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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워 오브 마인' 사라예보 포위전 생존자의 후기

내가 여덟 살 때 사라예보 포위전이 시작되었고, 열두 살 때 끝났다. 그에 관해 묻는다면, 비록 끔찍한 시기였지만 너무 깊이 파고 들지 않으면 당시가 얼마나 멋진 시기였는지 들려줄 수 있다.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렇게 많은 친구들과 그토록 즐겨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너무도 친절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가졌다. 6~7명의 '나이든 이'가 지하실에 둘러 앉아 담배 한 대를 돌려 피우던 기억이 난다. 그냥 한 대가 아니라, 그때 마지막 남은 한 대였다.) 곳곳에 예술이 있었다. 피난처마다 연극 공연, 콘서트, 파티가 열렸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이 글은 외국 커뮤니티에 올라온 보드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This War of Mine: The Board Game〉의 후기를 번역한 것이다. 이 게임의 원작은 내전 중인 도시에서 살아가는 민간인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의 비디오게임(소개 글 보러가기)으로, 보스니아 내전의 일부인 사라예보 포위전 (1992~1996년) 생존자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크게 호평 받았다.

글쓴이 야센코 파쉬츠는 사라예보 포위전 생존자로, 전쟁 초기에 창립되어 피난처를 돌며 공연했고 아직도 활동 중인 사라예보 전쟁극단 Sarajevo War Theatre의 배우로 현재 일하고 있다. 사라예보 포위전 당시 목숨을 걸고 음악 활동을 한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사라예보여 나를 위해 절규하라 Scream For Me Sarajevo〉의 제작에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전쟁없는세상에 '게임과 평화'를 연재하고 있는 전쟁없는세상 피망팀 쥬가 야센코 파쉬츠의 허락을 얻어 번역했다.

나는 게임 평론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이것은 나에게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배경 설명.

내가 여덟 살 때 사라예보 포위전이 시작되었고, 열두 살 때 끝났다. 그에 관해 묻는다면, 비록 끔찍한 시기였지만 너무 깊이 파고 들지 않으면 당시가 얼마나 멋진 시기였는지 들려줄 수 있다.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그렇게 많은 친구들과 그토록 즐겨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우리는 포탄을 피해 모두 한 지하실에 숨었고, 정말 많은 아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너무도 친절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가졌다. 6~7명의 '나이든 이'가 지하실에 둘러 앉아 담배 한 대를 돌려 피우던 기억이 난다. 그냥 한 대가 아니라, 그때 마지막 남은 한 대였다.) 곳곳에 예술이 있었다. 피난처마다 연극 공연, 콘서트, 파티가 열렸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디스 워 오브 마인'의 순간들과 같은 기억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내 안에 깊숙이 숨은 기억들.

보드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이제 게임에 대해 말해보자. 게임 플레이에 대해서는 나보다 전문가인 사람들이 이미 말했거나 앞으로 말해줄 것이므로,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사실 간단하다. 당신은 내전 중인 도시에서 한 무리의 동료를 이끌며, 유일한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당신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플레이한다). 하루가 하나의 라운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한다. 먹고 마실 것이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다 함께 살고 있는 폐허가 된 건물을 누비며, 잔해를 치우고 쓸 만한 것을 찾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살 만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난로에 불을 때고 잠시 몸을 녹인 뒤 밖에 나간다. 문제는 밖이다. 밖에서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밖은 위험하다. 식료품, 붕대, 약, 망가진 물건을 고칠 재료는 언제나 부족하다. 이 모든 것은 밖에서만 구할 수 있다. 용기를 내어 집밖에 나가 필요한 물자를 찾고, 다른 사람을 만나 때로 싸우기도 하며, 수집한 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행복한 기분으로 돌아와 집을 지키던 동료가 상처 입거나 겁에 질린 것을 보고, 당신이 '즐겁게' 밖에서 자원을 모으는 동안 은신처가 야밤에 습격당한 것을 깨닫는다. 제기랄. 고칠 것과 할 일이 아직도 많다. 그래도 이제 모두가 함께 있다. 우리는 안전하다. 춥지만 난로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난로에 넣을 땔깜이 없다... 최대한 따뜻하게 다 같이 모여서 자는 수밖에. 내일 아침을 준비해야 하니까. 오늘 보초는 누가 설 것인가? 우리 모두 지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당신'이 '우리'로 바뀌는 것을 눈치챘는가? 여기에 이 게임의 정수가 있다. 자신이 조종하는 캐릭터와 강렬한 감정적 유대가 형성된다. 너무 강렬해서 자신이 그중 하나가 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나의 실제 경험을 예로 게임의 몇 라운드를 설명하겠다. (주: 기억이란 것은 희한하다. 나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이야기한다고 믿지만, 100%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기억이다.)

아침: 우리는 피난처에서 잠을 자다가 요란한 포격 소리에 잠에서 깼다. 지하실 밖을 살며시 내다보니 무언가 있었다. 우리 건물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적 탱크가 이쪽을 향해 난사하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축구를 하려던 그날의 계획은 틀어졌다.

: 어머니는 전쟁 전에 교사로 일하셨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고 우리 피난처에 학교를 열기로 했다. 어머니가 유일한 교사고, 우리 건물과 옆 건물 아이들이 학생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학교에 다녔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친구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심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말 없이 나갔기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셨다. 나는 우리 피난처로 돌아갈 수 없었고, 이미 한 번 미룬 수학 시험을 쳐야만 했다. 나는 제 시간에 가지 못했고, 어머니는 내게 F를 주셨다.

