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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부동산대책'에 드러난 오진(誤診), 착각, 그리고 자학

참여정부는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사에서 기념비적인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그것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조·중·동은 그렇다 치고 참여정부 정책 담당자는 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까? 적군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비난 방송을 매일 듣다가 그만 그 내용을 받아들이고 마는 병사처럼, 은연중에 조·중·동의 주장을 내면화한 것은 아닐까?

  • 전강수
  • 입력 2017.08.07 10:02
  • 수정 2017.08.07 11:21

'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보유세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핵심 정책을 왜 누락시켰는지 문제제기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번에 발표를 안 했지만 언젠가는 내놓을 마지막 카드로 숨기고 있다고 짐작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이번 대책의 실무 책임자인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나서서 보유세 강화를 배제한 이유를 기자들에게 밝혔다.

지난 대선과 '6.19 대책' 이후 이번 대책이 나오기까지 정부·여당의 부동산 인식을 지켜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뭔가 '비딱선'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8.2대책을 둘러싼 여론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투기꾼들이 준동해서 가격이 폭등하는가?

정부·여당은 작금의 수도권 집값 폭등이 다주택 소유자의 투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투기 수요가 집값 폭등의 원인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투기 수요를 유발한 원인은 무엇일까?

정책 요인으로는, 우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정책을 꼽을 수 있다. 사실 두 정부는 '끈질기게'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은 무력화되었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규제 장치는 모조리 해제되었다. 그 결과 2011년부터 부산과 대구 등 지방 광역시의 부동산 시장에서 과열 현상이 발생하고, 2014년부터는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바로 지난 대선이다. 대선 시기는 문재인 후보가 부동산 공화국을 해체하고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할 공약을 발표할 수 있는 최적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반대로,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문재인 캠프의 홍종학 정책 부본부장이 기자회견을 자처해서 돌연 부동산 보유세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게 무슨 의미였을까?

정부 정책은 시장 상황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중대 요인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이루어진 문재인 캠프 측 입장 발표는 부동산 시장에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을 심하게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이것이 그 발표에 숨겨진 메시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게다가 문재인 후보 측은 '내 삶을 바꾸는 정책시리즈 1번'으로 연간 10조원씩 투입하여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정부의 이번 증세로 늘어날 세수가 5.5조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10조원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도시재생 사업에서 한몫 잡으려고 준비하는 투기 세력이 '기획'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투기의 연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정책이지만, 거기에 불을 붙인 것은 보유세 강화와 같은 핵심 부동산 정책을 유보하고 대대적인 개발 공약을 발표한 문재인 정부다.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이런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왜냐하면 참여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선명하게 밝혔고 실제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주요 정책들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2~2006년에 수도권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부가 투기 억제 장치를 모조리 해제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변명이 먹힐 수 있었다.

요컨대 작금의 부동산 투기는 갑자기 몇몇 '악당'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악행'을 저질러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정책 공백 내지는 정책 오류가 있었다는 말이다. 정책 오류를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박근혜 정부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나 하는 짓이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부디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보유세가 '발생 소득'이 없는데 부과하는 세금이라고?

토지보유세는 모든 세금 가운데 제일 좋은 세금으로 꼽힌다. 중립성, 경제성, 투명성, 공정성 등 조세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 모두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중립성은 조세가 경제를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고, 경제성은 조세 징수에 따르는 행정비용이나 사회적 비용이 적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투명성은 세원이나 조세 징수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이고, 공평성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을수록 많은 부담을 지게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게다가 토지보유세는 보유비용 효과를 발휘해서 투기를 억제하고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는 효과가 강력하다.

참여정부가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을 통해 역대 정부 최초로 본격적인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을 펼친 것은 토지보유세가 이런 장점을 갖고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보유세 강화 정책을 외면한다. 대선 때 표를 의식해서 부득이하게 그런 입장을 취했겠거니 여겼는데, 8.2대책 발표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한 발언을 보고는 그 이상의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김수현 수석은 양도세는 '발생한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인 반면, 보유세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부과하는 세금이라서 조세 저항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대책에서 보유세 강화를 제외했다는 이야기다.

보유세가 조세 저항이 심하다는 것은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발생 소득이 없는데도 부과하는 세금이라는 말은 근거가 없다. 부동산을 보유하면 실제 임대소득을 얻거나, 아니면 최소한 귀속임대소득을 누리고(자기 소유 부동산을 이용할 경우), 그 위에 자본이득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동료 몇 사람과 함께 추산한 바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소득과 자본이득을 합친 부동산 소득이 연간 400조원 이상(GDP의 30% 이상) 발생하고 있다. 보유세는 이런 엄청난 소득을 배경으로 하는 세금인데, 김 수석이 왜 이런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세금 중에 소득세와 법인세 외에 '발생 소득'이 있어야 부과하는 세금이 몇 개나 될까? 부동산세만 하더라도 취득세는 발생 소득이 전혀 없는데도 상당한 수준으로 부과한다. 그런데 왜 이 세금에 대해 조세저항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까? 김수현 수석의 해명은 소득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부동산 보유세에 잘못 적용해서 나온 실언으로 보인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라고?

8.2대책 발표 당일 한겨레신문은 〈참여정부 때 집값 폭등 트라우마...청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참여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무를 맡았던 김수현 수석도 기자 간담회에서 "참여정부가 왜 실패했는지, 또는 어떤 실패였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금폭탄론' 등으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을 맹렬히 비난했던 조·중·동이 아니라 당시의 정책 담당자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하여 부동산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보유세의 시가 상응 과세를 구현하는 동시에 본격적인 강화를 추진하고,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매년 10만호 이상씩 공급하여 서민 주거문제의 본격적 해결을 도모하고, LTV·DTI 규제를 통해 다가올 금융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등, 참여정부는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사에서 기념비적인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그것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조·중·동은 그렇다 치고 참여정부 정책 담당자는 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을까? 적군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비난 방송을 매일 듣다가 그만 그 내용을 받아들이고 마는 병사처럼, 은연중에 조·중·동의 주장을 내면화한 것은 아닐까?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적기(適期)에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격 안정을 정책 성패의 기준으로 삼아서인지 이번에도 김수현 수석은 "어떤 경우든 새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묘하게도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하고 했던 모습과 겹쳐진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가격과 씨름하면 질색한다. 정책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수없이 많아서 정부 원하는 대로 조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쳐서 가격 변동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참여정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도 실패하지 않았다. 2000년대 전반기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유동성 과잉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시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의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기는 했지만, 국제 비교를 통해 전체 양상을 평가할 때 가격 상승이 덜했던 편에 속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뜻이다. 200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부동산 거품 붕괴로 엄청난 위기를 겪을 때 우리나라가 큰 어려움 없이 그 시기를 통과했던 것도 실은 참여정부 정책 덕분이다.

가격의 상승과 하락이 정책의 성패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라면, 임기 내내 부동산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던 이명박 정부는 성공적인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을 반토막 내고, 4대강 사업으로 대대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추진하고, 양도소득세와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완화하는 등,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

겸양도 지나치면 흠이 되는 법이다. 게다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라는 이야기를, 핵심 정책수단을 유보하는 이유와 연결시킨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트라우마가 있다면 힐링을 받으시라.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용기다.

* <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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