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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나도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그러나 끈을 머리에 얹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조금씩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긴 했으나 다리가 휘청휘청 거렸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100걸음 쯤 걸었을 때는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한 3분도 못 버틴 채 물통을 내려놓고 말았다. 이 무게를 지고 10km를 넘게 걸어가야 한다니. 이제야 아주 조금, 그들의 삶의 무게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사라져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 임하영
  • 입력 2017.08.17 11:09
  • 수정 2017.08.21 08:44

케냐에 가다 2) 비,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아침이 언제 밝아왔는지, 잘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여기는 케냐. 세상에. 부랴부랴 머리를 헹구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오늘의 아침은 빵과 계란, 망고와 바나나, 그리고 따뜻한 우유와 시리얼. 서둘러 뱃속에 집어넣고 차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두 시간 이상 달려야 오늘의 첫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언덕을 넘고 다리를 건너고,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느릿느릿 달리던 중 길가에서 한 젊은이를 발견했다. 창문을 열고 자세히 보니 나뭇잎을 뜯어 소에게 먹이고 있었다. '음? 소가 나뭇잎도 먹나? 왜 저기서 저러고 있지?' 차에서 내려 물어봤다. 이름이 후쎄인이라던 젊은이는 말했다. "전에는 평지에도 수풀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가뭄 때문에 산까지 올라와야 해요. 풀이 사라진지 오래라 나뭇잎이라도 뜯어 먹여야 하거든요. 이것마저 안 먹이면 더 이상 못 버틸 거예요. 원래는 소가 100마리 있었는데 가뭄 때문에 50마리로 줄었어요. 절반이 죽은 셈이죠. 그나마 남은 소들도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을 뿐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아요. 한번 주저앉으면 다리에 힘이 없어 잘 일어서질 못해요. 제가 힘껏 붙들고 잡아당겨줘야 겨우 일어서곤 하죠." 후쎄인의 검은 손등에는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가 가득했다. 평소에는 가축을 풀어놓기만 하면 알아서 먹고 마셨는데. 가뭄이 할퀴어 낸 생체기인 셈이다.

▲ 소에게 나뭇잎을 먹이는 후쎄인(Hussein).

마을에 이르러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 3시. 슬슬 배가 고파 올 무렵, 이 지역 월드비전의 총책임자 조나단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와 신난다! 그런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식당은 보이지 않는데... 조나단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 눈앞에 펼쳐진 풍경. 몇몇 아저씨들이 거대한 고깃덩어리들을 만지작거리며 이리 썰고 저리 썰고 있었다. 조나단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를 위해 염소 한 마리를 준비했어. 삼부루족한테 이건 완전 진수성찬이라니까! 여기는 삶은 염소, 저기는 구운 염소. 염소 간도 있고, 비계를 삶은 국물도 있어. 마음껏 즐겨!"

"네, 저... 고... 고맙습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멍게를 먹으라고 하면 이런 기분일까. 함께 동행한 팀장님과 기자님들의 표정이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다 우선 구운 염소를 한 점 베어 물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릿한 향내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씹고 또 씹고, 수없이 씹어도 물러지지 않아 도로 뱉어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 법. 이번에는 삶은 염소에 도전! 조금 부드럽긴 했지만 특유의 향내는 그대로였다. 몇 점을 삼키니, 으흐흑. 꽤나 무섭게 생긴 간 덩어리는 아예 도전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남겼다. 아주 많이. 아니, 남겼다기보다 거의 먹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저씨들의 표정을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음식이 남았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파란만장했던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조그만 웅덩이에 도착했는데, 그야말로 흙탕물이 얕게 찰랑거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우물이 아니기에 개나 소나, 얼룩말이나 코끼리나 다 같이 이용한다는 웅덩이. 조나단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물, 마실 수는 있는 건가요?" 조나단 왈, 흙탕물에 재를 풀고 기다리면 색깔이 조금 투명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어서 수인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 마을 주변의 유일한 수원, 흙탕물 웅덩이.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한 무리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웅덩이에 도착했다. 10리터 혹은 20리터들이 제리캔을 하나씩 들고, 가장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흙탕물을 열심히 퍼서 담았다. 그중 눈동자가 고즈넉한 어떤 친구가 눈에 띄었다. 올해 13살이 되었다는 솔로몬. 하루에 2번씩 여기서 물을 긷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의 물은 깨끗하지 않기에 거의 매일 11km나 떨어진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도 돌아오면 오후 4시가 넘기 일쑤. 그때마다 학교는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참 한심한 질문이지만,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솔로몬은 말했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저는 물을 길러 가야 하니까 정말 슬퍼요. 저는 영어랑 과학이 정말 재밌거든요. 그리고 10리터들이 제리캔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 어깨가 너무 아파요. 밤에 잠도 잘 못잘 정도예요. 그리고 제 밑에 동생이 여섯 명이나 되잖아요. 일일이 또 챙겨야 하죠. 하루하루가 힘겨워요."

▲ 솔로몬 (Solomon)

솔로몬의 아버지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집안의 가장이 사라진데다 가뭄까지 겹치면서 원래 200마리에 이르던 염소는 이제 10마리로 줄었다. 어머니가 소일거리로 생계를 꾸려 나가기에 그나마 하루에 차 한 잔과 옥수수죽을 먹을 수 있는 상황. 솔로몬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까진 그래도 어찌어찌 마칠 수 있을 테지만, 중학교 진학의 꿈은 아득해 보인다. 적어도 염소 수십 마리는 팔아야 학비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비,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비는 곧 그에게 기회이자 미래를 의미했다.

솔로몬을 만나고 난 뒤, 한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왜 똑같은 시대에 똑같은 세계를 딛고 있는데,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할까.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아니, 누구의 잘못으로 돌릴 수나 있는 문제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들의 생경한 삶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인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여태까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내 곁의 사람들만 지키고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짧은 생각이었다. 솔로몬의 옅은 미소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 바닥을 드러낸 나구루-우루(Naguru-ooru), 뒤편의 다리가 쓸모를 잃었다.

해 질 무렵, 솔로몬이 자주 물을 길러 간다는 나구루-우루 강으로 향했다. 폭이 꽤 널찍한 강은 지속된 가뭄으로 메마른지 오래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강바닥의 모래가 나부꼈다. 도대체 어디에 물이 있다는 건지, 궁금해 하던 차에 조그만 구덩이를 발견했다. 강바닥을 파고 또 파면, 조금씩 물이 나온다고 했다. 그나마 흙탕물 웅덩이에 비해선 깨끗한 물. 여인들은 20리터들이 물통에 물을 담고 뚜껑을 꼭 잠근 뒤 줄을 묶어 머리에 얹었다. 목과 배의 힘으로 버티면 된다고, 간단한 일처럼 이야기했다.

나도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그러나 끈을 머리에 얹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조금씩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긴 했으나 다리가 휘청휘청 거렸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100걸음 쯤 걸었을 때는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한 3분도 못 버틴 채 물통을 내려놓고 말았다. 이 무게를 지고 10km를 넘게 걸어가야 한다니. 이제야 아주 조금, 그들의 삶의 무게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사라져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덧, 동아프리카 기근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길! wv.or.kr/east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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