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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짓의 경제학

전무후무한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꼰대짓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성세대는 '노오력'을 통해서 삶의 질이 급격하게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고, 합리적 확률 계산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은 이때의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제학자인 저는 꼰대짓마저 수요와 공급의 틀을 통해 이해합니다.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꼰대짓의 거래량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됩니다. 꼰대짓의 공급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꼰대짓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꼰대식 사고로 가득한 강의와 글에도 많은 사람은 공감과 존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 김재수
  • 입력 2017.08.03 12:26
  • 수정 2017.08.03 12:36
ⓒtriloks via Getty Images

[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꼰대짓의 경제학

"나는 부모 모두 무학의 농부의 아들이고, 그것도 땅 한평 없던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등잔과 호롱불로 공부했다...나는 대학 내내 입주 아르바이트로 내 생활비를 마련하며 다녔고... 나는 돈 한 푼도 없이 결혼했고 집 없는 설움을 겪으며 신혼 초에 치솟는 전셋값 때문에 서울을 전전하며 살았다. ... 나는 회사에 취업해서 주 6일을 근무하던 때에 입사 첫해에 크리스마스날 단 하루 쉬어보았다. ...제발 응석 부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 우리 사회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뜰하게 공부하고 나서 비난해도 늦지 않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는 글,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 중 일부입니다. 글쓴이는 이병태 카이스트 IT 경영학과 교수입니다. 잊힐 만 하면 다시 등장해 한반도의 젊은이들을 일깨우는 애끓는 요청입니다. 얼마 전에는 황웅성 메릴린치 수석부사장의 강의가 전국을 후끈 달구었습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강사로 나온 그는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하라"고 말하며 청년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의에서 말하길,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고 합니다.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24층의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가곤 했는데, 이때 해피(happy), 해피(happy)를 속으로 외치며 뛰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저 밑에서 뜨겁게 올라옵니다. 어느새 느슨해지고 게을러진 제 삶을 반성하게 됩니다. 남 탓과 헬조선 타령이나 하며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몇몇 지인들에 대한 분노도 끓어 오릅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아들, 짜장면 배달과 신문 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 지잡대(유명하지 않은 지방 대학을 가리키는 말. 지방잡대학의 줄임말) 출신, 원조 흙수저인 제가 미국의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흘려야 했던 땀과 눈물로 범벅된 성공 스토리를 들려 드리고 싶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진부한 또 한 명의 꼰대는 이렇게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미 성공을 경험한, 이 사회의 갑들은 꼰대가 되기 쉬운 것입니까.

완전히 다른 갑과 을의 성공 확률

같은 수의 금색 구슬과 흙색 구슬이 담긴 자루가 있습니다. 갑은 2개의 구슬을 꺼낼 수 있고, 모두가 금색 구슬이면 선물을 받습니다. 기회는 여러 번 주어져 있어서, 꺼낸 구슬을 다시 자루에 담은 후, 같은 시도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갑은 처음 두번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시도에서 둘 다 금색 구슬을 뽑았습니다. 갑은 쉬지 않고 구슬 꺼내기 400번을 반복했고, 대략 100번 정도 금색 구슬만 뽑을 수 있었습니다. 갑은 금색 구슬을 뽑을 때마다, 월급 인상을 받거나,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였습니다. 단칸 방 월세에서 시작했지만, 방 두개짜리 빌라 전세를 얻었고, 곧 방 세 개의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을은 10개의 구슬을 꺼내야 합니다. 모두가 금색 구슬인지 확인해 보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꺼낸 구슬을 다시 자루에 담은 후, 다시 10개를 꺼내어 확인해 봅니다. 서너 번 반복해 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몇십 번을 더 한다 해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을은 절망하며, 구슬이 담긴 자루를 헬(Hell·지옥)자루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갑이 을에게 말합니다. "헬자루라 빈정대지 마라. 겨우 몇 번 꺼내 보고 포기하느냐. 나는 400번 까지 꺼내 보았다. 당신들의 그 빈정거림과 무지에 화가 난다. 당신들이 아프다고 할 때, 나는 그 유약하고 철없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작은 수의 법칙의 오류'에 빠진 꼰대들

갑은 을보다 유리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2개의 구슬을 꺼내서 모두 금구슬을 얻는 성공을 1/4의 확률로 경험합니다. 갑에게 있어서 구슬 자루는 기회의 공간이고, 열심히 구슬을 꺼내는 노력을 할 인센티브기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을이 10개의 구슬을 꺼내어 성공을 거둘 확률은 0.001보다도 작습니다. 이를 두고 헬자루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할 만합니다. 문제는 갑이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따르면, 꼰대란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꼰대짓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위 '내가 해봐서 아는데 ~'로 시작하는 어법과 논리입니다. 갑의 경험에 따르면 노력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충분히 높은 확률로 보상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갑은 이를 바탕으로 을에게도 '노오력'할 것을 애타게 요청합니다.

드버스키와 카네만은 이런 식의 잘못된 확률적 사고를 '작은 수의 법칙의 오류'라고 불렀습니다. 작은 수의 관찰에서 얻은 결과를 일반적인 결과로 생각하는 방식의 사고 오류입니다. 꼰대들의 사고방식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시기의 관찰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식모로 살던 할머니,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보내졌던 부모님, 땡볕의 중동까지 가서 일했던 큰 삼촌, 심지어 월남전에 참전하여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 했던 작은 삼촌의 이야기들을 빼놓지 않고 들려줍니다. 이들 이야기는 작은 수의 관찰이라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했던 아주 특별한 시기의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개인의 노력이 즉각적으로 삶의 질의 개선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청년들에게도 '노오력'하라고 주문한다면, 이것이 바로 꼰대식 확률 계산 방식입니다.

경제학자 오스본과 루빈스타인은 '작은 수의 법칙의 오류'를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해서 설명했습니다. 이들이 이름 붙인 'S(1)식사고'란 모집단의 진짜 확률 분포를 무시하고 자신이 경험한 확률 분포로만 사고하는 방식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마치 항상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1000명의 암 환자가 같은 대체요법을 시도했는데, 이 중에서 10명만 치료받았다고 합시다. 대체요법의 치료 확률은 1%에 불과하고, 자연치료율과 차이가 없거나 그보다도 작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받은 10명의 환자는 대체요법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게 되고, 마치 다른 환자들도 같은 대체요법을 시도하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작은 수의 법칙의 오류'나 'S(1)식 사고의 오류'의 문제점은 지나친 '자기 중심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꼰대들은 진심으로 청년들에게 호소하고 변화를 요청하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꼰대들의 자기중심적 확률 계산입니다.

꼰대 이야기 수요는 어디서 나오나

전무후무한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꼰대짓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성세대는 '노오력'을 통해서 삶의 질이 급격하게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고, 합리적 확률 계산에 익숙하지 않은 인간은 이때의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제학자인 저는 꼰대짓마저 수요와 공급의 틀을 통해 이해합니다. 수요공급 이론에 따르면, 꼰대짓의 거래량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됩니다. 꼰대짓의 공급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꼰대짓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꼰대식 사고로 가득한 강의와 글에도 많은 사람은 공감과 존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교기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공 간증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간증이야말로 확률적 사고의 실패이고 꼰대짓의 정점이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열광하며 듣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꼰대짓을 소비하는 것입니까. 꼰대짓이 자기중심적인 확률 사고인 것을 기억한다면, 그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이들은 꼰대들의 이야기를 믿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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