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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끝판왕'이라는 PB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체의 입장

유통업체가 런칭한 각종 브랜드가 소비재 시장에서 약진하면서 ‘피비(PB) 상품 전성시대’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대형 유통업체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제조업체의 질적 성장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 끝판왕’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납품단가 쥐어짜기 등 고질적인 불공정거래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설문 결과도 함께 공개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6일 ‘대형 유통업체 자체상품 확대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를 발간하고 피비 상품이 확대되고 있는 경제 구조적 배경과 유통업·제조업 등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먼저 국내 피비 시장은 최근 10여년 동안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비 상품이란 제품의 기획과 제조, 특히 브랜드 결정에 유통업체가 개입해 독점적으로 생산·유통하는 상품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비 상품 경쟁이 본격화된 시기는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의 경쟁구도가 정립된 2000년대 중반부터다. 이들 대형 유통업체는 고객 유치와 영업이익률 제고를 위해 피비 상품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이때부터 피비 시장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다. 대형 유통업체 3사의 피비 매출은 2008년 3조6천억여원에서 2013년 9조3천억여원으로 5년 만에 2.5배 남짓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을 감안하면 놀라울만한 증가세를 기록한 셈이다. 또 대형마트에서 시작된 피비 열풍은 편의점이 이어받아, 지에스(GS)25·세븐일레븐·시유(CU) 등 상위 3개 업체의 피비 매출이 2008년 2천억여원에서 2013년 2조6천억여원으로 13배 넘게 팽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피비 상품의 전성시대는 유통 산업의 고도화에 따른 구조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보고서는 유통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며, 궁극적으로 수익 증대를 추구하기 위해 피비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린다고 짚었다. 실제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 등의 실적을 피비 상품의 매출 비중에 따라 분석한 결과, 피비 매출이 증가할수록 매출과 유통이익이 모두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피비 상품을 중심으로 한 유통업체의 경쟁 전략이 성공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제조업체 쪽 입장은 달랐다. 식료품·의복 등 소비재 제조업체를 고용규모에 따라 대기업, 중소기업(대·중·소), 소상공인 등으로 나눠 피비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 규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니, 오히려 피비 매출이 늘어날 때마다 전체 매출이 감소하는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음의 상관관계는 기업 규모가 클수록 더 크게 나타났다. 대기업은 피비 상품 비중이 늘수록 자사의 주력 제품 판매가 줄어 오히려 매출이 감소한 셈이다. 반면 소상공인과 소형 중소기업은 피비 상품 비중이 늘수록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피비 상품 확대에 따른 소상공인과 소형 중소기업의 매출 증가가 영업이익 증가라는 질적 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피비 상품 납품에 따른 영업이익률에서 기업 규모 간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피비 상품 매출당 제조업체의 영업이익률이 대기업 23%, 중소·소상공인은 16~17%로, 6~7%포인트 격차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피비 상품을 기획·판매하는 유통업체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더 많은 유통 마진을 남기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결과적으로 피비 시장의 확대가 유통업체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먼저 피비 상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 309곳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의 9.7%인 30개사가 불공정거래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겪은 불공정거래 행위는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33.9%로 가장 많았고, 포장 변경 비용 전가(22.0%), 피비 상품 개발 강요(13.6%), 판촉행사 비용 부담(11.9%)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업체 가운데 절대다수인 25개 업체는 이런 불공정거래 행위를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 중단 등 불이익이 우려돼,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또 제조업체들은 피비 상품의 차별성 측면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존 제품과 피비 상품의 차이를 묻는 설문에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라는 응답은 41곳(13.3%)에 그쳤다. 대신 ‘포장 형태만 바꾼 제품’이라는 응답이 81곳(26.2)이었고, ‘기존 제품의 특성을 약간 변형한 제품’이라는 응답이 160곳(51.8%)으로 과반에 달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피비 상품은 유통 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확대되고 있지만, 제조업체의 성장과는 무관하며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비우호적인 이익배분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특히 중소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의 보복을 우려해 불공정거래 행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경향마저 나타나므로, 공정위 직권조사와 신고 활성화 등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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