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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용량 방사선에 대한 논란 '방사선 호메시스'

방사선 호메시스라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하여 방사선 허용기준을 정한다든지, 혹은 개인이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직접 이용한다든지 하기에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비선형성이란 바로 복잡성의 세계를 의미하며 복잡성의 세계에서는 신뢰성 있는 예측이란 것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호메시스라는 현상이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 던지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자연방사선"과 "비선형성"이 혼재하고 있는 저용량 방사선 범위에서는 내가 외부로부터 얼마만큼 더 노출되고 덜 노출되고를 따지면서 사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올해 허프포스트에 블로거를 열고 올린 첫 글이 작년쯤부터 SNS를 강타했었던 "현미는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다"라는 글에 대한 반박문이었어요.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썼던 글이었는데요, 글을 올리자마자 달리기 시작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제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인터넷 글쓰기의 뜨거운 맛을 봤었죠. 그 동안 나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살았던 지라, 도대체 이 글의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화나게 했을까? 궁금했었죠.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왜 그 글이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어요. 바로 글 곳곳에서 "호메시스"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찬찬히 허프포스트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니 독자들 중에 반핵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꽤 될 것 같았거든요. 포탈사이트에서 호메시스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가 방사선 호메시스인데요 "의학계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사이비 이론으로.. " 혹은 "이미 퇴물이론으로 판명된 엉터리 개념으로.. "등등의 설명으로 이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호메시스"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현미를 옹호하는 글을 썼으니 그 불쾌감을 익히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 중단되면서 우리 사회가 원자력을 둘러싼 거센 논란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김익중 동국대 교수와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사이에 벌어진 원전정책 끝장토론도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토론 중간쯤 보면 100mSv이하의 저용량 방사선에 대한 논란이 나옵니다. 한쪽에서는 안전한 방사선이란 없다고,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용량 방사선이 위험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너무 상반된 주장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토론만 보아서는 누구 말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건강과 관련된 이슈이니 원자력 전공 교수보다는 의과대학 소속 교수의 말이 좀 더 신뢰성이 있어 보였을 것 같습니다. 김익중 교수의 주장에 대한 가장 흔한 반론이 안전한 방사선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절대위험이 매우 낮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는 정도더군요.

저는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으며 원자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좀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이 세상이 굴러가기를 바라는 한 사람의 시민이기도 하구요. 여기에 더하여 얼마 전 지진이 발생한 경주에 제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지라 결코 원자력에 호의적일 수 없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저용량 방사선의 건강 위해성에 대한 작금의 논란과 관련하여서는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세상에 설명드리는 것이 지식인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되어 이 글을 올립니다.

김익중 교수 이야기 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역학 연구에서 아주 낮은 방사선이라도 암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절대 위험 정도는 낮지만 아주 낮은 용량 범위에서 방사선 노출량이 높아지면 암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역학 연구결과들이 있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저용량 범위에서는 선형성을 가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높은 용량 영역, 즉 독성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100에서는 100만큼 해롭고 1000에서는 1000만큼 해로운 선형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낮은 용량의 범위에서는 1에서 1만큼 해롭고 2에서 2만큼 해로운 현상이 실제로 관찰되었다고 해서 10에서 10만큼 해롭고 20에서 20만큼 해로울 것이라고 가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비선형성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호메시스"라는 현상 때문입니다. 호메시스란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개념인데요 방사선이나 유해화학물질의 관점에서 본 호메시스란 고용량의 방사선이나 유해화학물질은 당연히 건강에 해롭지만 "적절한 저용량"의 방사선이나 유해화학물질은 오히려 건강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보통은 이러한 나쁜 것들에 대한 노출은 전혀 안 되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호메시스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노출되지 않는 것보다 약간 노출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개념이죠.

호메시스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독일의 의사이자 약리학자인 휴고 슐츠가 좀 더 효과적인 살균소독제를 찾기 위하여 효모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살균소독제들을 고농도로 처리하면 당연히 효모가 죽어버리지만 적절히 낮은 농도에서는 오히려 효모의 성장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실험의 오류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반복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관찰되면서 이러한 현상을 낮은 농도의 독성화학물질에 대응하여 생명체가 가지는 생물학적 반응으로 정의내리고 "Hormesis"라고 명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이 호메시스가 폐기 처분되어야 할 대표적 사이비 이론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뜨거운 논란이 바로 저용량 방사선을 둘러싸고 벌어지게 됩니다. 원래 방사선이든 화학물질이든 고농도에서의 반응은 쉽게 실험적으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작습니다. 그런데 환경노출 범위의 낮은 농도에서는 실험적으로 재현성 있게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늘 다양한 논란들이 존재하죠.

