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우리는 하인이었다" : 공관병 출신 A씨가 박찬주 장군 부부의 '갑질'을 증언하다

  • 허완
  • 입력 2017.08.04 12:04
  • 수정 2017.08.04 13:51

박찬주 육군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육군 대장)의 공관병으로 근무했던 A씨(전역)가 4일 공개 증언에 나섰다. 박 사령관의 공관병 출신인 당사자가 직접 언론과 접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 사례를 폭로하며 “(사령관 가족의) 일개 하인으로 생활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또 복무 당시 “대통령한테 얘기하지 않는 이상 높은 사람이 없으니까 신고도 할 수 없었다”며 “말할 곳이 없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우선 박 사령관의 해명을 접한 뒤 폭로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당한 게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아닌척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확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군인권센터를) 찾아서 연락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박 사령관 측은 ‘아들처럼 생각해서 편하게 한 건데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박 사령관 부인은 공관병을 “하인 쓰듯이 썼다”

그러나 A씨가 증언한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 사례들은 ‘아들처럼 생각했다’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A씨는 우선 박 사령관의 부인이 “병사들을 자기 개인 하인 쓰듯이 썼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집안일부터 모든 일을 하루 종일 시키면서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인격모독적인 말과 폭언을 했다”는 것. 일례로 박 사령관 부인은 조리병에게 “'엄마한테 이렇게 배웠냐'면서 큰소리를 치면서 칼을 탕탕 치거나 물건을 직접 던지기도 했다. 던진 물건에 사람이 맞기도 했다”고 한다.

“과일 같은 선물이 엄청 많이 들어온다. 그걸 쌓아놓는다. 매일매일 소비를 해야 되는데 먹는 사람이 (사령관 부부) 두 명이니까. 저희는 전혀 못 먹는다. 그러면 과일이 썩는다. 그럼 ‘왜 관리를 못하냐’면서 썩은 과일을 집어들고 사람한테 던진다. (사람에) 맞아서 과일에 핀 곰팡이가 파랗게 터지는 것도 봤다. 전이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던져서 얼굴에 맞은 경우도 있다.

또 기사에도 나왔지만 팔찌처럼 생긴 (호출)벨을 24시간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바로 뛰어오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왜 이렇게 늦게오냐고 (벨을) 집어 던져서 맞힌 적도 있다. ‘굼벵이 XX도 아니고, 내려갔다가 다시 뛰어와!’ 이렇게 시킨 적도 있다. 안방에 벌레가 나왔다거나 청소가 제대로 안 되어있거나 하면 수시로 누른다. ‘물 가져와라, 과일 깎아와라.’ 주로 이런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한 용도로 썼다.

충전을 못해서 꺼졌다거나 해서 (호출을) 못들으면 ‘이런 식으로 팔찌 똑바로 안 차고 있으면 내가 영창 보낼 수도 있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 사모(부인)가 집에 있으면서 괴롭힌 게 제일 크다. 사모가 쓰는 자기 속옷 빼고는 빨래도 우리가 다 했다. 아들이 오면 아들 빨래도 다 빨고 널었다.”

A씨는 “사모가 안방에 들어가서 잠들기 전까지는 계속 긴장된 상태로 대기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없는 걸 자꾸 찾아놓으라고 하니까..." A씨가 증언한 조리병의 '자살시도'

A씨는 2015년 한 조리병이 자살을 시도한 사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A씨는 “당시 이사오면서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시 군단장(육군 제7기계화군단) 하다가 이사를 왔는데 짐이 많았다. 그 중에 사모가 뭘 하나 찾았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는데 고기 굽는 데 쓰는 물건이었다고 들었다. 조리병이 그걸 못 찾았더니 사모가 ‘니가 짐을 다 쌌는데 왜 못찾냐’고 했다고 한다. 창고가 2~3개 있는데 그 짐을 5~6시간 동안 하나하나 다 풀어헤쳐서 다 뒤졌는데 결국 못찾으니까 또 엄청 깨지고... ‘찾아놓으라’고 하고서 나갔는데 또 못찾았던 거다. 아침에 교회 가면서 또 한참 뭐라고 하고 나갔다. 그 사병은 원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다 때려부수고 나가고 싶다’는 얘길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없는 걸 자꾸 찾아놓으라고 하니까...

(자살 시도 직전) 장교한테 연락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더라. ‘그동안 감사했다’는 식으로. 그리고는 창고에 있는 줄로... 장교가 뛰어가서 병원에 실어갔던 거다. 그때도 사모는 자기 잘못이라고 안 하고 다른 사람 탓만 했다고 한다. 나는 저런 정신 이상한 애랑 같이 못 있겠다고 하면서 그날 짐 싸서 집을 나갔다고 하더라. 그 조리병을 쫓아낸 다음, 일주일쯤 뒤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는 거다.”

“여기가 얼마나 편한 줄 아냐.”

A씨는 박 사령관이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듯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방치한 정도가 아니었다. 박 사령관은 ‘군기가 빠졌다’며 병사들을 최전방 부대로 보내기도 했다는 게 A씨의 증언이다.

