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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과 '딜브레이커'

모든 사람들에게 딜브레이커는 조금씩 다르다. 만약 탁현민이 십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면, 그리고 그 발언이 공개됐다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그게 딜브레이커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단순하다. 탁현민을 실드 치는 사람들에게 여성 비하의 발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 발언만큼의 딜브레이커는 아닌 거다. 그냥 그게 다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에게 돼지발정제가 딜브레이커가 아니었듯이, 탁 실드러들에겐 그의 발언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닌 거다. 민중은 개돼지라 발언했다가 공직에서 쫓겨나게 된 나향욱이 좋은 예다.

  • 양파
  • 입력 2017.07.21 11:54
  • 수정 2017.07.21 11:59
ⓒ한겨레

'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라며 포기하게 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한국에 있는 많은 분에게는 '종북' 혹은 '친일'이 그러한 듯하다. 만약 탁현민이 대학교 때에 김일성 만세를 외친 사진이 떴다면, 아니면 '일본의 점령으로 사실 덕본 것도 있지 않냐'라는 식의 칼럼이 하나라도 떴더라면 다들 가만있지 않았겠지. 당신에게도 그렇다면 종북과 친일은 당신에게 딜브레이커다.

모든 사람들에게 딜브레이커는 조금씩 다르다. 만약 탁현민이 십년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면, 그리고 그 발언이 공개됐다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그게 딜브레이커일 수 있겠다. 탁현민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내용을 신문에 기고하고 책으로 내고 강의에서도 말했다면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단순하다. 탁현민을 실드 치는 사람들에게 여성 비하의 발언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 발언만큼의 딜브레이커는 아닌 거다. 그냥 그게 다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에게 돼지발정제가 딜브레이커가 아니었듯이, 탁 실드러들에겐 그의 발언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닌 거다.

민중은 개돼지라 발언했다가 공직에서 쫓겨나게 된 나향욱이 좋은 예다. 사석에서 한 말이고, 칼럼이나 책으로 쓴 것도 아니고, 뭐 아주 높은 자리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전국민에게 공격받고 쫓겨났다. 이때는 '그런 식으로 관둬야 하면 공무원 살아남을 사람 없겠다'란 이는 없었다. '사석에서 술 한 잔 하고 그런 말 할 수도 있지'란 이도 없었다. 그냥 그 한 마디가 전국민의 딜브레이커 스위치를 누른 거다. 그렇지만 탁현민의 그 여러가지 (적기도 싫어서 안 적는다) 발언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지. 그런 말은 할 수도 있는 거고, 뭐 남자라면 다 한 번 해 본 생각이란다.

물론 내 편이고 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잣대가 조금 느슨해진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 선이 이상하게 여성 문제에 있어서만 첨예하게 차이가 난다.

난 문재인 현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그래 뭐 심 후보 다음으로!) 지지했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해서, 많은 이들이 그냥 립서비스라고 할 때 편들었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겪으면서 나도 잣대가 느슨해져서 그랬다. 난 홍준표 후보가 백 배로 더 나쁘다고 했었고, 문 후보가 '동성애 반대' 발언 했어도, 그래도 실드 쳤었다. 그래서 욕 많이 먹었다. 돌아보면 그렇다. 내가 성 소수자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 정도 나이대의 사람이 페미니스트 선언한 것도 대단하다. 동성애 문제까지 요구하기엔 그래 뭐 좀 그럴 수도 있지'란 식이 된 거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 걸 슬퍼할 정도의 딜브레이커 정도는 아니었단 거지. (난 내가 그 정도 사람밖에 안 된다는 데, 내 자신에 실망했었다. 그래도 그 일로 그 사람 대신 다른 이가 당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실드를 쳤었다.)

탁씨가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언사를 했다고 가정할 때, 그래서 그를 반대한다면 왜인가? 문 대통령이 표방하는 바에 정면 반대되어서가 아닌가? 여러 사람들이 바로 그 이유로 탁씨의 여성 문제 관련 발언을 문제 삼는 거다. 난 아직도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발언은 진실이었다고 믿고, 젠더 의식은 좀 구시대적일지 몰라도 의도는 선하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탁씨의 발언과 저서와 칼럼과 뭐 등등을 다 보고 듣고도 포용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지지한다는 이유로 느슨하게 봐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탁은 딜브레이커다. 그를 여전히 측근으로 두는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그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진심이었나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선 동안 홍준표나 더 욕하라고 문 후보 실드쳤던 내 손가락이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탁씨의 저서가, 칼럼이, 발언이, 행동이 뭐 그냥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정도의 사람이다. 청와대 내에서,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문 대통령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이 한국 인구 반을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당신이다. 난 최소한 문 대통령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기를 바랐을 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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