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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사망 40주기 '로큰롤의 제왕은 왜 죽었을까?'

1977년 8월 16일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레이스랜드의 저택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테네시 주 멤피스의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사망했고, 그 날 오후 영안실로 옮겨져 부검까지 이루어졌다.

사흘 후 검시관은 엘비스의 사망 진단서를 냈다. 사인은 '동맥 경화 심장병과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이었다. 부정맥이었다. 쉽게 말하면 심장마비다.

그러나 독성학 검사 결과 엘비스의 몸에서는 여러 약물이 검출되었다. 코데인은 치료에 필요한 수준의 10배에 달했다. 사망 진단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 아니었느냐는 혐의가 일었고, 범죄가 개입되어 있다는 음모론도 돌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현대 의학과 범죄 과학의 눈으로 프레슬리 사건을 다시 보면 로큰롤의 제왕을 죽인 진짜 범인은 심장마비나 약물 과다 복용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사망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검시관은 죽음의 판사이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5가지 주요 사실들을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검시관은 누구의 책임인지를 밝히지는 않는다) 프레슬리 사건의 경우,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망자 신원 -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

사망 시각 - 1977년 8월 16일 화요일 오후 2시경

사망 장소 - 테네시 주 멤피스, 엘비스 프레슬리 대로 3754

사인 - 심장마비

사망 이유(Means of Death) - 만성 심장병

사인과 사망 이유는 다르다. 사인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사망 이유는 죽음에 이르게 된 방법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사고는 사망 이유, 사인은 대동맥 파열일 수 있다. 혹은 머리에 총을 맞은 것이 사망 이유, 심각한 뇌 손상이 사인일 수 있다.

이 사실들을 알아내고 나면, 검시관은 사망의 방식을 분류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분류가 있다.

자연사

살인

자살

사고사

미확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은 자연사로 분류되었다. 그 당시 검시관은 프레슬리가 앓고 있던 심혈관계 질환에서 비롯된 급성 심장 문제가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검시관이 엘비스가 약물 과용으로 숨졌다고 보았다면 사고사로 분류했을 것이다. 자살이나 타살 가능성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사망 수사의 한 가지 원칙은 선행 증거, 즉 죽음에 기여했거나 사망까지 이르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유발한 기존 질병을 찾는 것이다.

또 다른 원칙은 '현장-시체-역사'의 삼각형을 살피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증거 전체를 이룬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의 증거를 살펴보자.

현장

엘비스는 화장실 변기 앞에서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발견되었다. 앉아 있었다가 순식간에 쓰러졌음이 확실하며, 괴로워하며 몸부림쳤거나 도움을 구하려 한 흔적은 없었다.

응급 의료진이 도착했을 때 엘비스의 몸은 싸늘했고 푸른빛이었으며 생명 징후는 없었다. 사후 경직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사망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앰뷸런스로 침례교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그는 엘비스'였으니 소생 노력을 하기는 했으나 소용없었다.

오후 3시 16분에 사망이 선고되었으며, 엘비스의 사체는 영안실로 옮겨져 즉시 부검이 시행되었다.

자살 또는 살인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경찰 수사는 없었다. 현장을 촬영한 사진도 없고, 현장이 보존되지도 않았다. 그레이스랜드에 어떤 약들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시체

엘비스의 건강은 형편없었다. 체중은 160kg에 육박했으며 말년에는 거의 기능하지 못하고 거의 침대에서만 지내며 늘 간호를 받았다.

심장이 정상 크기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커졌으며, 관상 혈관과 대동맥, 대뇌동맥에서는 혈관계 질환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42세에 비하면 아주 심했다. 엘비스는 흡연하지 않았지만, 폐에서는 폐기종의 징후가 보였다. 장은 정상길이의 두 배에 달했으며, 4개월 정도 묵은 것으로 보이는 숙변(impacted stool)이 있었다.

엘비스는 유전적 면역 장애인 저감마글로부민혈종도 앓았으며, 자가면역 염증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독성학 검사 결과 10가지의 처방전 약물이 거물되었으나, 불법 마약과 알코올은 검출되지 않았다. 약물에 관련하여 위험해 보인 것은 처방에 의한 것보다 10배 많은 코데인 뿐이었지만 이 역시 치사량은 아니었다.