“조리병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공관에서 뛰쳐 나갔던 적이 있다. 간부들이 다시 데리고 왔더니 (사령관이) ‘사모 말도 잘 들어야지, 반항하는 거냐. 이 사람도 그 정도(여단장) 급이다’라고 말 하면서 일장연설을 했다. 그러면서 ‘군기가 빠졌다’고 (조리병을) 전방으로 보냈다. ‘너희가 고생을 해봐야지 여기가 편한 걸 알고 불만이 안 나온다’고 하면서. ‘집에 있으면서 일하는 게 얼마나 편한 줄 아냐. 최전방 가면 얼마나 힘든지 알 거다’라고 하면서 GOP 최전방 부대로 보냈다. 일주일씩. 자기가 부릴 병사들이 없으면 안 되니까 교대로 (보냈다). 연대장 이런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거기 있는 사병들과 똑같이 굴리라고 했다. 근데 사실은 제가 듣기로는 거기 갔을 때가 훨씬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박 사령관이 상황을 단순히 방치한 게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A씨는 박 사령관 부부가 해외로 출장을 떠나면서 공관병들에게 ‘아들이 휴가 때 친구들을 불러서 바베큐 파티를 할 테니 챙겨주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박 사령관의 아들은 당시 인근 부대에서 복무중이었다.

“간부들까지 동원돼서 ‘아들 셔틀’을 했다. (아들 친구가) 8~9명 정도 왔다. 잠자리부터 음식, 노는 것까지 다 준비해줬다. 그렇게 다 챙겨주고 다음날 아침에 밥까지 차려줬다. 그 때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저희끼리 욕 많이 했다. 어떻게 우리가 아들까지 이렇게 챙겨줘야 하냐면서.”

“대통령한테 얘기하지 않는 이상 신고할 방법이 없었다.”

A씨는 복무 당시 겪은 일을 신고하거나 제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말했다. 박 사령관의 계급이 워낙 높다보니 신고를 할 곳도, 신고를 받아줄 곳도 없었다는 것. A씨는 원소속부대로의 복귀를 희망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원소속 부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소대장이나 중대장한테 전화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말했다. 그런데 (박 사령관이) 장군이고 권력자니까 자기들도 함부로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일반 부대였으면 소원수리를 하면 되는데 여기는 어디 말할 곳이 없었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 다 장군보다 (계급이) 밑이니까.

너무 힘드니까 같이 있던 부관한테도 ‘못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저희 편을 들어주기는 하지만 그뿐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달래주고 먹을 것도 사다주고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다.

거기는 더 폐쇄된 공간이고 더 높은 사람도 없을 뿐더러 대통령한테 얘기하지 않는 이상 (부대 내에 박 사령관보다) 높은 사람이 없으니까. 전자기기도 전혀 쓸 수 없으니까 녹음하거나 찍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다.”

A씨는 공관병들이 거의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군대 내에서도 일선 부대보다 더 폐쇄적이고, 거의 모든 자유가 박탈된 환경이었던 셈이다. A씨는 몇 번이나 “하인”이라는 단어를 썼다.

A씨는 공관병들이 일반 사병에 비해 외출이나 외박에 제한이 있었고, 그마저도 “처음에는 갔다오겠다는 말도 못 꺼내고 몇 개월 뒤에서야 얘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화는 “정말 하고 싶으면 부관 핸드폰을 빌려서 하라”는 말을 들었고, 인터넷은 “딴짓 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허용을 해주다가 안 해주다가” 했다가 “나중에는 다 막아버렸”으며, TV는 “채널도 몇 개 안 나오는 것”이었던 데다 “공관병들이 TV 보는 걸 (사령관 부인이) 싫어하니까”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부대생활 할 때도 물론 힘들지만 그래도 그때는 훈련하고 쉴 때는 쉰다. 저희는 그런 게 없었다. 항상 좁은 공간에 갇혀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1층 주방에서 대기하면서 돌아가면서 쪽잠 자는 식이었다. 아예 거기 갇혀서 단절된 채로 지냈다. 감옥이구나. 조금 큰 감옥이구나 하는 느낌.”

“다른 데서는 최소한 사람다운 대접을 항상 받으면서 살다가 거기서 그런 식으로... 무슨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사령관 부인은) 그냥 ‘아줌마’인데. 개인의 하인으로 생활을 하는 거니까. 그게 힘든 거죠.”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 관련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국방부는 4일 오후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며 박 사령관을 형사입건해 군검찰 수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박 사령관의 부인은 일단 군 검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 뒤 필요할 경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다만 박 사령관은 군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징계 조치를 받지 않을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행 법규상 군에서 3명 이상의 선임자가 있어야 징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는데 박 사령관의 경우 군내 서열이 높아 징계위 자체를 구성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육·해·공군을 통틀어 박 사령관과 같은 계급인 국군 현역 대장은 8명 뿐이다.

현재 복무중인 육군 내 공관병은 100여명으로 추산된다. 육군은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 제보가 쏟아지자 모든 장성급 부대를 대상으로 공관병 상대 인권침해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공관병 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공관병을 민간인으로 대체하는 것에 그치면 사적인 심부름과 허드렛일을 하는 인력을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비용 역시 국가가 계속 부담하는 것”이라며 “국방부 장관의 공관을 제외한 장성급의 공관에 대한 인력 지원은 즉시 중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비로 가사도우미를 쓰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오후 국방무 민원실을 방문해 박 사령관과 박 사령관의 부인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군인권센터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매우 강한 상황"이라며 "박 사령관에 대한 수사는 반드시 긴급체포, 압수수색 등이 포함되는 강제 수사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박찬주 #육군 #공관병 #국방부 #갑질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