자원 수집: 동네에서 제일 먼저 불타 무너진 건물이 학교였다. 내벽이 나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학교가 불타는 와중에도 벽에서 나무를 떼어갔다. 그들은 학교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땔깜으로 쓸 나무였다. 전쟁은 사람들에게서 최선과 최악을 이끌어낸다. 사라예보 포위전 당시에도 끔찍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빈손일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누렸다. 나는 물자 교환이 게임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TV를 담배 한 갑과 달걀 몇 개와 맞바꿨다. 삶이란 그런 것이지만, 여기서 논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선할 수도, 상상 이상으로 잔혹할 수도 있다.

야습: 이웃인 아타는 전쟁 전에 경찰관이었다. 그는 총이 있었다. 전쟁 초기에 그와 다른 한 사람이 불한당으로부터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어두운 밤에 (전깃불이 없는 밤은 정말로 어둡다) 누군가 문앞에 돌진해 외치기 시작했다. "문 열어!!!" 같이 경비를 서던 세조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겁에 질렸던 것이다. 아타는 문을 열고 이 불쌍한 남자를 총으로 미친 듯이 때리기 시작했다. 그 역시 겁에 질렸던 것이다. 남자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아타가 멈췄다. 피범벅이 된 남자는 자신이 가져온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를 겨우 손으로 가리켰다. 남자는 어둠이 깔리기를 기다렸다가 길 건너편에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려 했던 것이다. 포격과 저격이 며칠 간 끊이지 않아, 우리는 물자가 부족한 상태였다. 밖은 생지옥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일주일 동안 우리와 함께 지냈다. 아타가 겁에 질려 총을 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겠다.

이것은 매우 인상적인 게임이다. 실은 게임 이상이다. 모든 게임이 하나의 경험이라지만, 이처럼 진실된 적은 없었다. 나는 종종 "전쟁 당시 삶이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여기에 말로 답하는 것으로는 진실을 전달할 수 없다. 이제부터 나는 그 질문을 받으면, 자리에 앉아 물어본 사람과 이 게임을 한두 라운드 플레이할 것이다.

테마와 메카닉이 정말 잘 결합되어 있어, 내가 보통은 싫어하는 것도 (규칙이 이해가 안 되면, 적당히 그럴 듯하게 하라) 여기서는 괜찮았다. 책이 있는 (이야기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은 처음 해봤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태까지 벌어진 모든 사건이 무척 그럴듯하고, 앞뒤 이야기와 잘 연결되었다. 한 번 본 이야기가 다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읽을 때마다 게임을 멈추고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많았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거기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생존을 통해 더 잘 생존하는 법을 배운다. 게임도 마찬가지로 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대부분 게임에서 성립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정말로 생존하는 법을 익힌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아직 괜찮은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삶이 항상 그렇듯, 아직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결과는 승리 아니면 패배지만, 어느 쪽이든 승리와 패배를 모두 느낄 것이다.

이 게임에는 많은 카드 뽑기와 주사위 굴리기가 있다. 하지만 카드와 주사위의 운은 전쟁의 예측 불가능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 전쟁에서 당신의 목숨은 저격수가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에 좌우된다. 그가 당신을 빗맞출 수도 있고, 다른 것을 겨냥했는데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이 게임에서 운이 다른 무엇보다 테마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스 워 오브 마인〉 게임판과 구성물

게임 플레이는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테마와 메카닉이 잘 결합되어 있어, 모든 것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소위 '박스에서 꺼내면 저절로 플레이된다'고 하는 그런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일반적인 규칙서가 없다. 그 대신 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일지가 있는데, 그것도 하나의 게임 구성물이므로 버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일지는 매우 간편하고,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잘 가르쳐줄 것이다. 그 밖의 규칙은 이야기책에 있는데, 어디를 보라는 일지의 안내에 따라 쉽게 찾을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실력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게임이 길어질 수 있다. 게임을 많이 할수록 실력이 늘고, 오래 생존하게 되므로 게임이 길어진다. 하지만 게임의 또 다른 기막힌 요소가 있는데, 바로 '저장' 기능이다. 처음에는 다소 번거롭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하다보면 익숙해진다. 이렇게 게임을 중간에 저장해놓고 나중에 이어서 할 수 있다.

구성물도 훌륭하다. 박스는 미니어처와 토큰, 카드, 보드로 가득 차 있고, 무엇보다 여지껏 가장 인상적인 게임 구성물인 '이야기책'이 있다. 처음에는 게임 전체가 이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구성물이다. 그 외에도 게임에는 많은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더해주는 서사는 정말로 훌륭해서, 이 게임을 계속해서 다시 하고 싶게 만든다. 그 안의 이야기들은 개중에 여러 전쟁 생존자의 실제 경험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잘 쓰였다.

개발자들에게 큰 찬사를 보낸다. 그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마치 전쟁 내내 사라예보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기록만 한 것 같을 정도다. 이 게임을 추천하느냐? 글쎄, 잘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전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만약 당신이 다소 어두운 테마의 멋진 게임을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만약 당신이 굉장히 무거운 1인 혹은 협력 게임을 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하지만 왜 누군가는 이 게임을 절대 플레이하지 않을지도 알 것 같다. 디스 워 오브 마인 이전에 내가 모은 게임들이 단지 '재미로 가득 찬 벽장'에 불과했다면, 이제 다른 것들 사이에 재미뿐 아니라 다른 무언가도 있는 이 게임이 있다. 정말로 유일무이한 게임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게임은 언젠가 거래할 수 있지만, 이것만은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10점 만점에 10점은 잘 주지 않지만, 이 게임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진정한 걸작이다.

이렇게 마치겠다. 만약 당신이 전쟁과 살인이 재밌을 것 같다고 혹은 재밌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디스 워 오브 마인을 해보라. 물론 게임은 재밌겠지만, 동시에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이 게임이 세상에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그만 좀 죽여라 이 쓰레기들아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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