역사

엘비스는 미시시피 주 투펠로에서 1935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쌍둥이였으나 형제는 태어나면서 죽었다. 청년 시절 엘비스는 활동적이고 건강했다. 군복무 시절과 가수 데뷔 초창기 시절에도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암페타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아마도 더 나은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폭력적 성향을 불러일으키는 알코올은 멀리했다.

1967년에 엘비스는 당시 셀러브리티들에게 유명했던 조지 니초풀로스 박사를 전담의로 맞게 된다. 당시 엘비스는 32세였으며 체중은 74kg이었다. 당시 그가 앓던 것으로 알려진 질병은 조금 높은 혈압이 유일했다. 아마 지방이 많은 식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1967년에 엘비스의 건강은 갑자기 악화하였다. 계속 진행되는 만성 통증, 불면증, 고혈압, 무기력, 불합리한 행동, 체중 급증 등이 찾아왔다. 여생 동안 엘비스는 여러 의사의 진찰을 받았고 몇 번 입원했다. 수십 명을 통해 구한 다양한 약물을 계속 복용했다.

닥터 닉으로 불렸던 니초풀로스는 엘비스가 죽을 때까지 주치의를 맡았으며 사망 현장과 부검 과정에도 함께 했다. 닥터 닉은 사인이 부정맥에 의한 자연적 심장 마비라는 검시관의 결론에 동의했으며, 엘비스의 죽음은 약물 과다 복용 때문이 아니라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독성학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공개되었다.

디아제팜, 메타콸론, 페노바르비탈, 에드클로르비놀, 에티나메이트는 각각 사용 범위 아래 혹은 범위 내의 양이었다. 코데인은 치료 목적의 양보다 약 10배 많았다.

다중약물요법의 관점에서, 이번 경우는 보고서에서 밝힌 약물들의 누적된 약물 효과를 살펴야 한다.

독성학 보고서가 심장병을 사인으로 밝힌 부검 보고서와는 상충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유명 독물학자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그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이 독성학 자료와 병에 대한 자료, 고인이 사망 8시간 전에 거동과 기능이 가능했다는 보고를 종합해 볼 때, 고인이 체내에서 발견된 여러 약물에 대한 내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약들이 사망에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테네시 보건국은 엘비스의 죽음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으며, 그 결과 닥터 닉에 대한 소송이 벌어졌다.

엘비스 사망 전 7개월 반 동안(1977년 1월 11일부터 1977년 8월 16일까지) 닥터 닉이 엘비스에게 적어도 8,805번 알약, 태블릿, 물약, 주사약을 처방했다는 증거가 있다. 1975년부터 세어보면 19,012건에 달했다.

믿기 힘들 정도의 숫자지만, 이는 노련한 수사팀이 153곳의 약국을 찾아가 1,090시간 동안 6,570,175건의 처방전을 살핀 다음 비서 2명의 도움을 받아 1,120시간에 걸쳐 증거를 정리한 결과다.

각성제와 진정제, 딜라우디드와 퀘일루드 및 퍼코댄과 데메롤 등의 강력한 진통제, 염산 코카인 등의 약품을 말기 암 환자나 쓸 법한 분량으로 처방해 주었다.

닥터 닉은 이를 인정했다. 엘비스의 진통제 중독이 워낙 심해서, 엘비스가 위험한 불법 마약에 손대는 것을 막기 위해 처방해 준 것이라는 게 닥터 닉의 변명이었다. 중독이 곧 질병이었고, 엘비스의 중독을 통제하기 위해서 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피고 측 증인 중에는 포레스트 토렌트 박사가 있었다. 토렌트는 캘리포니아의 저명한 의사로, 통증 치료 목적의 아편제 사용을 지지한 선구자였다. 그는 이 정도 수치의 코데인이라면 엘비스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음을 설명했다.

