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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19일 01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7월 19일 01시 51분 KST

4차 산업혁명과 행복한 세상

4차 산업혁명 이전의 세 차례 산업혁명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기술 변화에 따른 일시적 또는 마찰적 실업은 있었어도 장기적으로 보아 일자리가 줄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직업의 분포가 1차, 2차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과 기술 산업 쪽으로 많이 이동했을 뿐이다. 필자는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되든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의 등장을 계기로 직업관과 복지 체제도 혁명적으로 달라지기를 바란다. 무의미한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보람 있는 일에 전념하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Wolfgang Rattay / Reuters

안타깝게도 자기 직업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5월 18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526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의 직업은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이다'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8.5%에 그쳤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2013년 전문직 1만2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자기 직업이 무의미하다고 답한 사람이 반에 달했다.

반면에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새로운 차원의 기술을 생산에 활용하는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고 있다. 작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언급된 이래 널리 주목을 받아왔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러 후보가 다투어 언급하였다. 4차 산업혁명 덕에 원하지 않는 일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인류의 꿈이 실현된다. 그러나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는 부작용도 흔히 지적된다. 실직자가 많아지면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고 소비 감소로 인해 경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새 기술로 사회 전체의 생산력이 높아진다면, 이런 부작용은 분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수요가 있는 일에만 보수가 돌아가는 시장으로는 안 된다. 직업관을 혁명적으로 바꿔, 사회에 필요한데도 시장임금이 생기지 않는 일에는 사회가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살림과 육아가 사회에 기여한다면 가정주부도 당연히 사회로부터 보수를 받아야 한다. 지금도 정부가 문화예술인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책의 취지가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소득을 필자는 '사회임금'이라고 부르고 싶다. 현재는 사회임금이 복지급여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아마도 시장임금 외의 소득 수단이 복지급여밖에 없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일의 대가라는 '임금'의 본뜻을 살리자면 일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복지급여와는 구분하고 싶다.

아울러 튼튼한 사회안전망도 갖추어야 한다.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려면 기본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복지는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류가 너무나 오랫동안 힘들게 세상을 살아 왔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베짱이가 되지 않는 복지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특권 없는 공정한 시장을 조성하여 복지 수요 자체를 줄이고, 부득이하게 존재하는 특권으로부터 생기는 이익을 환수하여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면 된다. 특권이익 환수는 시장 작용을 저해하지 않으며 특권이익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동등한 지분을 가지므로, 이를 재원으로 하는 복지는 시장 친화적 복지인 동시에 정의로운 복지이다. 특권이익의 크기는 모든 복지 재원을 충당하고도 남는 것으로 필자는 추산한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는 시장의 모습도 달라진다. 험한 일, 힘든 일은 보수가 대폭 높아질 것이므로 일에 대한 불만이 줄고 소득 불평등이 많이 완화된다. 노동자의 교섭력이 높아질 것이므로 사람을 존중하는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반면 억압적인 분위기의 기업은 도태되고 만다. 노동의 유연성도 함께 높아질 것이므로 기업은 인력 관리를 탄력적으로 할 수 있고 노사 간의 극한대립도 대폭 줄어든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자꾸 하게 되며, 그래서 수준이 높아지면 시장임금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교육도 달라진다. 시장 바닥의 일자리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소모적 경쟁교육에서 벗어나, 각자의 잠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길러주어 자아실현을 돕는 진정한 교육으로 바뀌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이전의 세 차례 산업혁명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기술 변화에 따른 일시적 또는 마찰적 실업은 있었어도 장기적으로 보아 일자리가 줄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직업의 분포가 1차, 2차 산업에서 서비스 산업과 기술 산업 쪽으로 많이 이동했을 뿐이다. 필자는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되든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의 등장을 계기로 직업관과 복지 체제도 혁명적으로 달라지기를 바란다. 무의미한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보람 있는 일에 전념하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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