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식용 GMO 수입국 1등의 비결

아무리 그래도 세계 1위라니. 그 많은 식용 GMO는 누가 다 먹는 걸까요? 결국 우리 가족들, 우리 아이들이 세계 제일의 GMO 소비자란 뜻입니다. 대체 한국의 1등 비법은 무엇일까요? 제가 짧은 국회의원 생활 동안 확실히 깨달은 건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사람 잡는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이 식용 GMO 수입 1위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건 'GMO라도 괜찮아'라는 우리의 너그러운 식성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뭘 먹고 사는지 모르는(알 수 없는) 현실이 원인입니다.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식품업계의 '팔 권리'를 옹호해왔기 때문입니다.

[장하나의 엄마정치] ⑪ 일상 속 적폐들

지엠오(GMO) 농작물 때문에 찜찜하고 설마설마했는데 한국이 '식용 지엠오 수입 세계 1위'란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지엠오와 농약으로부터 두리를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언제나 회의적이다. 두리가 밥 먹고 난 자리.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지엠오(GMO) 라면'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지난 6월13일 방영된 문화방송(MBC) 〈피디(PD)수첩〉 'GMO 그리고 거짓말' 편에서 라면 매출 상위 10개 제품을 검사한 결과 5개 제품(2개 회사)에서 GMO가 검출되어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요. 이 과정에서 'GMO 완전표시제'와 소비자의 알권리에 대한 논점이 널리 알려졌죠.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GMO 수입국이며 '식용 GMO' 수입량은 2015년 기준 214만5천톤으로 세계 1위(일본은 주로 사료용 GMO 수입)라는 사실이 알려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식용 GMO 수입국 1등의 비결

아무리 그래도 세계 1위라니. 그 많은 식용 GMO는 누가 다 먹는 걸까요? 결국 우리 가족들, 우리 아이들이 세계 제일의 GMO 소비자란 뜻입니다. 대체 한국의 1등 비법은 무엇일까요?

제가 짧은 국회의원 생활 동안 확실히 깨달은 건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사람 잡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업 활동에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온갖 규제를 완화해줍니다. 규제를 풀다 못해 이제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이라는 법을 만들어 규제 없는 사회를 합법적으로 건설하려고 하죠.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그렇습니다.

규제 없는 사회란 신호등 없는 건널목, 건널목 없는 도로, 속도 제한 없는 고속도로 같은 겁니다. 속도를 위해서라면 차에서 안전벨트도 떼어낼 기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도에 눈이 멀어, 이미 너무나 많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죠. 문재인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 정부·여당은 엊그제까지 적폐라 부르던 규제프리존법을 이제 와 말을 바꿔 도입을 추진하기 전에, 잊지 않겠다던 그 약속을 떠올리기 바랍니다. 양복 옷깃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들이 단지 액세서리는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한국이 식용 GMO 수입 1위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건 'GMO라도 괜찮아'라는 우리의 너그러운 식성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뭘 먹고 사는지 모르는(알 수 없는) 현실이 원인입니다.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식품업계의 '팔 권리'를 옹호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GMO 라면' 사태에서도 식약처의 태도는 변함이 없는데요. 6월말 식약처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문제가 된 라면의 주재료인 밀과 밀가루를 추적 조사한 결과 GMO 콩과 옥수수가 미량 혼입되었으나, 식약처 고시(유전자변형식품 등의 표시기준)에 따라 비의도적 혼입의 경우 3% 이하는 GMO 표시 대상에서 제외되니 괜찮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비의도적 혼입치 기준은 0.9%로 국내 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계속되어왔고, 무엇보다 콩 가공품에서 GMO 콩이 검출된 것이 아니라 밀 가공품에서 GMO 콩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에서 식용이 승인된 GMO는 2016년 기준 7개 작물(콩, 옥수수, 면화, 카놀라, 감자, 알팔파, 사탕무)이고, 이 가운데 실제 수입되는 식용 GMO는 2014년 이후 콩과 옥수수가 전부입니다. 저는 GMO를 피하려면 국산 콩과 국산 옥수수만 잘 찾아 먹으면 된다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왔죠. 그런데 GMO 수입 품목이 아닌 밀에도 GMO가 섞인다니, 라면은커녕 잔치국수도 못 사먹게 된 겁니다.

