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동맹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용기

유엔 대북제재결의 2371호 채택을 계기로 북-미 간의 말 공방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위기가 고조되어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말폭탄'을 약자의 허세나 호기로 이해해왔고, 그래서 북한의 전매특허로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에서 쉼 없이 튀어나오는 군사력 동원과 북한의 멸망을 거론하는 언사가 북한의 더 거친 언사들과 맞부딪치면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미 양측은 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다가 진짜 전쟁이 난다면 그 방아쇠는 어리석게도 유치한 '말폭탄'이 되리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이종석
  • 입력 2017.08.14 06:30
  • 수정 2017.08.14 06:31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북한 핵 문제가 '도발과 제재'의 악순환을 거듭하며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필자는 여러 장소에서 정권교체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북핵 문제라는 '게임'의 양상이 변화될 가능성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그동안 북핵 문제의 전개 양상을 보면 북-미 대결 속에서 한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동분서주하고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할 때 상황 진전이 있었다. 반면에 북핵 상황이 악화 추세를 보일 때는 대체로 한·미가 북한과 일방적인 대결 축을 형성하고 중국이 홀로 중재자 역할을 할 때였다. 이때는 한국의 촉진자 역할이 사라지면서 자동으로 중국의 중재 역할도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정권교체가 한국의 촉진자 역할을 부활시켜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라고 본 것이다. 다만 정권교체 자체가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아니며 '기회를 포착하여 정세를 바꾸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만약을 대비해 변명할 자락을 깔았지만,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혹독한 이념공세가 난무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굳게 지켜온 공약이었기에 문재인 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창의적 대안을 가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정권교체를 열망한 이들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그런 기대를 알기에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후 귀국 인사를 통해 '한·미 두 정상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한반도의 문제를 우리가 대화를 통해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미국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과 실천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새 정부의 외교 행보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내외에 넓게 확산되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결의 2371호 채택을 계기로 북-미 간의 말 공방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위기가 고조되어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말폭탄'을 약자의 허세나 호기로 이해해왔고, 그래서 북한의 전매특허로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입에서 쉼 없이 튀어나오는 군사력 동원과 북한의 멸망을 거론하는 언사가 북한의 더 거친 언사들과 맞부딪치면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미 양측은 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다가 진짜 전쟁이 난다면 그 방아쇠는 어리석게도 유치한 '말폭탄'이 되리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채 부풀어가는 고무풍선과 같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두 개의 공기구멍이 있는 하나의 풍선을 두고 상대에게 멈추기를 강요하며, '치킨게임'을 하듯 양쪽에서 불어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파국적 사태가 발생하면 최대 피해자가 될 한국 정부의 의미 있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

정부가 부푸는 풍선의 바람을 빼는 데 적극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전쟁은 한민족한테 재앙적 참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가능성과 연결된 어떤 언행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하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자제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미국 정부에 평화적 해결을 약속해 놓고 왜 군사적 수단을 입에 올리는지 따져야 한다. 아무리 약소국 동맹이지만 우리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 그렇게 식언을 해도 되는 것인지 엄중히 묻고, 또 필요한 행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정말 한-미 공조 외에 할 말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필자도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우리의 대북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대미 영향력은 다르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의 요구에 불쾌해할 수 있지만, 이를 쉽게 무시하지는 못한다. 더욱이 지금은 미국 조야에서도 트럼프의 발언에 우려하고 있으며 유엔과 중국 등도 나선 상태다. 그럼에도 내 삶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동맹 지도부의 비이성적 언사를 제지하기 위한 쓴소리를 주저한다면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대통령이 나서기 어려우면 고위 당국자가 나서 명확하게 미국의 자제를 촉구하고 상황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한반도 평화를 주도하지는 못해도 한반도의 주인인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종석 #미국 #북핵 #북한 #트럼프 #김정은 #국제 #정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