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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우리는 왜 광주로 가는가

1980년 5월의 광주는 지금까지 답이 없는 물음으로 존재해왔다.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답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답을 할 의무와 책임을 명확하게 강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대부분 억울한 표정을 짓거나 비통한 울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그럼으로써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해왔다. 그런 탓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영화로 즐긴다기보다는 목격해야만 하는 어떤 증거처럼 여겨졌다. 〈택시운전사〉에서도 1980년 5월의 광주는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통증을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한 차례 거르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담아낸 또 하나의 영화이지만 가장 처음 떠올릴 만한 영화이기도 하다.

기사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개인 택시 기사 김만섭(송강호)은 어느 택시 기사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광주까지만 가면 10만원을 준다는 외국인 손님이 있어 식사를 마치고 을지로 국도극장에 태우러 가기로 했다는 것. 만섭은 곧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택시의 시동을 걸어 을지로 국도극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10만원이면 밀린 사글세도 내고, 집주인에게 큰소리도 칠 수 있다. 그렇게 복덩이 같은 외국인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를 만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던 시절 띄엄띄엄 익힌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며 광주까지 내달린다. 그가 누구인지, 왜 광주까지 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택시 운전사가 손님을 태울 때 알아야 할 건 행선지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날은 알았어야 했다. 모든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잘 알려진 대로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러니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실화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영화상에서 만섭의 택시를 타고 광주로 향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일본에 있던 그는 계엄령 선포 3일 차인 5월 20일에 서울로 들어와 택시를 타고 광주로 잠입한다. 그리고 공수부대의 만행을 취재한 영상을 확보한 뒤 5월 21일 광주에서 빠져나와 일본으로 출국해서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을 타전했다. 그는 23일경 한 차례 더 광주로 들어가 취재를 감행했다고 한다. <택시운전사>는 위르겐 힌츠페터가 처음으로 광주에 발을 디딘 20일부터 21일까지의 여정을 바탕에 두고 영화화한 작품이다.

사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은 위르겐 힌츠페터도,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아니다. 김만섭이라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실제 역사에서 위르겐 힌츠페터를 광주까지 태우고 갔다고 알려진 택시 운전사 김사복을 대체하는 허구의 인물이다. 김사복이란 인물이 허구가 된 건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사복을 대체하게 된 〈택시운전사〉의 김만섭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손에 잡히는 방식으로 인과를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로 달려간 이유나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극악한 계엄군의 폭력에 맞선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이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명심이나 정의감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단어 외에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반대로 김만섭이 택시를 몰고 광주까지 간 건 택시비 10만원을 주겠다는 외국인이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영화상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각오가 없이 광주라는 영토에 발을 딛게 된, 무방비 상태의 인물이란 의미다. 그만큼 만섭의 입장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는 생생해서 더욱 믿기지 않는 참혹함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실 만섭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그의 밥줄인 개인 택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번 돈으로 마련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고도 성장을 추진한 박정희 정권에서 외화벌이에 앞장서며 고국의 성장에 기여한 역군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김만섭의 삶은 그렇게 나아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사글세 단칸방에서 홀로 딸을 키우는 그의 인생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만섭의 희망은 아내를 일찍이도 앗아간 그 세월로부터 건사한 택시와 딸이다. 열심히 택시를 운전해서 딸에게 구두도 사주고, 집도 사고 싶다. 그러니 길을 가로막고 데모하는 대학생들은 부지런한 택시 운전사의 영업을 방해하는 '호강에 겨운 놈들'일 뿐이다.

어쨌든 만섭에게 대한민국은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였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더 잘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게 만드는 울타리였다. 그리고 그는 외국인 승객을 태우고 열심히 택시를 운전해 광주로 내려간다. 그렇게 내려간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국가를 마주하게 된다. 살벌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검문소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10만원이 필요했던 그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광주로 입성한다. 그리고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어지러운 길거리의 풍경앞에서 생소함을 느낀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귀신처럼 들이닥치는 공수부대원들에게 맞아 쓰러지는 광주 시민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이 왜 달아나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부리나케 달린다. 대한민국의 편에 서지도, 광주 시민의 편에 서지도 못한 채 길을 잘못 든 유령처럼 홀로 존재할 뿐이다. 만섭은 종종 무례한 언행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선량한 사람이다. 성실한 시민이자 국민이다. 그런 그에게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맞닥뜨린 공포는 지금껏 믿어왔던 살기 좋은 나라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그래서 묻는다. "도대체 그 나쁜 놈들은 왜 그러는 거야?"

