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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보다 20년 전에 나온 '모래시계'는 어떻게 광주의 그 날을 그렸나

영화 ‘택시운전사’의 흥행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린 또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5.18은 폭동이었다”고 말하면서 관심은 더 촉발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린 작품은 꽤 많다. 소설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있고, 영화로는 ‘26년’(2012),’화려한 휴가’(2007), ‘박하사탕’(1999), ‘꽃잎’(1995), ‘부활의 노래’(1991)등이 있다. 드라마로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소재가 됐었다.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가 나오기 전인 1996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화려한 휴가’다. 최재성이 주인공을 맡았고, 김윤진도 출연했던 이 작품은 드라마 작가이자 소설가인 한태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그리고 ‘모래시계’(1995)가 있었다.

흥미로운 건 1995년이란 연도다. 소설 ‘화려한 휴가’도 1995년 1월에 나왔고, 그 1월에 ‘모래시계’가 방영을 시작했으며 그해 충무로에서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이 촬영중이었으니 말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해 11월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 나란히 재판정에 섰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와 영화, 소설 중에서’모래시계’는 사람들에게 광주의 그날을 환기시켰던 결정적인 작품일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지만,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화려한 휴가’보다는 ‘모래시계’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을테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정확히는 22년 전, 그때 ‘모래시계’는 어떻게 광주를 그렸는지 다시 떠올려보자.

1. 사실 ‘모래시계’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은 중심적인 배경이 아니다.

‘모래시계'는 카지노와 슬롯머신 사업자인 윤재영회장으로 터 정치자금을 받던 정부고위관계자들 간의 거래와 암투를 갈등의 핵심으로 놓고, 그들의 잘못된 거래가 강우석, 박태수, 윤예린에게 어떤 상처와 비극을 안겨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드라마의 초반부는 세 남녀가 각자 살아온 과정을 보여준다. 강우석은 착실히 공부하다가, 싸움만 하는 태수를 만나고 두 남자는 그렇게 성장하는데 우석은 대학에서 윤예린을 만난다. 그리고 그렇게 세 남녀가 만난다. 광주의 그날에 관한 이야기는 우석이 군대에 입대하고, 태수가 조직에 들어가 있을때 벌어지는 일이다. 광주과 고향인 태수의 후배(이희성)는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내려간다. 어느날 태수가 후배를 찾아 광주에 온다. 그리고 군생활 중인 우석도 계엄군으로서 광주로 향한다.

2. 기록영상과 촬영화면의 교차편집

‘모래시계’는 80년 5월 광주의 실제 기록영상을 삽입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자료화면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광주에 도착한 계엄군들이 바라보는 광주의 풍경에 기록영상을 넣으면서 인물들의 시선을 일치시켜, 그들이 실제 당시의 광주를 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또한 기록영상 속 군인들의 총소리가 드라마에서 재현된 광주 시민들을 놀래키거나. 그 반대로 재현된 계엄군들의 총소리가 기록영상 속 광주시민들을 향해 있는 경우도 있다.

3. 돌아가고 싶지만, 차마 돌아갈 수 없는 상황

‘택시운전사’의 만섭이 그렇듯, 태수도 돌아갈 수 있지만 돌아가지 못한다. 후배가 짝사랑하는 여성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고, 이에 분노한 후배가 시민군으로 나서자 태수도 동참한다. 그런데 이 후배마저 계엄군의 총에 죽는다. 태수는 다시 맞서 싸우려 하지만, 이때 후배의 엄마(김을동)가 그를 만류한다.

“반장님은 안디야. 반장님은 타지 사람인게, 살아있어야지. 살아서 늠들한테 우리 얘기를 해줘야지. 우리 말 안 믿을지 모릉께, 반장님 같은 타지 사람이 우리 얘기를 해줘야 써. 그것이, 그것이 나의 부탁이고 우리 칠수의 부탁이여. 거절하지는 않것지?"

사실상 만섭과 태수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같았다.

처음 서울로 돌아가려 했던 태수가 다시 발길을 돌리는 장면의 연출은 지금봐도 신선하다. 태수는 서울로 돌아가려 하나 버스가 끊긴 상태다. 태수의 후배는 금남로에서 시위중이다. 그리고 한 임산부가 거리를 걷고 있다. 버스터미널에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금남로에서도 계엄군이 장전하고 있으며 거리에서도 계엄군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려 한다. 그때 임산부 앞에 있던 한 계엄군의 총이 오발로 발사된다. 단 한발의 총소리를 가지고 '모래시계'는 각기 다른 장소의 총소리로 확장시킨다. 이 총소리에 맞춰 버스정류장에서는 한 소년이 쓰러지고, 금남로의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하고, 거리의 임산부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스펙터클을 피하면서도 효과적인 장면이었다.

4. 운명의 만남

계엄군으로 온 우석과 시민군이 된 태수는 딱 한 번 만난다. 우석의 상사(조형기)가 멀리 있는 태수를 총으로 쏘려고 하는 순간, 그곳에서 태수를 본 우석은 상사의 총을 밀어버린다. 총알은 허공으로 발사되고, 우석은 상사에게 두들겨 맞는다. 이날의 만남을 아는 건 우석 뿐이다.

이후 우석과 태수에게 광주의 그날은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강우석은 자신이 계엄군이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하며 정도를 걷는 검사의 역할을 다해 그때의 죄를 씻고자 한다. 하지만 태수는 우석과의 대화에서 "힘이 있어야 할 말을 다하고 살 수 있다"는 걸 광주와 삼청교육대를 통해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후 태수는 자신의 힘을 키우고, 그렇게 다시 혜린을 만나지만 결국 우석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는다.

5. 그리고...

태수의 후배가 죽고난 후, 후배의 동생도 시민군에 가담하고자 한다. 엄마는 말리지만, 그의 의지는 결연하다. 그리고 동생은 1980년 5월 27일, 도청으로 들어간다. 그는 칼로 벽에 '어머니'를 새긴다. 그 위로 총소리가 들린다. '모래시계'는 이러한 연출로 그날 밤, 계엄군에 의해 이 소년도 죽었다는 걸 보여주었다.

'모래시계'는 S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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