.

어쨌든 마트에 도착해 카트를 빼고 이제 막 장을 보기로 한 그 순간, 아들이 떼를 쓰기 시작한다. 어떤 꼬마가 핸드폰으로 뽀로로를 보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자기도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말을 못 하는 대신 내 가방을 열려고 한다. 아빠 바지의 주머니도 뒤진다. 마침 배터리가 없어서 내 핸드폰은 집에다 두고 온 데다, 핸드폰 보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 가려 하고 있던 터라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찾아왔다. 터지는 순간이. "이이이이잉잉~". 떼를 쓰는가 싶더니 곧이어 쥐어짤 수 있는 최대한의 성량으로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몸을 앞뒤로 구르고 바닥에 머리도 박는다.

많은 발달 장애 아이들에겐 이렇듯 터지는 순간이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 아들 같은 경우는 원하는 것이 좌절됐을 때 '터지는 순간'이 온다. 말을 대신해 온몸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일정한 수준의 강박이 있는 자폐증 아이의 경우에는 늘 하던 패턴과 달라졌을 때 '터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난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장 보는 건 물 건너갔다. 남편이 난리 치는 아들을 카트에 태워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간다. 엘리베이터까지는 100여 미터. 그 길을 가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형마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순 행동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남편과 아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웅성대던 마트 안에 정적이 찾아오고, 모든 것이 멈춰 있는 풍경 속에 카트를 끄는 남편의 빠른 발걸음만 움직이고 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주차장에 내려가서도 아들의 울음은 계속된다. 차에 타지 않고 버틴다. 엄마의 치마를 잡아당기고 바닥에 드러누워 뒹군다. 나는 아들 옆에 서서 무심한 듯 그 모습을 지켜본다.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아들이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울고 떼쓰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20분 넘게 난리를 치고 나서야 진정이 된다. 진정이 되고 나니 스스로 일어난다. 엄마 손을 잡는다. 차를 타러 간다. 차에 타서는 "잉~" 그러며 내 얼굴을 잡고 자신의 볼에 갖다 댄다. 뽀뽀해 달라는 거다. 위로해 달라는 거다. 미워하지 말라는 거다.

이렇듯 아들에게 터지는 순간이 왔을 때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기다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다려주는 것을 하지 못해서 나는 장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진정이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아들을 쳐다보는 관람객들을 위해 포기를 했다. 아들을 카트에 태워 주차장에 데리고 가는 것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다. 아쉬운 게 이 대목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된다. 생후 18개월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미운 네 살쯤 되면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직 마음이 어린 발달장애 아이들도 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덩치가 그 아이들보다 클 뿐이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발달 장애 아이들도. 떼쓰는 거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선 경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마트에서 떼를 썼지만 원하는 걸 얻지 못했고, 식당에서 떼를 썼지만 원하는 걸 얻지 못했고, 워터파크에서 떼를 썼지만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아~. 떼를 쓰는 거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구나." 이걸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할 일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스스로 진정이 될 때까지. 스스로 포기를 하고 인정을 하기까지.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 가기까지.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발달 장애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곤 한다. 주변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들이 아이를 강제로 제압해 그 상황을 모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제로 상황이 종결되면 아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다음번에 같은 상황이 오면 또 같은 행동을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관람객들을 위해 그 순간을 강제종결 시켜야 할까? 아니면 무언의 양해를 구하고 아이가 배울 기회를 만들어줘야 할까?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발달 장애 아이들의 '터지는 순간'은 자라가면서 점점 줄어들다가 없어진다고 한다. 일반 아이들이 그러듯이. 하지만 그 시간을 1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선 이 아이들이 배울 기회의 장이 일상 속에서 자주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도 마트에서 초콜릿 사달라며 발을 구르는 성인 발달 장애인을 봐야만 한다.

이렇게 되려면 부모의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 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무엇으로? 거창한 제도적 도움으로? 아니! 일단은 '시선'을 거두는 것으로부터. 척 봐도 발달장애인으로 보이는 아이가 난리를 치고 그 앞에 부모인 듯 보이는 사람이 쩔쩔 매는 모습으로 서 있으면 본 듯 못 본 듯 '시선'을 걷어주는 것으로부터. 그것부터가 아마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선이 왜 꽂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10년 전까지는 '시선'을 내다 꽂는 일반인이었으니까. 장애와는 무관한 줄 알았던. 그 시선에는 동정의 눈빛도 있을 테지만 많은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동반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확산에는 TV가 한몫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아들을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장애 판정을 받고 나서 TV 속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에서 대표 MC 중 한 명이 바보 흉내를 낸다. 친절하게 자막도 나간다. '동네 바보 형'이라고. 바보 흉내를 낼 때의 MC는 꼭 흰색으로 콧물 분장까지 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영구, 맹구 등도 모두 발달장애인이었다. 그들 모두 우리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인 흉내를 낸 것이었다. 인지가 낮고 상황파악을 잘 못 해 엉뚱한 말을 하는 걸 부각해 남을 웃겨온 것이었다. 사실상 바보 흉내를 내는 모든 개그맨들이 마찬가지다. 우리 아들과 같은 지적장애인을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지적장애인들의 순수한 마음과 한없이 투명한 예쁜 마음은 그려내지 못하고 오로지 한 가지 측면만 부각한다. 말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가끔씩 엉뚱한 말을 하고, 발음이 어눌한 것만 캐치를 해서 그 점만 극대화해 웃음거리로 삼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자라온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무의식에 갖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눈앞에서 직접 발달장애인을 마주하게 됐을 때 자신도 모르는 채 부정적인 시선으로 드러난다. 쏘아댄다. 시선. 시선. 시선들.

부정적인 시선은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나온다. 발달장애인에 대해 잘 알려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웃음거리로 먼저 전락시켜 버리는 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TV에서 먼저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 예능에서, 드라마에서.

흰색의 콧물을 그리고 어눌한 발음으로 남들한테 바보 취급을 받으며 웃긴 존재로 묘사되는 것부터 그만 봤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놀리는 그 존재의 살아 있는 샘플이 바로 우리 아들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방송 관계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주는 건 웃음이 아니라 우리 아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모욕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당신들로부터 양산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 확산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걸, 그 시선 때문에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앞으로 마트에서 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기다렸다가 장을 보고 싶다. 아들이 진정되기까지 마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싶다. 울고 떼를 써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 스스로 깨우친 뒤 핸드폰 없이도 장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동네 주민들이 봐도 못 본 척 '시선'으로 도와주면 아마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정을 도와주시렵니까? 동네 주민분들? 다음 주에 핸드폰 없이 장보기에 한 번 더 도전해 봐도 될까요? 온 마을이 함께 제 아들을 키워보는 경험을 해 보지 않으실래요? 험난하고도 보람 있는 발달장애인 교육의 세계, 그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주말에 재도전합니다. 지난주 찍었던 영화의 후속편이 될 것인지, 새로운 장르의 새 영화가 탄생할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

사진:류승연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육아 #장애 #동네 바보형 #코미디 #문화 #방송 #TV #류승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