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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광주에 바치는 헌사

〈택시운전사〉 에는 억지스러운 설정(예컨대 광주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로에서의 추격씬)이 곳곳에 있고, 배우들의 개별적 연기는 돋보이지만, 연기의 합은 조화로워 보이기보단 어수선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택시운전사〉 를 봐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학살의 원흉 전두환, 일베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는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고, 모독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맞서 광주민중항쟁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소중하고 필요하다. 〈택시운전사〉 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 이태경
  • 입력 2017.08.06 10:05
  • 수정 2017.08.06 10:10
ⓒ쇼박스

<택시운전사>를 봤다. 나는 <택시운전사>가 예술적 성취가 높다거나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택시운전사>에는 억지스러운 설정(예컨대 광주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로에서의 추격씬)이 곳곳에 있고, 배우들의 개별적 연기는 돋보이지만, 연기의 합은 조화로워 보이기보단 어수선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택시운전사>를 봐야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학살의 원흉 전두환, 일베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는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고, 모독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 맞서 광주민중항쟁을 정확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소중하고 필요하다. <택시운전사>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거나 신음을 끄집어내곤 한다. <택시운전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 영화에는 감동적이고, 아프고, 슬픈 장면들이 많지만, 내 마음을 울린 건 택시운전사인 주인공 만섭(송강호 분)이 두려움과 책임감(만섭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이 하나 있다. 게다가 그 딸은 어머니를 잃었다.) 때문에 홀로 광주를 빠져나갔다가, 핸들을 꺾어 광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만섭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던, 핍진한 일상을 꾸려가는 것 이외엔 별 관심이 없던 소시민이었다. 만섭이 독일인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광주에 온 것도 서울-광주 간 왕복 택시요금 10만원을 받아 밀린 월세를 낼 목적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만섭이 광주의 선량한 시민들과 부대끼고, 그들이 국군에 의해 참혹하게 진압당하는 걸 목격한 후 변한다. 광주의 실상을 외부에 알릴 유일한 사람인 피터와 그가 찍은 필름들을 광주 밖으로 보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광주로 돌아간 것이다.

만섭은 왜 광주로 돌아갔을까? 만섭이라고 해서 두려움을 모를 리 없고, 아비의 책무를 잊었을 리 없다. 그래도 만섭은 화염 광주로 돌아갔다. 아마 광주시민들에 대한 만섭의 미안함과 죄책감, 부끄러움이 미치도록 두려웠던 마음과 고아가 될지도 모를 새끼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넘어선 것 아니었을까?

진흙으로 만들어진 우린 한없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어리석고 형편없지만, 염치와 죄책감과 연민과 한줌의 도덕을 지니고 있기에 고귀한 인간이며 존엄한 존재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수많은 만섭들 때문에 여기까지 전진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택시운전사>는 광주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이 땅의 만섭들에 대한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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