지금은 두리가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엄마 아빠의 노력으로 GMO가 거의 없는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대책이 없습니다. 수입된 GMO 콩의 99%는 콩기름으로 가공된다고 하니 모든 볶음류와 튀김이 문제고, 기름을 만들고 남은 GMO 콩 찌꺼기는 간장, 된장 제조에 활용된다니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할 지경이죠.

국민과 싸우는 식약처

GMO 옥수수는 전분과 물엿, 올리고당 등 액상과당의 원료로 쓰이는데요. 액상과당은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서 빵, 과자,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주스, 맥주에 들어가고, 소주와 막걸리에 사용되는 인공감미료 아스파탐, 합성 비타민에 들어가는 포도당에도 섞여든다니 세계 1위의 수입국이 될 만도 하지요.

우리나라의 GMO 표시제는 원료가 아닌 완성품 기준이라서 GMO 가공품에 유전자변형 디엔에이(DNA) 또는 유전자변형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GMO 표시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유지류·당류·장류는 GMO 표시 자동면제 대상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식용 GMO 수입 1위 국가이면서 GMO 표시 식품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년 초에는 두리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생각 중인 우리 부부에게는 GMO 완전표시제밖에 답이 없습니다.

식약처는 이런 저희 부부의 고민을 읽기라도 한 듯이, 지난달 17일 유투브에 '[식약처] GMO A to Z - 1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더군요.

"과학자들은 이런 우려가 근거가 전혀 없다고 일축합니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 123명도 전 세계적으로 늘어날 식량 수요를 감당하려면 GMO가 필수적이라고 말했고 세계보건기구(WHO), 미국과학한림원, 미국의사협회 등의 단체도 GMO는 안전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식약처의 의도적인 사실 왜곡에 화가 납니다. 지난해 말 대만에서는 학교 급식에서 GMO 식품 사용을 금지하는 학교위생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죠. 왜 저는 식품회사도 아니고 몬샌토도 아닌 우리나라 식약처와 싸워야 하는지 예나 지금이나 허탈하고 서글플 따름입니다.

GMO 식품의 안전성에서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다국적 농약·종자기업인 몬샌토가 1974년 개발한 비선택성 제초제 글리포세이트(상품명 라운드업)입니다. 몬샌토는 글리포세이트와 이것의 독성을 견디는 GMO를 개발해 '세트상품'으로 전 세계에 수십년간 판매해왔죠. 2015년 3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글리포세이트를 2A등급(probable carcinogen, 거의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평가 분류해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지난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 내 글리포세이트 판매 금지 온라인 청원 서명자가 100만명을 넘어서자 글리포세이트의 사용허가 기간 연장을 사실상 보류했습니다.

세계 최대 GMO 재배 국가이자 몬샌토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가 글리포세이트를 발암물질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서 아칸소주는 몬샌토의 신제품 제초제 디캄바의 사용을 금지했다고 하네요.

물론 GMO가 안전하다는 과학자들도 있고, 반대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식약처는 어느 한편의 주장을 강하게 지지하고 국민의 알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까요?

아이들은 먹고, 놀고, 잠자는 이 세 가지 일로 하루를 보낸다. 생존의 기본인 먹는 것부터 삐거덕거린다는 건 이 사회의 안전망에 큰 구멍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사전예방 원칙을 무시하는 원칙

한국이 '식용 GMO 수입 1위 국가'가 된 또 하나의 비법은 '사전예방의 원칙을 무시하는 원칙'입니다. '사전예방의 원칙'이란 환경 사안이나 보건 사안처럼 문제 발생 시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성을 지니는 경우,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예방적인 조치와 규제를 사전에 도입하는 행정 원칙을 말합니다. 현대과학은 확실성보다 불확실성을 입증하는 추세이며, 따라서 정책이나 법안을 입안할 때 사전예방의 원칙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0년 1월, 국제사회는 GMO의 국가 간 이동·사용 등을 규제하는 '바이오안전성에 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The Cartagena Protocol on Biosafety)를 채택했고, 이 의정서는 당사국들이 GMO의 위해성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증거 없이도 그 잠재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즉 GMO 수입국은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없어도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면 수입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국회의원 임기 내내 '사전예방은 없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확고한 원칙'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된 대한민국 국민 전부를 걱정했습니다. '국민'이라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건 제 자신과 우리 가족 그리고 이 글을 읽는 평범한 당신과 당신 가족의 이야기란 뜻이죠.

