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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가 바뀌면 내 집을 마련하는 기준이 바뀐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매일 월세를 내고 있는데, 이런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의 속도를 내는 노력은 왜 안 할까. 급한 건 우리뿐인가. 이처럼 청년들, 입주자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는데 소유자나 임대인들이 큰 목소리를 내며 민원을 넣고 있다. 이러니 시의원, 구의원은 공약에서는 모두 공공임대주택을 제시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지역구에 사는 시민들에게 반대하겠다고 명함을 돌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 사회적 약자들이 공공임대 주택에서 배제되고, 실컷 예산까지 만들었는데 어그러진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꿈이 뭐냐는 질문에 '제 꿈은 건물주예요'라고 답하는 초등학생 얘기를 들어 봤을 거다. 이런 농담이 마냥 웃기지만 않은 이유가 있다. 소득 대비 주거비 30% 이상을 지출하고, 최저 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거주하고,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2년마다 인상되는 월세, 전세 때문에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세입자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고생을 하면 많은 이들이 농담처럼 건물주를 꿈꾼다. 시장의 법칙에 따르면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도리이다.

하지만 한국 부동산 시장은 '부동산 신화'라는 이름으로 가격 고공 행진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시장의 법칙도 무시한 채 투기성이 짙은 모습으로 부동산 시장의 많은 문제를 일으켜왔다. 그 결과 주거 시장의 문제는 사회 초년생과 청년들을 포함해 우리 주변의 대다수인 임차인의 삶에 많은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청년 주거 문제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함께 청년의 삶을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시기에 청년 주거 문제를 넘어 전체 세입자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민달팽이 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을 만나봤다.

민달팽이유니온(이하 민유)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민유는 어떤 곳인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서 소개 부탁드린다.

민유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단체인데 사실 주거 문제가 청년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청년의 주거 문제가 해결 되었을 때 다른 사회적 약자도 더 살기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즉 민유가 하는 일은 사회적 기준 자체를 높이는 운동으로, 세입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청년 문제를 사회 문제로 바라봤을 때는 사회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기존에는 청년들 실업이 높으면 일자리 창출, 기업 경기 부양, 이런 식의 경제정책으로 풀었다. 그나마 요즘 주거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청년들이 "우린 집을 못 사, 근데 왜 우리가 집을 사야하지? 왜 자가 소유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집을 반드시 못 사는데 왜 목표치가 집을 사는 사람들 중심으로 되고, 못 사면 탈락자로 치부되어야 하나. 이렇게 집을 사야 하니까 경제정책으로 풀어서 집값이 오르는 정책을 쓰고 계속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고 이렇게 되면 빚을 내서 집값을 올리고 다시 집을 사고. 이러면 빨리 태어나서 빨리 집을 사는 게 유리하다.

미래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지금의 높은 집값과 그에 따르는 부채를 미래에 물려주는 방식인데,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한 청년이 실제 생애주기에서 좀 더 나은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어떤 집을 물려줄 것인가, 어떤 집을 마주하게 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지금의 사회, 이것이 청년 주거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민유는 집을 가지지 못한, 또는 못 할 사람의 관점에서 정책의 무게 축을 가져오려 한다. 민유는 독립하지 못한 청년이 많은 것을 가정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 정책의 방향, 사회 시선을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말씀을 들으니 민유는 주거문제에서 지속하는 악순환 되는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단체인 것 같다. 선거와 제도에 대한 얘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고 싶다. 최초의 선거 경험과 가장 최근의 선거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가 첫 선거였고, 대통령 선거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선거가 첫 투표였다. 저는 대학 때 학생회를 했는데 후보로 출마하거나 누구의 선거를 도와 본 적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후보가 없을 때 뽑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 표는 대다수가 사표였는데 사실 사표라는 말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표라고 불리지만, 유권자의 의사를 담은 그 표 자체는, 누군가가 표를 얼마큼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사표 심리를 자극하면서 표를 몰아주기를 바라는데, 이렇게 유권자들의 사표 심리가 많은 것은 사표를 두려워하는 집단이 유효한 정치 집단으로 성장하지 못한 정당이 책임져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의 탓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청년이 투표 안 해서 이 모양이라는 말도 있는데, 정작 청년이 투표하고 싶은 정치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저는 최선이 최고를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제 인생에선 아직 30번 이상의 선거가 남아있는데. 제 선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청년'과 '주거'라는 키워드만 등장하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임경지 위원장 ⓒ비례민주주의연대

선거 때 무효표라도 만들어내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것. 특별한 기준인 것 같다. 그럼 투표할 때 어떤 기준과 가치로 후보를 선택하는가.

이번 대선에서는 시민을 배제하지 않는 자를 선택했다. 선거마다 기준이 달랐던 것 같다. 투표할 때 정치 공학에 매몰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주로 제가 뽑고 싶은 사람에게, 미래를 향해 투표했다.