1980년 5월의 광주는 지금까지 답이 없는 물음으로 존재해왔다.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답을 해야 할 사람들에게 답을 할 의무와 책임을 명확하게 강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대부분 억울한 표정을 짓거나 비통한 울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그럼으로써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해왔다. 관객들은 그 억울함과 비통함을 받아들이는 직접적인 대상으로서 영화와 소통해야 했다. 그런 탓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영화로 즐긴다기보다는 목격해야만 하는 어떤 증거처럼 여겨졌다. 덕분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영화는 대부분 관객이 어떤 식으로든 감당해내야 하는 버거움이 있었다. 영화적 완성도의 차이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의 차별성이 있다 해도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는 그날의 통증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이시킨다.

〈택시운전사〉에서도 1980년 5월의 광주는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통증을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한 차례 거르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택시운전사〉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하는, 광주 사람이 아닌 두 인물이 등장한다. 시민을 탄압하는 군부의 만행을 알리고자 광주로 잠입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태우고 간 택시 운전사 김만섭. 두 사람은 광주라는 도시의 이방인으로서 광주와 접촉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방인의 눈과 귀를 통해 1980년 5월의 광주를 보고 듣게 된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영화적 진실성을 견지하는 역사적 근거가 되는 인물로서 포석을 둔 인물이라면 김만섭은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격정으로 영화에 공감하도록 감상을 흔드는 인물이다.

결국 대부분의 관객들은 만섭의 시점과 감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만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관객에게 〈택시운전사〉에서 묘사되는 광주가 생소한 체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르겐 힌츠페터 역시 그렇겠지만 그는 광주에 들어갈 각오가 돼 있었으며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경험해본 노하우가 있는 기자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만섭의 입장에서 그날의 광주는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처음 만나는 세계다. 시종일관 흔들리고 결국 무언가를 선택하는 존재다. 게다가 관객들은 만섭이 위르겐 힌츠페터와 함께 광주로 향하는 택시에 탑승하기 전까지 만섭의 낙천적인 일상을 우선 목격하고 정서적으로 이완된 상태에서 광주로 진입하게 된다. 그만큼 만섭이 느끼는 충격이나 감정적 변화는 관객을 1980년 5월의 광주로 인도하고 결국 광주의 그날과 중매하는 안내서처럼 느껴진다. 덕분에 관객 입장에선 보다 객관적인 시선과 감정으로 광주의 그날을 목격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도 대사를 빙자해 관객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신 극 안의 이방인들, 즉 만섭에게 호소하고 관객은 만섭의 시선을 통해 그런 호소를 목격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택시운전사〉는 실제 인물을 반영한 캐릭터를 앞세워 이야기의 사실성에 대한 신뢰감을 못 박는 동시에 스크린과 객석을 중매하는 허구적인 캐릭터를 설계해 넣음으로써 영화적 감상을 안배하면서도 역사적 진실에 대한 물음을 강화한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완성한 상업 영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의 참혹한 순간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 방독면을 쓰고 악귀처럼 달려 나오는 군인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며 시민들을 때려잡는 광경은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분노조차 밀려나갈 듯한 원초적인 공포감으로 다가오는 이 신은 당시 광주 시민이 겪었을 초현실적인 무력감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동시에 시민을 향한 최초의 조준 사격이 있었던 전남도청 총격 신은 현장감 넘치는 장면 연출과 생생한 촬영술을 통해 실제적인 투쟁의 역사를 목격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택시운전사〉의 일등공신은 송강호의 명연기다. '제3한강교'를 부르며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이내 오열하다 끝내 택시를 돌리는 김만섭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내는 그 얼굴은 앞서 언급했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결심에 대한 답변과도 같다. 위협에 굴하지 않고 광주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외국인 기자와 죽음을 무릅쓰고 계엄군에 맞선 광주 시민들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명확한 행동으로 세상의 물음에 답을 했다. 그래서 결국 세상은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어린 딸을 걱정하며 광주에서 달아나려던 만섭 또한 자신을 찾아와 염려하고 되레 위로까지 해주는 광주의 택시 운전사 황태술(유해진)에게 "미안합니다"라며 울상을 짓는다. 그러자 세상 좋은 표정을 짓던 황태술이 격분하며 말한다. "형씨가 뭐가 미안하다요. 나쁜 놈들은 저기 따로 있구만!" 그렇다. 당신은, 우리는 잘못하지 않았다. 이젠 그 죄책감을 넘어설 때도 됐다. 죄인은 따로 있으니 끝까지 물어야 한다. 어쩌면 〈택시운전사〉는 진짜 미안해야 할 그들을 태우고 광주로 달려가기 위해 마련된 좌석일지도 모른다. 역사를 역사로 세우고, 영화를 영화로 보기 위해서라도.

<에스콰이어 코리아>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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