세계 1위의 석탄화력발전소 밀집 지역인 충남 당진의 주민들은 이미 수십년간 더러운 공기 때문에 건강 피해를 입어왔고, 고압 송전선로 주변은 전자파에 따른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는 '암 마을'이란 끔찍한 별칭이 붙여지기까지 했죠. 그러나 산업부는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정부는 경남 밀양에도 756㎸ 초고압 송전탑 수십기를 세웠고, 밀양 사람들은 목숨 건 저항을 했지만 결국 사지로 내몰리고 말았죠. 산업부는 우리나라의 인체 전자파 노출 기준 833mG(밀리가우스)가 국제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의 권고기준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일시적인 노출과 생활공간에서의 지속적인 노출을 같은 기준으로 규제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833mG는 스웨덴(2mG)의 416배, 네덜란드(4mG)의 108배, 스위스(10mG)의 83배에 달하는 비정상적인 기준치이고, 한국의 아이들이 특별히 전자파에 강한 인체를 타고나는 게 아니라면 엄마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치죠.

'설마 우리 집 주변에 발전소나 송전탑이 지어지겠어?' 하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서울·수도권의 대도시들은 송전선로가 대부분 지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발밑에 이미 송전탑이 늘어서 있으니까요. 제가 2014년 국정감사에서 서울 노원구의 한 유치원에서 일상적으로 150mG의 전자파가 측정된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영유아·어르신·환자 등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시설만이라도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지만 정부는 '괜찮다'는 답변만 내놓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후 전자파를 환경유해인자로 지정하는 환경정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영유아 노출 기준만이라도 상향하기 위해서 전파법 개정안도 발의했지만 전자파의 유해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들도 통과되지 못했죠.

밀양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세상에서 경찰이 제일 싫고 마을 앞산과 뒷산에 늘어선 송전탑이 괴물 같다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소년의 눈에서 두리를 본 것만 같았습니다.

핵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원전의 국토 면적당 설비용량 세계 1위, 원전단지 밀집도 세계 1위, 원전 주변 인구수 세계 1위 등 모든 면에서 원전 위험도 세계 1위 국가인데도 신규 원전을 건설하고 있죠. 고리 원전단지 반경 30㎞에 380만명이 살고 있는데, 핵사고 발생 시 대피 시나리오조차 없는 용감한 나라입니다. 방사능 물질에 피폭되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고 대를 이어 고통스러운 질병이 전해집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만난 열살 소녀는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엄마가 되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말했죠. 하루가 다르게 소녀가 되어가는 두리에게서 가끔 그때 그 소녀를 느낍니다.

국민 안전 담보로 도박하는 나라

가습기살균제 사태 때도 그랬습니다. 폐섬유화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 화학물질에 대해서 '흡입독성 자료가 없으니 흡입해도 괜찮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었죠. 입증되지 않은 위험은 위험이 아니라는 겁니다. 매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추모대회에 참석하고 있는데요. 하루아침에 갓난아이와 아내를 잃은 아빠로부터 '아이는 잘 크죠?'라는 질문을 듣는 일, 그리고 '잘 큰다'고 대답하는 일은 말 못 할 감정을 일으키더군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에 대해서도 정부는 그들이 일터에서 사용한 화학물질과 백혈병 간의 인과관계를 노동자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는 한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말해왔습니다. 심지어 정부는 삼성의 영업비밀이란 이유로 그들이 일터에서 사용한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당사자들에게 알려주지 못한다고 했죠. 두리처럼 작고 어린 딸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이라는 좋은 회사에 취직했을 때 엄마 아빠는 딸이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웠을까요? 그런 딸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 아빠의 심정은....

우리는 안전이 입증된 나라가 아니라, 위험이 입증되지 않는 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근거 없이 사전예방을 이유로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면 '절대로' 안 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엄마라면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키울 수는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딴 데 가서 키우든지 아니면 이 나라를 싹 바꾸든지. 후자를 엄마 정치라고 부릅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GMO #장하나 #사회 #식약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