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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주체성'이란 불가능한가

나는 식민지 주체성이 제국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반제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제국으로부터의 분리와 '우리끼리'의 논리는 주체적이기는커녕, 우리를 특수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북한이 바로 그렇다. 물론 제국에의 참여는 곧바로 사대주의, 매판, 민족 반역자, 친일파, 친미파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하지만 제국에의 투항이나 협력과 주체적 참여는 구분되어야 한다.

  • 최범
  • 입력 2017.08.10 11:22
ⓒHarvepino via Getty Images

얼마전부터 '식민지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연 식민지는 주체성이 전혀 없는 것인가, 만약 식민지에도 주체성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의식의 발단이었다. 통념에 의하면 식민지 주체성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식민지라는 것을 일방적인 객체이자 완전한 무능력 상태로 상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식민지는 식민지 나름의 주체성이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식민지라는 현실을 완전히 부정하고 제국으로부터의 이탈만이 주체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윤해동은 '식민지 공공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식민지 상태가 완전히 수동적인 것만은 아니고 제한적이나마 공공성의 영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식민지 공공성 속에서 식민지의 회색지대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일제 시대의 조선어 교육도 그런 구도 속에서 일정하게 민족적 공간의 확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제국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제국 내에서의 식민지 주체성의 개념적, 실천적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기에는 제국은 보편, 속국/ 식민지는 특수라는 관계를 이룬다는 전제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보편과 특수는 철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현실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내가 생각하는 식민지 주체성이란 과거 중국과 일본, 그리고 현재의 미국이라는 제국 질서 내에서 한국이 가지는 상상적, 실천적 가능성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국왕의 잘못을 비판할 때면 언제나 중화를 기준으로 삼았으며, 일제 시대의 조선어 교육과 연구는 일본 제국의 지방어라는 자격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어운동의 민족운동적 성격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것이 조선 민족운동의 일환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적 질서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 시대의 조선어운동은 조선어를 일본 제국의 지방어로 위치지움으로써 오히려 권리를 보장받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과두지배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우리가 내세우는 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논리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제국으로부터 수유된, 당대의 보편적 논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속국/ 식민지 내부의 특수한 모순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제국의 보편성을 동원,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속국/ 식민지 내부의 특수한 모순을 제국의 보편적 논리를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식민지는 제국의 압제가 아니라 바로 식민지 내부의 폭압으로 인해 더 커다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식민지 주체성이란 바로 이런 구조 속에서의 모색인 것이다. 소위 말해서 외세, 즉 식민지 외부는 악이고, 민족, 즉 식민지 내부는 선이라는 이분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식민지 주체성이 제국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반제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제국으로부터의 분리와 '우리끼리'의 논리는 주체적이기는커녕, 우리를 특수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북한이 바로 그렇다.

물론 제국에의 참여는 곧바로 사대주의, 매판, 민족 반역자, 친일파, 친미파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하지만 제국에의 투항이나 협력과 주체적 참여는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의 개념적 차원과 실제적 차원의 구분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 정도의 노력과 위험 감수도 없이 평평하지 않은 세계를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제국과 식민지의 대립이나 사대주의와 민족주의의 이분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국/ 식민지는 제국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제국이 표상하는 보편적 질서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현재 나의 조심스러운 가설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는 제국으로부터의 분리의 결과일까, 아니면 제국에의 참여의 결과일까. 이것을 단지 일국사적 관점에서의 독립이냐 종속이냐 하는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의 정치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제국을 앞에 둔 우리로서는 깊이 천착해보아야 할 과제가 아닐까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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