방사선 노출과 암발생 위험을 다루는 영역에서 가장 오래된 논란은 역치(threshold, 암발생위험을 증가시키는 최소 농도)가 있는 선형성을 가지냐? 혹은 역치가 없는 선형성을 가지냐?였습니다. 역치가 존재하면 역치까지는 괜찮다가 노출 농도가 그 이상이 되면 그 때부터 암 발생위험이 높아지는 것이고 역치가 없으면 0에서 조금이라도 농도가 올라가면 그 만큼 더 암발생위험이 높아진다는 거죠. 이 두 가지 모델의 기본 조건은 둘 다 선형성입니다. 이 선형성의 조건에서는 역치 존재여부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항상 높은 농도는 낮은 농도보다 더 해롭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기괴한 모델이 도전장을 내밉니다. 바로 비선형성을 가진 호메시스 모델입니다. 이 모델에서는 방사선에 조금 노출되는 것이 건강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즉, 방사선에 전혀 노출되지 않아도 사람마다 기본적인 암발생 위험이 존재하는데, 적절한 저용량 방사선에 노출되면 생명체 유지 및 보수기능이 활성화되어 오히려 기본적인 암 발생위험이 낮아진다는 거죠. 물론 노출량이 계속 증가하여 고용량 노출 영역으로 가면 다시 선형적으로 암발생위험이 높아지지만요.

일단 이 호메시스는 현상 그 자체도 받아들이기 힘든 심리적 장벽이 있습니다마는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합니다. 바로 이 호메시스 모델을 발표한 논문들 중 상당수가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산업체들이 물심양면으로 연구비를 후원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알려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20세기를 통틀어서 이 호메시스 모델은 과학적으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연구비에 양심을 팔아버린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사이비 과학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호메시스가 매우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는 생물학적인 현상으로, 그리고 생명체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적응반응으로 새롭게 주목 받게 됩니다. 호메시스가 방사선, 유해화학물질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외부 환경요인들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 수준에서는 모두 유사한 호메시스 반응을 야기하여 우리 생명체가 원래 가진 유지 및 보수기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스트레스들이 미토콘드리아에서 활성산소를 증가시켜서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호메시스 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서 특별히 Mitohormesis라고도 부릅니다.

지금 당장, 세계 최고의 과학잡지라는 Nature에 가서 "Hormesis"라고 검색어를 한번 넣어보세요. 8편 정도의 논문들이 뜹니다. 대부분 2000년 이후에 발표된 것인데요. 호메시스를 부정하는 논문들이 아니고 호메시스 현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들입니다. 물론 방사선을 직접 다룬 논문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방사선은 지구 탄생 이래 생명체 진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노출된 대표적인 스트레스였으며 20세기 동안 가장 많은 연구가 된 주제였죠. 무엇보다 호메시스라는 개념 자체가 사이비, 엉터리, 퇴물 이론이 결코 아니며 독립적인 연구자들에 의하여 최첨단 과학의 연구결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방사선 호메시스라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하여 방사선 허용기준을 정한다든지, 혹은 개인이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직접 이용한다든지 하기에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비선형성이란 바로 복잡성의 세계를 의미하며 복잡성의 세계에서는 신뢰성 있는 예측이란 것이 불가능하거든요. 현실에서는 호메시스를 작동시킬 수 있는 다른 안전한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호메시스라는 현상이 지금 이 시간 우리들에게 던지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자연방사선"과 "비선형성"이 혼재하고 있는 저용량 방사선 범위에서는 내가 외부로부터 얼마만큼 더 노출되고 덜 노출되고를 따지면서 사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공기, 물, 음식 등 온갖 것들이 오염되어 버린 현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큰 의미 없는 걱정과 근심을 떨쳐버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다른 대안들에 보다 집중할 수 있거든요.

결론적으로 제가 원자력보다 좀 더 안전한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사고 때문입니다. 어제 저녁에 먹은 고등어 안에서 검출되었다는 방사선 때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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