위법 행위 혐의의 중심에는 사망 당시 엘비스의 몸에서 발견된 높은 수치의 코데인이 있었다. 엘비스는 사망 전날 치과의사로부터 코데인 알약을 얻었으며, 닥터 닉은 이를 모르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배심원단은 이를 믿었고, 닥터 닉은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사건에 직접적 영향을 준 과실 혐의를 벗었다.

계속된 수사

토렌트 박사는 엘비스의 죽음에는 다른 원인도 있었으리라 믿었다. 닥터 닉의 재판을 준비하며 토렌트 박사는 부검 보고서와 독성학 보고서를 포함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든 의료 기록을 손에 넣었다.

부검 보고서와 독성학 보고서는 프레슬리의 유산의 일부이고, 사망 후 50년이 지난 시점인 2027년까지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토렌트 박사는 엘비스가 1967년에 갑자기 달라진 것에 관심을 가졌고, 로스 앤젤레스에서 영화 '클램베이크'를 촬영하던 중 엘비스가 전선에 걸려 넘어져서 자기 욕조 모서리에 부딪혀 머리가 깨졌음을 알게 되었다. 엘비스는 의식을 잃은 채 입원했다.

토렌트 박사는 엘비스가 머리를 다친 사건 세 건을 더 찾아냈고, 엘비스가 외상성 뇌손상(Traumatic Brain Injury; TBI)으로 인해 계속 진행되는 질병을 앓다가 사망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토렌트 박사는 최근 실용적 통증 관리 저널에 '엘비스 프레슬리: 머리 외상, 자가 면역, 통증, 이른 사망'이라는 흥미진진한 논문을 발표했다.

토렌트 박사는 엘비스가 욕조에 머리를 부딪혀 입은 부상이 너무나 심해서 뇌 조직이 느슨해져 혈류로 새나갔으리라는 이론을 세웠다. 이것은 다른 장기들을 망가뜨리는 자가면역 장애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1967년에는 이 질병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엘비스는 치료받지 않았다. 부작용으로는 만성 통증, 불합리한 행동, 비만 및 심장, 대장 비대증 등의 심각한 신체 변화 등이 있다.

오늘날 TBI는 프로 스포츠계에 잘 알려져 있다.

정신 상태가 달라지고 만성 통증에 시달린 엘비스 프레슬리는 10년 동안 죽음을 향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는 진통제에 심하게 중독되었고, 엄청나게 몸에 좋지 않은 식생활을 했으며, 무기력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했다. 그리고 약을 할 기회가 있으면 어디에서든 하는 전형적인 중독자의 습관을 익혔다.

그래서 관상동맥 심장병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긴 데다, 체중이 급격히 불고 알약을 먹어대다 보니 엘비스의 심장은 폭발 직전이었다.

나는 '선행 증거'라는 용어를 앞서 쓴 바 있다. 모든 검시관들은 사인을 판단할 때 선행 증거를 고려한다.

토렌트 박사의 관점, 지난 40년 동안 발견된 팩트들을 검토할 때,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 진단서를 지금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쓸 것이다.

사망자 신원 -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

사망 시각 - 1977년 8월 16일 화요일 오후 2시경

사망 장소 - 테네시 주 멤피스, 엘비스 프레슬리 대로 3754

사인 - TBI가 선행 증거가 된 아테롬성 동맥 심장병 및 고혈압 심혈관계 질병이 선행증거가 된 심장부정맥

사망 이유(Means of Death) - 누적된 머리 외상

그러므로 나는 엘비스의 죽음을 사고사로 분류할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특히 엘비스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는 심한 부상을 입은, 병든 사람이었다.

그 누구의 부주의도 아니었으며, 결코 범죄를 덮으려는 시도도, 음모론도 아니었다.

포레스트 토렌트 박사가 옳다면, 당시에는 로큰롤의 제왕을 죽인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만한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 * *

개리 로저스는 은퇴한 강력계 형사이자 법의학 검시관이며 현재 베스트셀러 범죄물 작가다. 캐나다 서해안의 뱅쿠버 섬에 살며, 인기 블로그 DyingWords를 운영한다.

*본 기사는 허프포스트 US의 'Elvis Presley's Death -- What Really Killed the King?'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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