지난 6월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민유의 제안으로 온라인 플랫폼 빠띠에서 진행하는 우주당 프로젝트에 '청년이, 시민이 직접 검증하는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김현미 101'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고 기록하는 첫 번째 인사청문회로 알고 있는데, 어떤 질문들이 나왔고,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우선 지금의 몇몇 국회의원의 고성과 으름장이 오가는 인사청문회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사청문회는 부처 장관들의 경우 살림살이 결정하는데, 그럼 진짜 시민들의 삶에 대한 디테일한 질문이 나와야 한다. 청문회가 행정부를 관리 감독하는 중요한 제도적 기반인데, 시민과 가까이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문회에서 정책적 질문을 하면 좋겠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청년 세대는 온라인에 익숙한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의원 재직 당시 대표발의, 공동발의했던 주요 법안 중 시민들이 가장 시급하게 실현해야 할 과제를 투표로 선정해서 투표와 함께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시민이 참여했고, 글도 너무 잘 써 주셔서 솔직히 좀 놀랐다. 그런 시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집이 비싸면 어떤 정책이 적합할까에 대해 분석했는데, 그 자료를 8월 말에 김현미 장관께 책자로 보내려고 하고 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에서도 개혁적 과제가 도출되어서 제도 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거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변화를 위해선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선거 제도 개혁은 세대교체의 출발점일 것이다. 세대교체가 중요하다는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과 다른 경험을 한 정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달라졌는데 이 다른 세상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이 충분히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주거 문제에선 주거 부담을 낮추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조치가 있을 텐데. 공공임대주택, 공공 기숙사가 못 지어지는 것이 문제다. 한국장학재단에서 공공 기숙사를 일산에 짓고 있는데 2년 전에 지어야 하는데 주민 반대로 1년 늦어졌다. 4월에 협의가 났는데 두 달 동안 삽을 못 떴다. 포크레인이 들어와도 반대가 계속되고 있고 2014년부터 이런 반대가 있었다. 이런 과정들이 적어도 무산되는 과정은 없어야 한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매일 월세를 내고 있는데, 이런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의 속도를 내는 노력은 왜 안 할까. 급한 건 우리뿐인가. 이처럼 청년들, 입주자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는데 소유자나 임대인들이 큰 목소리를 내며 민원을 넣고 있다. 이러니 시의원, 구의원은 공약에서는 모두 공공임대주택을 제시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지역구에 사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주택도 반대하겠다고 명함을 돌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 사회적 약자들이 공공임대 주택에서 배제되고, 실컷 예산까지 만들었는데 어그러진다.

이런 상황에선 선거제도 개혁이 당연히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선거제도가 광역 비례대표제여서 대학생, 청년, 장애인, 여성들의 임대 주택 문제가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다. 즉 정치제도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보장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또한, 다양성의 핵심은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것인데,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률적인 삶의 방식은 끝났다. 과거의 방식이 유효했던 적은 취직, 전세, 결혼, 전세 껴서 대출받아서 집 사고, 애들 크면 대출 갚고 집 소유하고, 저축해서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게 유효했던 시절이다. 지금 사회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바뀌었는데 정치의 메커니즘은 왜 바뀌지 않나.

선거제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변해야 하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게임의 룰을 전면적으로 바꾸더라도 언제나 그 룰은 누군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탈락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탈락하거나 배제하지 않기 위한 보완적인 장치가 필요한데, 지금은 선택지가 너무 적으니 선택지를 늘리는 제도적인 기반이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시민들의 의사가 왜곡 없이 정치에 반영되어야 하고, 당연히 정치에 더 많은 사람이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여의 권한을 지니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점에서 비례대표제가 곧 시민을 배척하지 않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100인 인터뷰의 6번째 외침ⓒ비례민주주의연대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청년주거문제 해결하고 싶은 정당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나는 세입자당'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안타깝게도 진보적이고 소수 정당 의원들 가운데에도 주거 문제를 대표하는 의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뷰하면서 임차인 협회 설립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을 주장하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청년과 정치,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는데, 다시 한번 살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가 정치를 통해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요즘에 생각보다 합의가 안 되어 있는 문제들이 진짜 많은 것 같다. 제가 청년 운동을 4-5년 정도 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청년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고 나아가야 하는지 합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일자리 중심에 멈춰 있다. 소득보장이 핵심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중소기업 인턴제처럼 취업률 높이고 이런 게 아니라 내가 무슨 일 하고 싶은지 질문할 수 있는 시간, 기회의 보장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 보장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소득 보장도 일정 부분 되어야 한다.

제가 공공임대주택에 사는데 입주한 친구 중 한 명이 10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그런데 그동안 묻지 마 취업이 계속 유지된 이유가 월세 때문이라고 하더라. 그러다 이제야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찾아보려고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동안 세계여행을 떠났다. 청년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을 기회를 아무 걱정 없이 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 않을까. 대선을 거치면서도 일자리 중심 정책은 여전하다. 아이템은 많아졌는데 청년 정책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아젠다 합의는 진짜 안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청년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낼 때 편견이 많다. 청년들은 여전히 미성숙, 무절제, 갈등적으로 치환된다. 즉 요즘의 혐오문화로 표현되는 것이다. 혐오 갈등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폭력만 남는다. 공론장에서 해소되는 방식이 아니라 고발, 공격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고통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해 갈등조차 위계화되고 있다. 살면서 민주주의자가 되기 진짜 어렵다는 생각 많이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삶의 화두는 무엇인가?

관계다. 요즘 평등한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한국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위계적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도, 일자리도, 주거의 영역에서도. 나는 솔직히 평등한 관계에서 전적으로 신뢰를 주고받은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 월세가 아무리 저렴해도 내 마음대로 못을 못 박는 집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가며, 자신의 삶 자체를 몇몇 정치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튼튼해지면서 정치와 더 가까워지고, 우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스스로도 현실에서는 관계에 여전히 서툴고 실수도 많이 한다. 민주주의자 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도 그 실수를 감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 난 그것이 인간이 민주주의를 택해서 살아가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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