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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절벽? 학급규모 적정화의 기회!

학생 수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경험칙에 따르면 25명 내외다) 교사가 학생 전체와 눈을 맞추지 못하며, 반드시 사각이 생긴다. 수업 질서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질서 유지가 어려우며, 결국 체벌의 유혹도 커진다. 한 교실에 60-70명이 들어가서 수업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가혹한 체벌이 횡행했는데, 최근 교실에서 체벌을 거의 사라지게 한 1등 공신은 학생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의 정책이 아니라 그래도 30명대로 줄어든 학급당 인원이다.

ⓒShutterstock / hxdbzxy

글 | 권재원 (성원중 교사/ 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안 그래도 유난히 더운 올 여름은 이른바 교원 임용 대란 때문에 더욱 끓어 올랐다. 물론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원 임용 TO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단 1년 사이에 80%나 줄어들 정도라면 교육 당국이 교원 수급을 거의 관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욕을 먹어도 싸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학생 수가 줄어들어도 이를 학급 당 학생 수 감축의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교원 임용 TO의 급격한 감소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으며, 현상 유지를 기대하고 최악의 경우에도 연착륙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1/8 토막이 난 참담한 TO가 발표되었다. 일부 교대생들이 돌출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이런 패닉이 일어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 정도 돌출행동과 발언은 차라리 온건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시도 교육청은 교육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교육부가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학급당 학생 수 감축분을 반영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 수 감소분보다 교원 정원 감축분을 더 크게 잡은 이전 정권의 수급 정책에 따라 교원 총 정원을 할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더욱 힘 빠지게 하는 목소리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도 심심치 않게 튀어나왔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만큼 교원 수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교육이 뭐길래 그렇게 "꿀을 빨아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350명의 학생을 35명씩 10학급에 배당하여 15명의 교사가 가르치고 있었는데, 학생수가 250명으로 줄어들었다면, 학급을 7개로 줄이고, 교사를 10명으로 줄이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 구태여 25명씩 10학급, 교사 15명을 유지할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은 교육의 질은 생각하지 않고 하는 얘기다. 걸핏하면 19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고 비아냥거리면서 19세기식의 전통적인 수업, 전통적인 교실 상호작용이 계속 이루어진다는 전제에서 교원 수급을 논하고 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전통적인 수업은 이랬다. 교사가 이미 정해진 교과 내용을 정리해서 설명하고, 학생은 그 설명을 받아 적고, 나중에 그걸 얼마나 기억 속에 많이 남겨놓고 있는가를 오지선다형 시험으로 확인하는 방식의 수업 말이다. 물론 이런 식의 수업이라도 25명이 넘어가는 학급에서는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유지할 수는 있다. 심지어 50명, 60명이 넘어가도 가능한 수업이다. 물론 이런 식의 수업과 평가는 모든 학생들이 교사의 설명과 지시에서 이탈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통제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러니 과밀 학급과 일제식 수업, 그리고 체벌 등의 강압적인 제재는 3위일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학교 교실의 면적은 중학교를 기준으로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책상 줄 맞춰서 앉아 있기에 적당한 크기다. 그런데 아직도 대도시에는 30명이 넘는 학급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소집단 탐구학습, 프로젝트 학습, 역할놀이, 교육연극 등 다양한 수업방법은 물리적 한계 때문에 선택지에서 배제된다. 학생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교사의 말을 듣고 책에 적힌 내용을 보고 적는 수업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남지 않는 것이다. 또 학생 수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경험칙에 따르면 25명 내외다) 교사가 학생 전체와 눈을 맞추지 못하며, 반드시 사각이 생긴다. 수업 질서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학생 수가 많을수록 질서 유지가 어려우며, 결국 체벌의 유혹도 커진다. 한 교실에 60-70명이 들어가서 수업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가혹한 체벌이 횡행했는데, 최근 교실에서 체벌을 거의 사라지게 한 1등 공신은 학생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의 정책이 아니라 그래도 30명대로 줄어든 학급당 인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학교는 시험 잘 치는 학생이 아니라 참된 실력, 역량을 갖춘 학생을 키우라는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주어진 지식과 정보를 많이 받아먹는 학생이 아니라, 문제 상황에서 스스로 학습 전략을 세우고 문제 해결방법을 고안하고, 동료들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그런 학생을 키우라는 것이다. 이런 학생을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수업으로 키울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런 학생들을 키우려면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것들을 만들어 보게 하고, 조사도 하게 하고, 토론도 하게 하고, 연극도 시켜야 한다. 평가방식 역시 시험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에서 교사가 관찰한 내용을 근거로 정성적으로 서술하는 서술식 평가(학생이 서술식 답을 쓴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에 대해 서술함)를 해야 한다.

달라진 목표, 달라진 수업에는 달라진 수업 환경이 요구된다는 것은 공리다.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충분한 인터넷 검색 도구, 학생들이 발표할 때 필요한 장비와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아도 25명 미만의 학급당 인원수가 필요하다.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학급당 학생 수는 15-20명 정도의 규모가 가장 좋으며, 무조건 적다고 적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정도의 인원은 교사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3~5명의 소집단을 3~4개 만들 수 있는 인원이다. 만약 찬반 토론을 한다고 해도 한 편이 7-8명 정도, 많아도 10명 정도가 되기 때문에 무임승차자가 나오기 어려우며, 모든 학생이 골고루 학습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의 질이 달라진다. 나는 운이 좋아 학급 인원이 20-21명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2학년에서 역사를 가르치는데, 학년 전체 인원이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는 내가 수업하는 학생들의 이름은 물론 특성과 장단점까지 다 알고 있다. 심지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내가 특별한 교사라서가 아니다. 모든 교사들이 모든 학생을 알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감과 학교에 대해 가지는 애착이 다른 어떤 학교보다도 높은 편이다. 이는 학교폭력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난다. 학생들은 교사가 자신들을 다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름이나 겨우 알거나, 심지어 이름도 몰라서 학생을 번호로 부르던 시절에는 이 정도의 안정감과 믿음을 갖기 어려웠다.

학생이 20명으로 줄어들면서 교실의 공간 활용법도 다양해졌다. 가령 책상을 교실 네 귀퉁이에 모둠별로 배치하고 가운데에 넓은 공간을 둔 뒤, 타운홀 미팅 같은 것을 할 수도 있다. 교실에 넓은 공간을 활용한 연극공연을 할 수도 있다. 교실 안에 세계 여러 나라를 소개하는 부스를 설치하고 세계문화 박람회 같은 것을 할 수도 있다. 이런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 심지어 강의식 수업조차 질적으로 달라진다. 가령 학생들을 둥그렇게 둘러 앉게 한뒤, 가운데서 옛날 이야기나 동화 구연 해주듯이 역사 수업을 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이 교사와 한 두 걸음 사이에 있기 때문에 시선을 공유할 수 있으며, 현재 강의가 먹히고 있는지 겉돌고 있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가까이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배움으로부터 도주한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하다. 이러한 변화는 교사의 특별한 능력 향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교사의 능력 향상은 오히려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리고 그 원인 중에 학생 숫자가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우리는 교실에서 기적을 바라면 안된다. 새로운 교육, 새로운 수업을 요구하려면, 새로운 교실, 새로운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 여건 중에 새로운 교육, 새로운 수업에 맞는 적정 수준의 학급 규모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마침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때야말로 오히려 학급당 인원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는 기회다. 물들어올 때 노 젓자고, 임용절벽이니 뭐니 문제 나온 김에 좀 제대로 진단하고 고쳐 보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이 글은 '교육을바꾸는사람들'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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