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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인의 각별한 '정신력' 사랑

한국인의 정신력 사랑은 각별하다. 학교에서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주입한다. 이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이들도 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하며 한계를 깨는 순간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일 계속되는 '특타'와 '특훈'으로 몸이 지치는 것도 작은 부상도, 의지만 있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투혼 신봉자도 혹사와 잘못된 몸관리로 스물다섯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는 것이다. 김 전 감독의 지론에 따르면 투수 김성근은 한계를 깨지 못한 선수였다.

  • 김학선
  • 입력 2017.08.03 11:45
  • 수정 2017.08.04 13:41
ⓒ뉴스1

한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엔 '정신력'을 주제로 한 내용이 나온다. "'불가능은 없다...' 해병대로 간 펜싱 대표팀"이란 제목의 글도 있다. 한국 펜싱 국가대표 팀이 해병대에 가서 머리에 보트를 이고 공수낙하훈련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숱하게 봐온 모습이다. 한국인의 해병대 사랑은 각별하다. 때만 되면 초등학생부터 국가대표까지 해병대 캠프를 방문한다. 이들이 얻으려는 건 '정신력'이다.

한국인의 정신력 사랑은 각별하다. 학교에서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주입한다. 이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이들도 있다. 김성근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하며 한계를 깨는 순간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일 계속되는 '특타'와 '특훈'으로 몸이 지치는 것도 작은 부상도, 의지만 있으면 문제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투혼 신봉자도 혹사와 잘못된 몸관리로 스물다섯 이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는 것이다. 김 전 감독의 지론에 따르면 투수 김성근은 한계를 깨지 못한 선수였다.

정신력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스포츠에서까지 정신력을 외치는 이들을 인정하기 어렵다. 김성근 감독의 팬이자 SK 와이번스의 팬인 한 지인은 "김성근 감독이 나가고 선수들의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는 말을 수시로 뱉었다. '이기려는 의지'가 안 보인다며 선수들을 질타한다. 마침 SK가 시즌 초 연패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곧 연승을 거두며 제 궤도에 오르자 더 이상 그 말은 나오지 않는다. 불과 며칠 만에 '이기려는 의지'가 생겨났다는 걸 설명하기엔 자신도 우세스러울 것이다.

두산 베어스의 유격수 김재호 선수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손시헌의 그늘에 가려 오랫동안 후보 역할을 했던 김재호는 이제 확고한 두산의 주전 유격수가 됐다. 거액에 자유계약선수도 했고, 국가대표도 됐다. 그가 실수할 때마다 비슷한 비난이 쏟아진다. "해이해졌다" "초심을 잃었다". 이럴 땐 정신력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는 게 더 합리적이다. 김재호는 국가대표가 돼 시즌이 끝나고도 국제대회에 나가느라 제대로 쉰 적이 없다. 그답지 않은 실수의 원인을 '초심 따위'에서 찾는 것보다 체력 고갈에서 찾는 게 더 합당하다. 정신력 타령이 문제인 것은 원인 규명보다 감정적 화풀이에 기울기 때문이다.

정신력이라는 것은 늘 위에서 밑으로 수직적으로 강요된다. 목적을 위해 이 말을 남용해온 것이 우리 역사였다. 이를 거부하는 순간 나약하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때마침 김남일 축구 국가대표 코치의 발언이 화제다. "마음 같으면 지금 들어가서 바로 '빠따'라도 좀 치고 싶은데...." 농담 삼아 한 말이고, 이제는 시대가 변해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대중은 환호한다. 여전히 '빠따'란 말에 공감하는 시대, 김성근과 박종환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는 시대, '불가능은 없다'는 불가능한 말을 주입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올해는 무려 2017년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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